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손 ㅣ 계용묵 ㅣ수필 ㅣ좋은글

다림영 2024. 3. 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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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손을 베었다. 

보던 책을 접어서 책꽃이위에 던진다는 게 책꽂이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아, 넘어가기에 그것을 붙잡으려고 저도 모르게 냅다 나가는 손이, 그만 책꽃이 위에 널려져 있던 원고지 조각의 가장 자리에 힘껏 부딪쳐 스치었던 모양이다. 

섬뜩하기에 보니 장손가락의 둘째 마디 위에 새빨간 피가 비죽이 스며 나온다. 알알하고 아프다. 마음과 같이 아프다.

 

차라리 칼에 베었던들 그리고 상처가 좀더 크게 났던 들, 마음조차야 이렇게 피를 보는 듯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칼 장난을 좋아해서 가끔 손을 벤다. 내가 살아오는 사십년 가까운 동안 칼로 손을 베어 보기 무릇 기백회는 넘엇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때 그때마다 그 상처의 아픔을 느꼈을 뿐 마음의 동요를 받아본적은 없다. 

 

그러던 것이 칼로도 아니고 종이에 손을 베인 이제, 그리고 그 상처가 겨우 피를 내어도 모를 만큼 그렇게 미미한 상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건만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 종이에 손을 베이다니! 종이보다도 약한 손, 그 손이 내 손임을 깨달을 때 내마음은 처량하게 슬펐던 것이다. 

 

내 일찍이 내 손으로 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선조가 물려준 논 밭이 나를 키워 주기 대문에 내 손은 놀고 있어도 족했다. 다만 내 손이 필요했더 것은 펜을 잡기 위한 데 있었을 분이다. 실로 나는 이제껏 내 손이 펜을 잡을 줄 알아 내 마음의 사자使者가 되어 주는 데만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펜이 오른 손의 장손가락 끝마디의 외인모에 작은 팥알만 한 멍울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글 같은 글 한 줄 이미 써 놓은 것은 없어도 그것을 쓰기 위한 것이 만들어 준 멍울이라서 그 멍울을 나는내 생명이 담긴 재산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온갖 불안과 우울까지도 잊게 하는 내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해싿. 

 

그러나 그 멍울 한 점만을 가질 수 있는 그 손은 이제 확실히 불안과 우울을 가져다 준다. 내 손으로 정복해야 할 그 원고지에 도리어 상처를 입는 다는 것은, 네가 그 멍울의 자랑만으로 능히 살아갈 수가 있느냐 하는, 그 무슨 힘찬 훈계와도 같았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내 손은 불쏘시개의 장작 한 개비도 못팬다. 서울로 이사를 온 다음 부터는 불소시개의 장작 같은 것은 내 손으로  패어야 할 형편인데 한 번 그것을 시험하다 도낏자루에 손이 부풀어 본 후부터는 영 마음이 없다. 

 

그것이 부풀어서 튀여지고 도 튀여지고 그렇게 자꾸 단련이 되어서 펜의 단련에 멍울이 장손가락에 들듯, 손 전체에 굳은 살이 쫙 퍼질 때에야 위안이 든 불안은 다시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련만! , 그 장손가락의 멍울을 기르는 동안에 그러한 능력을 이미 빼앗기었으니 전체의 멍울을 길러보긴 이젠 힘든 일일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그 손가락의 멍울에 불안은 잇을지언정 그것이 내 생명이기는 하다. 그것에 애착을 느기지 못하게 되는 대 나라는 존재의 생명은 없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자처하고도 싶다.

 

하지만 원고지를 정복할 만한 그러한 손을 못 가지고 그 원고지 위에다 생명을 수놓아 보겠다는 데는 원고지가 웃을 노릇같아, 손을 베인 후부터는 그게 잊히지 아니하고 원고지를 대하기가 두려워진다. 손이 부푼 후부터 도낏자루를 잡기가 두려워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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