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다림영 2008. 7. 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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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 100선

 

 

하루동안 맑고 한가하게 지내면 하루동안 신선이며 한가지 행이 부처님다우면 그 한 행은 부처님이다.

고덕

 

욕망속에서 참선을 하는 것은 지견의 힘이다.

불 속에서 연꽃이 핀 것과 같아서 끝내 시들지 않는다.

증도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다

-상에 머물러 보시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복이 된다.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아서

위로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도리어 떨어지고

내 생의 삶이 여의치 못하다

어찌 무위의 실상문에서 한 번 건너뛰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겠는가.- 증도가

 

꿈속에서 이룬 불사

-물에 어린 달그림자 도량가없이 넓고 환영같은 대중들은 구름처럼 모이어

인연 없는 인연을 깊이 맺어서 꿈속에서 불사를 크게 이루고

최상의 불법을 다 배워서 나도 너도 일시에 보리 이루리-고덕

 

어둠속의 보물

-어둠 속에 보물이 있어도  등불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비록 지혜가 있어도 능히 알수 없다. 눈에 백내장이 있으면 아름다운 색깔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이 맑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볼 수 없다.-화엄경

 

삼계는 허공의 꽃과 같다.

-보고 듣는 것은 환영이아 눈병의 현상이며 삼계는 실재하지 않는 허공의 꽃과 같나니

들음을 회복하여 눈병이 없어지면 번뇌는 소멸하고 깨달음만 원만하고 깨끗하다.

깨끗함이 지극하면 광명이 사무쳐 통하고

고요하게 비추어 허공을 모두 머금을 제 다시돌아와 세간을 살펴보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아라. -능엄경

 

성냄은 공덕의 숲을 태워버린다.

-성냄은 마음의 불꽃이니 공덕의 숲을 다 태워 버린다. 보살도를 행하고자 하거든

인욕으로 참 마음을 잘 지키라.-한산시

 

지극한 도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가려내고 선택함을 싫어할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애착하지만

아니하면 막힘없이 툭 트여 밝고 환하리라.-신심명

 

날마다 좋은날

-날마다 좋은 날이다.

日日是好日-운문선사

 

어머니가 낳아준 보배

-영융도 배우지 않고 독서도 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먼길만 가도다.

어머니가 낳아준 보배를 마음대로 쓸 줄 몰라서 무지하게 굶어 죽는 것을 달게 여기도다.-야보

 

보고 돌아오니..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여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 가지 한이었는데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일은 없고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이었네-소동파

 

부처님과 같이 존중하다

-자신의 즐거움을 능히 버리면 믿고 공경하기를 성인과 같이 하고,

어려운 수행을 능히 행하면 존중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한다.-발심장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높다-서응경

 

유심唯心

-법계에도 두루하고 허공에도 두루하여

드넓은 하늘도 그 당체를 능히 덮을 수 없고,

항상 비치고 항상 나타나서

철위산도 그 빛을 능히 감추지 못하며,

머물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아니하여

진로가 그 본성을 능히 바꿀 수 없고,

순수하지도 않고 잡스럽지도 않아

만법이 그 참됨을 능히 숨기지 못하네-영명선사 유심결

 

마음

-마음은 모든것의 근본이 되며 마음이 주인이 되어 마음이 시키나니

마음으로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말과 그 행동이 곧 악하게 되어

허물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마치 수레의 자국이 수레바퀴 뒤에 남듯이-법구경

 

오도悟道

-세존이 샛별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깨달음이란 실재하는 것도 아니며 도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있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물들이 있듯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존은 샛별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 >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게 하다.

<세존에게는 가섭이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나 가섭이 그자리에 앉는 것이 별다른 일이 아니다.

오직 일상사일 뿐이다. 가섭이 법석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세존은 자리가 마땅치 않은 가섭에게 자리를 좀

나누어 줄 수도 있다. 염화미소도 그렇다. 대범 천왕이 부처님께 꽃을 올리니 부처님은 그 꽃을 들어 보일수도

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는 미소를 머금을 수도 있다. 역시 일상사다.

그리고 또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운데 마음이 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사가

가장 특별하고 위대한 일이다. 볼줄 알고,들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청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이므로 특별하고 희유하고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일이다.

