필사

노자 61p

다림영 2008. 7.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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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번잡하게 벌이는 정치는 무섭다. 자유당 시절의 썩은 정치도 무섭고 유신체제의 공안정치도 무섭

다. 무서운 정치 밑에서는 백성이 고개를 숙였다가 쳐들면  사나워지고 만다. 억지로 숙여진 고개는 쳐들

게 마련이다. 백성이 화가 터져 고개를 쳐들면 난리가 일어난다.그래서 4.19도일어났고부마항쟁과 광주

항쟁이 터졌다. 4공시대의 정보부를 생각해 보고 5공시대의 보안사를 생각해 보라. 해서는 안될 일을

자행하고 못할 짓을 범해 세상을 떨게 했고 멍들게 했다. 그러므로 정치를 대범하게 하라고 노자는 다음

처럼 말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대범해 걸림이 없다면 백성은 순순해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번잡하고 옹색하면

백성은 절망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왜 하와이로 �겨 났는가?

권좌를 죽을 때까지 차지하려다가 당한 봉변이었지. 나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이 노욕을 부리게 했고 그 노욕 탓으로 간신들의 패거리가 망신들게 한 것이 아니냐고 백성들이 입질을 했다.

윤보선 대통령이 백성들이 입질을 했다.

윤보선대통령이 왜 가회동으로 밀려났는가?

권좌를 연연해 그렇게 되었지. 행랑채를 털고 나면 안채를 터는 것이 도둑질의 버릇 아닌가! 그런줄 모

르고 미적거리다가 쫓겨나면서 내가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호통을 쳤지만 이 빠진 호랑이가 개한테 물

린 꼴이 되었지. 이렇게 백성들은 입질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왜 궁정동에서 살해 되었나?

총으로 빼앗으면 총으로 뺏기는 법이지. 보릿고개를 없앴다고 세상을 호주머니 속의 손수건처럼 여겼

다가 코를 다쳤지. 벗들이 모여 술을 마시면 흥이 돋지만 패거리가 모여 술자리를 벌이면 물고 물리는

법. 손톰밑이 아프면 당장 알아도 심장이 곪으면 죽기전에는 몰라. 그래서 측근이 총질한다는 것을 몰랐던 거야. 이렇게 백성들이 쑤군거렸다.

전두환 대통령은 왜 백담사로 유배를 갔나?

권불십년을 몰랐던 거지. 지금 세상에 섭정이 되나. 본래 마름이 지주를 등치는 거야. 도당을 지어 두목

노릇을 하다 2인자에게 물려 주면서 은덕을 베풀었으므로 의리를 지킬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수 였어.

권모술수에 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부도수표나 같아. 그래서 손 좀 봐줄 놈이 몇 놈 있다고 허세를 부

려도 소용없지. 이렇게 백성들이 험담을 늘어 놓았다.

 

대통령마다 그 끝이 험했고 망신스러웠다.  정치를 옹색하게 했고 백성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저질렀던

탓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백성의 눈총을 받았고 손가락질을 당했다. 노자의 말대로 정치를 대범하게

했더라면 왜 백성이 등을 돌렸겠는가!

꿀물을 마시게 하겠다는 정치는 백성을 속이는 꼴이 된다. 그러나 맹물을 마시게 하겠다는 정치는 백성

을 속이는 꼴이 된다. 그러나  맹물을 마시게 하겠다는 정치는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 꿀물을 냉수 마시

듯이 마시면 목이 쉬어 역겨워 한다. 그러나 냉수는 매일 마셔도 물리지가 않는다. 냉수는 민민하기 때문이다. 대범한 것은 냉수나 같다. 달콤새콤한 맛을 더해 혹하게 하여 미끼를 던지는 정치는 찰찰하게

마련이다.

민민한 정치는 백성을 믿고 언덕으로 삼아 세상을 다스리지만, 찰찰한 정치는 백성이 두렵고 무서워 공

권력을 정치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박대통령의 정보부나 전 대통령의 보안사가 그러한 예이다.

꿀물을 받아 마시는 측은 특권층이 되고 하마나 하고 꿀물을 기다리던 백성은 결국 목이 타 냉수를 찾게

된다. 이를 지금은 민주화라고 한다. 정치여! 꿀물을 주겠다고 미끼를 걸지 마라. 물 그대로인 냉수를 마

시게 하면 그만이다.

정치여! 백성을 속이지 마라. 속임수를 씀으로 백성은 정치를 불신한다. 왜 노자의 무사를 저버리고 유

사만을 일삼아 정상배의 배만 채워 주는가! 이런 줄 알면서도 백성은 알면서 속는다고 자조한다. 왜이러

한 착각에 걸려들고 마는가?  노자가 밝혀 주는 다음과 같은 사물의 사실을 모른 탓이다. 불행이여!

