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유리문 안에서/나쓰메소세끼

다림영 2008. 7. 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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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마음' 을 읽고 나는 그의 책을 전부 읽기로 마음 먹었다.

물흐르듯 읽혀졌고 마음은 고요해졌다.

글은 태어난지 백년도 더 되었다.

그러나 가슴깊이 그의 깊은 정신 세계가 내게로 스며들었다.

이책은 그가 죽기전 아사이신문에 연재했던 산문을 모은글이다.

어제밤에  다 읽었으나 다시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줄을 잇고 나를 기다리는 책들로 하여 서둘러 다른 것에 마음을 옮겨가야 한다.

책의 겉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만지작 거리다 한쪽에 얹는다.  나는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영화 '사브리나'의 아버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조용히 늙어가는 모습..희끝한 머리칼, 정돈된 마음, 책장을 넘기는 소리....

고요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과 거리를 둘 줄 아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앙드레가뇽의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 를 들으며 한편을 옮겨 본다.

비는 종일 올모양이다.

비가 오면 마음이 왜이리 밖으로 나가려 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다.

글을 옮기기 전  주문을 몇번씩이나  읍조린다.

"옴마니 반메흠,옴마니 반메흠,옴마니 반메흠..."

인생은 空인것...

 

 

"유리문안에서"

 

유리문안에서 바깥을 둘러보면, 볏짚으로 덮인 파초라든지 빨간 열매가 건성드뭇 달려 있는 까치밥나무 가지라든지

멋없이 직립한 전봇대 같은 것은 금방 눈에 뜨이나, 그 밖에 이거다 싶게 헤아릴 만한 것은 거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재에 있는 내 시야는 지극히 단조롭고, 그리고 또 지극히 좁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작년 연말 부터 감기에 걸려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 채 날마다 이 유리문 안에만 앉아 있기 때문에

세상돌아가는 모양을 까맣게 모른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독서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온종일을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으로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내 머리는 가끔 움직인다. 기분도 다소는 변한다. 아무리 좁은 세계라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사건은 일어난다.

그리고 자그마한 나와 넓은 세상 사이를 격리 시키고 있는 이 유리문 안으로 이따금 사람이 들어온다. 그게 또 나로서

는 전혀 뜻밖의 사람들로 내가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런

그네들을 맞이 하거나 보낸 일조차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여기에 조금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유의 글이 바쁜 이 세상 사람들 눈에 혹시 하찮게 여겨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나는 전차속에서 신문을 꺼내들고 큰 활자에만 눈을 쏟고 있는 구독자 앞에 내가 쓰는 이같이

한가한 글자를 나열하여 지면을 채우 보이는 것을 좀 부끄럽게 여긴다. 아마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재며 도둑이며

살인 같은, 그날그날 일어난 사건 가운데 자기가 특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이라거나 또는 자신의 신경을 강하게

자극해 줄 수 있는 신랄한 기사 이외에는 신문을 펼칠 필요를 못느낄 만큼 시간에 여유가 없을 테니까.- 그들은 정류장

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신문을 사고, 전차를 타고 있는 동안에 어제 일어난 사회의 변화를 알고, 그리고

관청인지 회사인지에 도착하면 그 즉시 포켓에 집어넣은 신문지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바쁠

테니까.

 

나는 지금 그 정도로 시간에 잔뜩 얽매인 사람들의 경멸을 각오한 채 이 글을 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부터 유럽에서는 큰 전쟁<제 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언제 끝날지 예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작으나마 그 전쟁의 한부분을 떠맡았다.  그게 끝나자 이번에는 의회가 해산되었다. 다가오는

총선거는 정치계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된 것 같다.

 

농촌은 농촌대로 쌀값이 너무 폭락해서 난리이고 도시는 도시대로 어디를 가나 불경기로 우는 소리 투성이다. 연중행

사로 말할 것 같으면 봄 시즌 씨름대회가 바야흐로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요컨대 세상은 몹시 다사다난하다. 나같이

유리문 안에서 매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여간해서 신문에 얼굴을 못 내밀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내가 뭔가를

쓴다면 저 정치가나 군인, 실업가, 씨름광들을 밀어젖히고 쓰는 셈이 될 것이다. 나 혼자만으로는 좀체 그만한 담력이

생기지 않는다.그런데 이봄에 뭔가를 써보라고 하니, 자기 이외에는 별 로 관계없는 시시한 이야기를 써보려는 것이다.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내 붓의 형편과 지면의 편집 사정에 따라 결정 될 터이므로 확실히 지금은 뭐라고 말 할 수

없다.

 

전화 벨 소리에 불려나가 수화기에 귀를 대고 용건을 묻자, 어느 잡지사 남자가 내 사진을 직고 싶은데 언제쯤 찍으러

가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사진은 좀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 잡지와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과거 몇 년 간 한두권을 접해 본 기억은 있었다.  웃는 사람

의 얼굴만 가득 싣는게 그 잡지의 특색이라고 생각한 것 밖에는 지금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이 일부러 꾸며낸 듯 웃고 있는 데서 받은 불쾌한 인상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잇었다. 그래서 거

절 하려고 했던 것이다.

 

잡지사 남자는 을묘년 정월호니까 토끼띠 사람들 얼굴을 나란히 모아서 싣고 싶다는 희망을 늘어 놓았다. 나는 그쪽이

말하는 대로 토끼띠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잡지에 실리는 사진은 웃지 않으면 안 되지 않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얼른 대답했다. 어쩌면 내가 여태까지 그 잡지의 특색을 오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평소 얼굴 그대로라도 괜찮다면 실려도 좋습니다."


"예, 그걸로 충분하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상대방과 날짜를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틀후 약속한 시간이 되자, 전화를 걸었던 남자가 말쑥한 양복차림에 사진기를 들고 내 서재로 들어왔다. 나는 잠시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일하고 있는 잡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사진을 두장 찍었다. 한장은 책상앞에

앉아 있는 평소의 모습, 또 한장은 추운 뜰 한켠에서 을씨년스레 서잇는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서재는 광선이 잘

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기계를 고정시켜 놓은 뒤 마그네시아를 터뜨려야 했다.  그 불을 펑 터뜨리기 직전, 그는 목을

반쯤 내 쪽으로 내밀더니 "약속은 했습니다만, 살짝 좀 어떻게 웃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가벼운 익살을 느겻다. 그러나 동시에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남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만하면

됐지요?" 하는 것으로써 그의 주문에는 응하지 않았다.

 

나를 마당의 나무 앞에 세우고 렌즈를 내 쪽으로 향했을 때도 그는 역시 앞서와 같은 정중한 태도로, "약속은 했습니다

만 좀 어떻게..."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조금 전보다 더욱 웃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후 나흘 쯤 지났을 까. 그는 우편으로 내 사진을 부쳐 왔다. 그러나 그 사진은 그야말로 그의 주문대로 웃고 있는 사

진 이었다.  그때 나는 마치 무슨 기대가 어긋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내게는 그게 아무리 뜯

어봐도 웃고 있는 것처럼 손을 대어 조작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을 위해서 집에 오는 몇사람에게 그 사진을 꺼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웃는 것 처럼 

손질을 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 웃고 싶지도 않은 데 웃어 보인 경험이 몇번 있다.  그 거짓이 지금 이 사진 사로

하여 복수를 당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쓴 웃음을 흘리고 잇는 내 사진은 보내 주었지만 그 사진을 싣겠다던 잡지는 끝내 보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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