 

처처불상

-곳곳이 불상이요, 일마다 불공이다.-미상

사람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므로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설사 부처님같이 맏들지는 못하더라도 내 자신을 위하는 것과 같이만 하더라도 세상은 사랑과 자비로 넘쳐

나리라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미래의 꿈에 허덕이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의 무한 복덕에 눈을 뜨

게 하는 바르고 참된 이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여 각자의 지극한 복을 누리게 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

이다.

 

생기生氣

-오직 생기 일색만 있으면 팔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

사람이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생기가 넘친다. 보는 사람도 힘이 솟구치고

신이난다. 가족중에 한사람만 꿈에 부풀어 있어도 모든 가족이 괜히 덩달아 즐겁다. 그야말로 팔방에서 신선한

바람이 일어난다. 이것이 생기 넘치는 삶의 특색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것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늙고 젊고는 관계가 없다. 병들고건강하고도 상관없다. 부유하고 가난하고도 관계없다. 오직 넘치는 꿈과 희망

이 있으면 늙음도 없고 병고도 없고 장애도 없고 가난도 없다.

 

부작불식不作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백장

 

세력을 다쓰지 말라

-세력을 다 쓰지 말라. 복을 다 받지 말라. 법을 다 행하지 말라. 좋은 말을 다 말하지 말라.-오조법연

 

"좋은 말을 다말하지 말라"는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 털어 놓으면 사람들은

반드시 쉽고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다.  좋은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다.친절이나 사랑을 보이는말, 감사함을

나타내는 말,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 남을 칭찬하는 말, 참되고 바른 이치를 설명하는 말등등 아주 많다.

어떠한 좋은 말이라도 지나치게 하거나 너무 세밀하게 하거나 하면 그 맛은 반감하고 만다.

여운이 남는 알맞은 양의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人生最大敵人是自己

 

인생 최대의 실패는 스스로 잘났다는 생각이다.

 

인생 최대의 무지는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인생 최고의 비애는 질투다.

인생 최대의 착오는 자포자기다.

인생최대의 죄는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가련한 성품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지녀야 할 것은 정진이다.

인생 최대의 파산은 절망이다.

인생 최대의 재산은 건강이다.

인생 최대의 빚은 인정에 대한 빚이다.

인생 최대의 예물은 관용이다.

인생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자비와 지혜다.

인생 최대의 기쁨은 베푸는 일이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먼지 하나에 다 모였으나 합한 것이 아니며

온 우주에 흩어져 있으나 나눠진 것이 아니다.

빛과 조화를 이루었으나 한 무리를 짓지 않고

먼지와 함께 있어도 물들지 않는다.-영명선사 유심결.

 

열반송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산에 걸렸구나.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도 생명을 유지하기 또한 어렵다.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기 어렵고 부처님이 계셔도 그 가르침을 듣기가 또한 어렵다.-법구경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예컨데 소가 수레를 끄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남악회양

유교에도 모든 사물에는 근본과 지말이 있고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으니, 그 앞과 뒤를 분별하여 알면 곧 도에

가깝다. 라고 하였다. 또 마차를 말 앞에 두지 말라는 말도 있다. 당연히 말이 마차앞에서 끌어야 한다. 선원에서는

몸을 조복調伏받는다는 말을 부끄러움도 없이 곧잘 한다.

몸을 다스린다 하여 억지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가, 몸에 여러 가지 병을 얻은 예도 적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찾는다.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설사 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곧 맞지 않다.-남악회양

'어떤물건'이라고 말한 것은 회양스님의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존재의 실체

를 물은 것이다. 그래서 회양스님은 끝내 그 실체를 알 수 없었고 따라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선가에서 자주 등장

하는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을 살펴보라'는 말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차를 마시면 열가지 덕이 있다. 飮茶十德-당.유정량

차는 단순히 정신과 몸에 이로운 음료일 뿐만 아니라,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는 일을 승화시키면 도가 되고 예술

이 된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선사들이 참선하는 정신을 겸하여 차 마시는 것을

선차라 하여 선차 공부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차 공부를 잘 하면 곧 도의 삶을 사는 일이 된다.

 

차는 왕성한 기운을 흩어 버린다.-당. 유정량

차를 마시면 우리의 몸과 정신에서 불필요하게 나타나는 왕성한 기운을 흩어버린다. 그리고 혼란스러움 몸과 정신

을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몸과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맑고 밝아지며, 본심으로 돌아와서

건전한 사람이 된다. 불필요한 기운 때문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는 동양차를 많이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

은 없다.