그것은 행복을 뒤따라 오는 것이다. 행복이여 ! 그것은 불행의 복병이다. 어느 누가 치우치면 그렇게 된

다는 것을 알까? 그러한 치우침에는 공명 정대함이란 없다네. 치우침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이상한 것으

로 되고 선하다는 것이 요망스런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착각한다. 인간이 이렇게 착각한 지

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이것이 사물의 질서요. 순리라는 것을 도가라는

것을 동양정신은 밝혀주고 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잘못을 범하는 것을 치우침이라고 하는 셈이다.

선악의 시비 길흉의 분별 등은 바로 이러한 치우침의 탈이라고 도가는 밝혀준다. 무위와 자연에는

선악도 없고 길흉도 없다. 항상 있으면 있는 그대로일 뿐이며 없으면 없는 그대로일 뿐이다.

 

인간은 출발은 좋았는 데 결과가 나빴다고 투덜댄다.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원망하기도 한

다. 천지 사물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탓에 인간은 늘상 착각한다. 웃고 우는 인간이 요

망스럽지 않은가!

정치여! 이러한 인간의 착각을 부추기거나 이용하지 마라. 그렇게 다스림을 펼치자면 먼저 치자들이

성인의 말을 새겨듣고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관이다.

 

성인은 누구인가? 그는 치우침의 착각을 하지 않는 자이다. 성인은 어떻게 하길래 착각하지 않을까?

노자의 다음말을 들어 보면 알수 있다.

성인은 분명하고 숨김이 없으면서도 결판을 내지 않으며 청렴하면서도 인색하지 않고. 솔직하면서도

수작을 부리지 않으며. 빛나되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치자는 성인을 본받아야 한다.치자는 자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있는 까닭이요. 물론 정

치를 하는 사람만 치자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대로 세상을 다스리며 산다. 그러므로 누구

나 성인의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성인을 무슨 전설속의 이물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현대인은 물질화 돼버려 손 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믿어주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사실로 증명할 수 있는 물증이 없으면 믿지 않는다. 정신도

돈으로 환산하고 사랑도 돈으로 측정하고 믿음이나 충성도 돈에 따라 좌우되는 세상에서 성인은 가을

빈 들판 에 선 허수아비처럼 취급된다.

 

남에게 성인을 본받으라고 요구하지 마라. 먼저 자기 자신이 성인의 말을 경청하고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려고 마음을 써보라. 그러면 세상은 한결 부드러워 질 것이요. 조용해질 것이 아닌가!

첨단 과학의 문명시대이지만 우리는 왜 성인을 본받아야 하는가? 사람이 사는 환경이 편리해지고 있

을 뿐 목숨을 부지하는 근본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시대라고 해서 반도체 칩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밥을 먹고 산다. 컴퓨터를 물로 마실 수는 없다.여전히 물을 먹고 산다.  공중에

사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땅위에서 산다. 이처럼 생존의 내용은 변할 수가 없다.  성인은 생존의 모범

을 보여주는 선생이다.

방정한 사람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심술맞은 사람을 좋아하는가?

방정할 뿐 심술맞지 않는 이가 성인이다. 이것이 곧 방이 불할 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제 욕심을 부

리지 않으면 마음은 저절로 방정하게 된다.

그러나 남이 방정하기를 바라며 자기도 방정한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일이다. 그렇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바로 성인의 이웃은 된다. 청렴한 사람을 좋아하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한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넉넉할 뿐 옹색하고 인색하지 않은이가 성인이다. 이것이 염이불궤이다. 내가 욕심

을 부리지 않으면 내 마음은 저절로 청렴해진다. 인색하고 옹색한 것은 탐욕의 하수인이다.

그러나 남이 정직하기를 바라면서 자기도 정직한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일이다. 그렇다고 여겨지면

자신이 바로 성인의 이웃은 된다. 속이 훤한 사람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마음과 행동이 밝되 돋보이게 하려고 눈부시게 하지 않는것이 광이불요이다. 속이고 숨길 것이 없다면

눈부시게 꾸밀것은 없다.

그러나 남의 속이 훤하기를 바라며 자기도 솔직한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일이다. 그렇다고 확인된

다면 자신이 바로 성인의 이웃은 된다. 위와 같은 성인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살펴보면 아무도 성인

을 싫어하지 않음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좋아하면서도 꺼리고 멀리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

은 저마다 남에게 성인처럼 되라고 요구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되면 손해를 본다는 실속의 속

셈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인의 물질화를 재촉하는 심리이며 세상을 살벌하게 하는 편집광

의 후유증이 아닌가! 이것이 현대인의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탓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벌을 받는 일

이 잦게 된다.  현대인은 이를 모르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발버둥치려고 한다.

행복은 즐거움이 아닌가! 그래서 행복은 복락이라고 한다. 복락을 욕심내지 마라. 즐거움은 빈것에서

나온다.  이렇게 장자가 못박아 두었다. 이는 틀림없는 말이다.

행복을 탐하면 복락이 아니라 화복이며 길흉이다. 복락에는 호사다마도 없고 전화위복도 없다. 그런것

은 행복을 밖에서 찾거나 할 대 일어난다.