 

차는 수면을 쫓아낸다 -당. 유정량

수면관리를 잘하여 하고자 하는 공부를 성취하려면 반드시 차를 많이 마셔야 한다. 오랜세월 동안 사찰에서 차의 명맥

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오는 것도 수행자들이 차를 마시며 수면을 쫓는 훌륭한 방편으로 잘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수면을 쫓아내는데 차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차는 생기를 북돋운다.-당. 유정량

차는 병을 덜어준다. -당. 유정량

차는 예의와 인의를 빛낸다.-당.유정량

차는 공경과 의리를 나타내 보인다. -당.유정량

차는 맛을 알게 한다.-당. 유정량

차는 신체를 기른다.-당. 유정량

차는 도를 행하게 한다.-당. 유정량

차는 뜻을 고상하게 한다.-당.유정량

 

가장 귀한 것을 구하지 않고 다만 가장 좋은 것을 귀한다.

不求最貴 但求最好-다서

인생은 물건처럼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성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통해서 자

신의 인생을 좋은 삶이 되도록 잘 다듬고 고치며 가꾸어 가야 한다. 남이 우러러서 높이 쳐다 보아야  보이는 높고 귀한

삶이 아니라, 옆으로 보아도 보이고 밑으로 보아도 보이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그런 삶이라도 자신에게 좋은 삶이 진정

소중하고 가치있는 훌륭한 인생이다.

 

한빛

마른 나무 바위 앞에서 길 잃는 일 많으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이르면 모두 잘못 가도다

해오라기가 눈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요. 밝은 달과 갈대 꽃도 서로 같지 않다네.

분명히 알았을 때 안것이 아니요. 지극히 현묘한 곳에서도 꾸짖어야 하리라.

그대 위해 그윽한 곡조를 은근히 부르나니 허공중의 달빛을 움켜 잡을 수 있겠는가.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10

 

일색이란 모든 존재를 한 빛으로 보는 견해이다. 부처와 중생이 일색이며, 번뇌와 보리가 일색이라는 등의 견해를

말한다. 그러나 유와 무가 하나며 모든 만물이 하나라고 보는 데에도 착각과 착오가 있을 수 있으니 면밀히 살펴서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이르러 거의 다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해오라기와 눈은 같은 색이 아니다. 명월과 갈대꽃도 같은 색이 아니다.그 것들을 혼동해서 같다고 본다면 착각이다.

 

삼라만상의 천차 만별을 일색으로 보면서도 각각의 천차만별을 철저히 구분해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체 차별

법이 모두 다 한 마음이지만 일체의 차별을 또한 차별로 보아야 하고, 차별을 차별로 보면서 또한 한 마음으로 보아

야 바른 견해가 된다. 그것을 중도 정견이라 한다. 中道正見

깨달음의 아목이란 일체의 한마음으로 보면서도 그 모든것들을 혼동하지 않고 각각의 특성을 갖는 개체로 구분해서

볼 줄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대로 차별만은 쫓아간다면 그것은 다만 속제俗諦의 안목박에 안된다.

그래서 고인이 이르기를"일색은 일색일밖에 있음을 알겠다"라고 하였다.

일색은 다른말로 하면 평등이며 공이다. 공이 아닌 평등이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의 일색이며 평등의 일색

이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평등을 보되 차별을 보아야 하고 공을 보되 有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보되 승려로 보며, 승려로 보되 또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의 문제나 고금의 문제나 부처와

중생의 문제나 모두 같은 것이다. 즉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는 이치이다. 편중되면 병이요, 치우치면 고통이다

이렇게 치우치지 않고 원융무애하며 막힘없이 通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기틀을 돌리다.

털을 몸에 쓰고 뿔을 머리에 이고 저자에 들어오니 우담바라 꽃이 불속에 피는구나.

번뇌의 바다에서 비가 되고 이슬이 되며 무명의 산 위에서 구름이 되고 우레가 된다.