그러므로 정치여! 행복을 보장하겠다고 미끼를 내걸지 마라. 그리고 백성이여! 행복을 밖에서만 찾아

헤매지 마라. 이렇게 노자는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왜 불행하냐고 투덜대지 마라. 먼저 스스로를 만족해 볼일이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마

음은 후련해지고 시원해질 것이다. 이것이 텅빈 마음의 초입이다. 그 길에만 들어서면 행복과 불행이 서

로 상대하거나 선악이 대립되거나 시비가 다투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노자는 타일러 주고 있는 셈이다.

무위하라. 거기에는 화복의 회비도 없고 길흉의 명암도 없다. 노자는 이러한 경지의 모습을 아마도 무사

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사한 정치가 대범한 치세이며 술수 의 정치가 번잡한 난세이다.

이를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노자가 밝혀 두었다.  어느 날에나 정치 현실과 백성들이 노자의 외침을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참으로 인간은 착각만 하고 노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려고 한다.

 

원문의역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대범해 걸림이 없다면 백성은 순순해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번잡하고 옹색

하면 백성은 절망한다.

불행이여! 그것은 행복을 뒤따라오는 것이다. 행복이여! 그것은 불행의 복병이다. 어느 누가 치우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까? 그러한 치우침에는 공명정대함이란 없다네. 치우침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이

상한 것으로 되고. 선하다는 것이 요망스런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착각한다.  인간이 이렇게

착각한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이로써 분명하고 숨김이 없으면서도 결판을 내지 않으며 청렴하면서도 인색하지 않고 솔직하면서도

수작을 부리지 않으며 , 빛나되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도움말

제 58장은 백성을 돕는 정치와 백성을 절망하게 하는 정치를 살펴보게 하는 장이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뒤나 같게 되는 연유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치우침에는 행

복은 불행으로 흥은 고통으로 이어짐을 살피게 한다.

민민은 대범함을 뜻한다.

찰찰은 옹색하고 번잡함을 뜻한다. 허세, 허영, 조바심 따위는  모두 번잡한 것이다.

소기는 뒤따라 일어난다는 듯이다.

소복은 숨어 있다 나타나는 것이며 복병 같은 것이다.

기무정야의 정은 인간의 치우침에서는 정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방은 어느 편에 치우침없이 반듯한 것을 뜻한다.

할은 제몫을 찾으려고 인색한 것을 뜻한다.

할은 제몫을 찾으려고 인색한 것을 뜻한다.

정복위기는 인간의 치우침이 빚어내는 바르다는 것도 이상한 것으로 둔갑한다는 뜻이다.

선복위요는 인간의 치우침이 빚어내는 선은 해괴한 것으로 둔갑한다는 뜻이다.

직은 솔직함이고 사는 방자함이다.

광은 밝은 빛이고  요는 눈부시게 빛나 현란하게 함을 뜻한다.

 

제 59장 치자는 농부 같아야 한다.

치자여! 제발 도덕정치를 하라.

정치가 백성을 무서워 할 줄 알면 반석에 선 성채나 같다. 그러나 백성을 얕보는 정치는 모래 위의 성이

나 같다.  집 터가 탄탄하고 단단해야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궁궐은 백성을 울타리로 삼아야지 신하

들로 성곽을 쌓아서는 구중궁궐의 임금도 쫓겨나고야 만다. 청와대 역시 백성을 파수꾼으로 삼아야지

차지철 같은 경호실장이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정치는 백성을 언덕으로 삼지 않으면  입술

을 잃어버린 이빨처럼 되어 버린다. 엄동설한의 찬바람에도 이빨이 시리지 않는것은 입술이 감싸주는

덕 때문이 아닌가! 정치는 이러한 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 대통령은 백성을 얕보다 4.19를 맞았고 박대통령은 백성을 무시하고 측근만 다독거리면 될 줄 알

았다가 궁정동에서 험한 꼴을 당했다. 군주가  방자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흉년이 들면 하늘이 노

한탓이라고 했다. 하늘이 백성에게 노한 것이 아니라 폭정을 일삼는 폭군에 대하여 노한 것이다.

왜 정치는 백성을 무서워하며 섬겨야 하는가? 백성이 나라를 짓는 농부나 같기 때문이다. 그러한 농부

를 소작인으로 전락시키고 치자가 지주 행세를 하면 폭군이 생기고 독재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치자가 백성을 얕보면 독재 정치가 되고 백성을 무서워할 줄 알면ㄹ 민주정치가 된다. 백성은 독재정

치를 잡초라고 여기고 민주정치를 곡식이라고 여긴다. 치자가 농부같다면 무엇이 잡초이고 무엇이 곡

식인가를 알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곡식에 갖는 심정과 같은 것을 치자가 헤아린다면 어느 누가 정치를

미워하고 불신 할 것인가!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보라 그러면 정치는 더럽게 썩어가는 고깃덩

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것은 종사와 같다. 무릇 심고 길러내 거두는 것은 서슴지 않고 근원

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서슴지 않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듭 거듭 덕을 쌓는 것이라고 한다. p70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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