확탕지옥 노탄지옥 불어서 소멸시키고 검수지옥 도산지옥도 꾸짖어 없애버리네

무쇠로 된 쇠사슬과 깊고 깊은 관문에 머물지 않고 걸어다니는 다른 동물이 되어 또 윤회를 한다. -동안상찰 선사<십현담>9

 

십현담에서'기틀을 돌리다'라는 말은 근원을 움직여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온

우주가 흔들림을 보았다"는 말이 그와 같은 뜻이다. 그것을 "바람이 일어나니 꽃향기 진동하고 구름이 걷히니 달그림자

옮겨간다"라고 지극히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번뇌와 무명이란 무엇인가. 무명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며 허망한 이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다. 그러니 번뇌와 무명

이 얼마나 소중하며 허망한 이 육신 또한 얼마나 귀중한가. 번뇌가 없는 불성은 없으며 육신이 없는 법신은 없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확탕노탄금수도산이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자리가 바뀌고 지위가 옮겨지면 기틀을 돌이키는 일도 그에 따른다. 한번 두번 돌이킴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라고

하였다.

 

자리를 바꾸다

열반성 안이 오히려 위태로워서 저잣거리 길에서 언제든지 서로 만난다. 방편으로 때묻은 옷 걸어 놓고 부처라 하니

아름다운 보배로 꾸미면 다시 무엇이라 이름하랴. 나무로 만든 장승이 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고 돌로 만든 여자는 새벽

에 모자를 쓰고 돌아간다.  만고의 푸른 못에 잠긴 하늘의 달을 두번 세번 건지고서야 비로소 아는가?-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8

-모든 존재는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일체가 변화무쌍하다. 얼른 보면 그 변화하는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만 실은 별 차이가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똑같다.

그래서 "머무는바 없다無所佳"라고도 하고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川流不息"라고도 한다. 이것은 동물과 식물의 세계나

범부들의 세계나 성인들의 세계나 다를 바 없다. 열반의 경지와 저잣거리가 다른 곳이 아니다.

 

이러한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열반의 경지에 있는 것도 자잣거리에 있는 것도 인연에 따른 결과 일 뿐이다.

부처님도 인연에 다라 별의 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때묻은 옷을 입고 여기 저기 떠돌면서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일수도

있고 금으로 조각하여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곁들인 장엄한 모습일 수도 잇다. 자비를 베풀어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도

있고 때로는 화를 낼 수도 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참 부처님이다.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런 것을 진리라 하고 법이라 한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며 여름에는 검푸른 잎이

무성하다가 가을이 오면 붉은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잎이 다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것이 자연의 이치다.

산하대지가 그렇듯이 사람도 대자연의 산물인 이상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걸음걸음 흰물결과 푸른 산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취한다고 해서 아름다운것도 아니며 버린다고 해서

묘한 경계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지위를 다시 굴리니, 굴리고 또 굴려 맞이 하여 들임에 너무나 바쁘다"

라고 하였다.

 

근원으로 돌아가다.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서 근원에 돌아오는 일이 이미 틀렸으니 본래 머무는 곳이 없어 집이라 이름하지 못하네.

만년의 솔밭 길에 눈마저 깊이 덮였고 한 자락 긴 봉우리에 구름 다시 가려 있네. 손님과 주인이 화목한 시절이라도

온전히 망상 뿐이요, 임금과 신하가 자리를 같이 해도 올바름 가운데 삿됨이어라.

고향에 돌아왔으니 곡조를 어떻게 부를 까.

달밝은 집 앞 마른나무에 꽃이 피었구나-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7>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동안 전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억만 겁이전부터 있던 것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멀리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도 모순이 없지 않다. 그래서 선시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시로 손꼽히는 동안상찰 선사의 이 십현

담에서는 근원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틀렸다고 말한다.

본래 그 자리이기 때문에 달리 어디로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따로 있을 대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어느곳인들 고향이 아니던가"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枝末이 이미 공하고 근본도 역시 있는 것 아니니

근본에 이르고 고향에 돌아왔다는 말도 어젯밤 꿈속의 일과 같다"고 하였다.

혹은 "백년삼만 육천일 동안 매일 매일 반복하는 것이 곧 그것이다."라고도 하였다.

 

팔만사천법문

팔만사천법문이란 팔만사천 가지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다만 교화하고 맞이해서 이끌어 들이는 문이다.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었다.-황벽선사 <전심법요>

-황벽선사는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었다. 다만 번뇌만 떠나면 그것이 곧 법이다. 번뇌를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부처다.

일체의 번뇌를 떠나면 그 어떤 법도 찾을 길 없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근본을 깨닫다

중도에서 공왕을 섬기지 말고 지팡이짚고 고향에 돌아올지어다. 구름도 막히고 물도 막힌 시절에 그대는 머물지 말라.

눈덮인 산 깊은 곳의 나는 바쁘지 않네. 슬프다. 떠나던 날에는 옥같은 얼굴이더니 돌아올 때는 귀밑머리가 서릿발

이 되었구나. 손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도 아는 사람 없더니 이제는 한 물건도 존당에 바칠 것이 없네.-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6

-공왕이란 부처님을 뜻한다. 자신의 보물을 잊어버리고 쓸데없이 부처님이나 섬기는 일을 하지 말라. 그것은 본 고향

으로 돌아갈 사람이 갈 길을 잃고 중도에서 헤매는 것이다. 근본을 잊어버리고 바깥 사물을 좇아가거나 다른 성인들을

섬긴다면 그 것은 불교 공부가 아니다. 부디 고향을 잊지 말고 돌아오도록 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이 아닌 밖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마치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구름도 첩첩이 쌓여 있고 강물도 수없이 막혀 있어서

돌아갈 길이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육도만행을 쌓으면서 2아승지겁동안 팔만사천가지의 번뇌를 끊고

온갖 공덕을 쌓아야만 부처의 경지에 오른다는 머나먼 길은 선택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불교 공부를 하지말라

도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불법을 모두 다 공부하지 말라.오직 본래로 구할

것 없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배우라.-황벽선사 <전심법요>

-황벽선사는 " 성불하고자 하거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더이상 공부하지 말라. 누구든 자신이 아닌 밖의 것에 집착하지

 만 않는다면 이미 조니재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다"라고 한것이다.

 

용궁에 가득찬 대장경이 모두 의사들의 약방문이요 학수에서 마지막에 설한 것도 그 이치가 깊지 못하네. 참되고 텅 빈

진리의 세계에서 겨우 한 생각일으키면 이 염부제의 세계에서는 벌써 팔천년 세월이 지나가네-동안상찰 선사<십현담 5-2

-보통사람의 평범한 삶이 그대로 완전무결한 부처의 삶라는 인간불교가 바로 그러한 새옷이 될 것이다.

 

삼승을 위해 차례대로 금 같은 말씀을 설하신 것은 삼세의 여래가 다같이 말씀하신 것일세

처음엔 유와 공을 말하니 사람들이 다 집착하더니 뒤엔 공도 유도 아니라 하니 모두 다 버려 버렸네.-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5-1

-없음에 집착하는 것도 역시 번뇌요, 망상이요, 병인 줄 모른다. 그것이 있음에 집착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병이다.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는데 특별한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소금만 한 입 가득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없음은 있음에 대한 집착을 치료하는데 특효약이지만 없음은 있음에 대한 집착 이상으로 심한 고통이 된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줄곧 없음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세상의 모든 존재의 실상은 없음도 있음도 아니라고 설하였다.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고 나니

있음과 없음 모두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그 둘을 자유롭게 쓰는 중도적 삶을 이룰 수 있게 되었ㄷ.

 

세상과 함께 하면서 초연하다.

-탁한 것은 스스로 탁하고 맑은 것 역시 스스로 맑다. 보리와 번뇌가 다 같이 텅 비어 평등한데

누가 변화씨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용의 턱밑의 구슬은 어디를 가나 밝게 빛난다 하리.-동안상찰 선사 <십현답4-1>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도 그 내면에는 청정무구한 진여심이 참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다. 마치 화씨지벽이 겉은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돌이지만 그 속은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인 것과 같다. 세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만 세상에 초연할 수 있는 이유와 가능성이 여기

에 잇다. 마치 진흙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연꽃처럼.

 

세상과 함께 하면서 초연하다

-모든것이 사라질 때 전체가 드러나나니 삼승이라는 분별은 억지로 이름을 만든 것일세.

대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곳을 향해 가지 않는다.-동안상찰선사 <십현답 4-2

-마음을 펼치면 온갖 만법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 한마음을 거둬들이면 일체가 사라진다. 그 자리에 진정 대기대용과

전체작용이 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을 누가 있어 알랴만 진정한 선사의 높은 기개는 일방통해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펼쳐놓은 삼승의 분별들은 라고 보면 중생들의 잡다한 근기에 수순하다는 억지소리들에 불과하다.

 

 

높고 높은 기틀

-멀고 먼 공겁 이전부터 거두어 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하찮은 근기에 매여 있겠는가.

미묘한 당체는 본래로 처소가 없거늘 두루 통한 그 몸이 어찌 그 자취가 있겠는가.

신령한 한 구절이 온갖 형상을 초월하여 삼승을 멀리 벗어나서 수행을 빌리지 않네

천만 성인들 저 넘어까지 손을 놓아버리니 돌아오는 길에서 불 속의 소가 되었네.-동안상찰 선사<십현담 3

-본래 완전무결한 것이야 말로 최상의 것이다. 기성도 아닌 기존의 것이다. 본래부터 이미 있던것이 진실로

높고 높은 기틀이다. 그 자리는 천 부처 일만 성인들도 알지 못하고 바람 한점 통할 수 없는 곳이다.

 

조사의 뜻祖意

조사의 뜻은 공한 듯하면서도 공하지 않다. 신령한 기틀이 어찌 있고 없음에 떨어지겠는가. 삼현도 오히려 이

뜻을 밝히지 못하거늘 십성이 어찌 능히 이 종지를 알 수 있으랴. 그물을 뚫고 달아난 금빛 고기도 오히려 물에

젖었거늘 머리를 돌리는 돌말은 가리개를 벗어났도다. 은근히 그대에게 서쪽에서 온 뜻을 말하노니 서쪽에서

오고 동쪽에서 온것을 묻지를 마라. -동안상찰 선사<십현담 2

-사람에게야 동쪽이 있고 서쪽이 있고 피차가 있지만 심성에야 무슨 동쪽이니 서쪽이니 피차니 하는 것이

있겠는가. 문자를 부정하고 오질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을 가르치지 않았던가.見性成佛

 

마음의 도장心印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의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가. 마음의 도장을 누가 감히 주고 받을 수 있으랴.

한량없는 세월 동안 평탄하여 다른 모습 없는데 마음의 도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벌써 헛소리일세.

본래 저절로 신령스럽고 텅 빈 그 성품을 반드시 알라.

시뻘건 화롯불 속의 연꽃에 다 비유하노라. 무심을 가지고 도의 경지라고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도다.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1

금강경에서도 이르지 않았던가. "과거의 마음도 찾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

라고.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긴 하지만 굳이 말한다면 마음은 텅 비어 공적하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찾을 수 없고 그려

낼 수 없다. 그래서 "무수한 세월 동안 평탄하여 아무런 다른 형색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엿다. '마음의 도장'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비유한다면 마음의 본래 공적한 성격은 활활 타는 화롯불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다고 말 할 수 있으리라.

마음의 신묘한 도리를 생각해 보면 이 비유가 대단히 절실하고 근사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찾으면 없ㅇ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므로 그렇게라도 표현해 본것이다.

..

무심이란것도 한겹의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무심이란 유심이 문제가 된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이치가 곧 불교의 대의다. 그리고 이 이치가 곧 선의 대의다. 동안상찰 선사는 그렇게 표현하였다.

 

스승을 잘 선택하라.

새가 쉴 때는 반드시 그 쉴만한 숲을 잘 선택해야 하고 사람이 배울 때 역시 스승과 벗을 잘 선택해야 한다.-야운비구<자경문>

 

 

광명의 깃발이어라

-불교를 받아 지니는 그 몸은 광명의 깃발이요. 불교를 받아 지니는 그 마음은 신통의 창고이어라.-천수경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어찌하여 이 모든 중생들이 여�의 지혜를 모두 갖추고 있는가?그런데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화엄경<여래출현품

 

 

그대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육조단경

객관적으로 보면 깃발이 있고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그곳에 있던 사람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그대로 이야기

했을 뿐이다. 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다. 만약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깃발도 한 원인이며 바람도

한 원인이며 사람도 그곳에 있어서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도 한 원인이다.

혜능스님이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한 것도 당시의 불교적 소양으로서는 대단히 신기한 말일지

모르나 참으로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적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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