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를 읽으며

다림영 2021. 12. 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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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첫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히 어디론가로 멀어져가고 눈발은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나는 12월의 음악에 마음을 기대고 책만 뒤적인다. 

어느새 동생이 떠난지 한달이 넘었다. 아프고 고단했던 날들을 정리하고 눈을 감은 동생은 지금 하늘에서 하얀 눈가루를 보며 괜찮을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엄마 없는 두 아이들만 남기고 그렇게 이승의 고리를 끊어버렸다. 죽음앞에서도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려 동생은 주식창을 들여다보았단다. 

 

심난함속에서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것을 다 놓고 그냥 살고 있다.

시간은 그렇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아이들은.. 서류상 문제들을 거의 정리했다고 한다.

 

크게 아프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하며 그냥 매일 살아간다.

가난해져도 괜찮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되었다하는 마음으로 산다.

매일 두아이 걱정은 하지만 해주는 것도 없이 그렇게 죄인처럼 산다.

 

12월의 음악은 펑펑쏟아지는 눈발과 함께 종일 내 곁을 머물겠다. 

'산막일지'...

조용하고 싶어서 그냥 가만히 사는 것이 맞지 싶어서 산막일지를 빌렸다...

우리가 알고있는그런 시골생활이다.

수수하고  순수한.. 때묻지 않는 이들의 한 평생을 한 권의 책으로  다 들여다 볼수는 있을까 싶지만 

몇줄만 읽어도 욕심가득 살았던 나의 날들이 남루하기만 하다. 

 

 

총명과 지혜로 나를 높이지 말고 문자로써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지극한 도에는 사람이 없고 참된 이치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부디 제 일을 잘 지키고 항상 제 허물을 잘 살피되

질박과 정직으로 체體를 삼고 사랑과 인내로 용用 을 삼으며 푸른 산과 흰 구름으로 사는 곳을 삼고

불과 달과 소나무와 바람으로 마음을 아는 벗을 삼으라. -서산대사p67

 

"이 촌구석에서 자식 오남매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고 나는 내 인생도 한번 살아보지못했어,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그때가 사는 것 같았어."p69

 

소를 길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멍에를 씌우고 채찍을 든다. 소가 밭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소의 기운이 느껴진다. 축사에 묶여 야성을 잃었지만 야생 상태에서라면 사자도 겁내지 않을것이다. p104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

시간 옮기고 옮겨서 속히 낮과 밤이 지나가며, 나날이 옮기고 옮겨서 속히 초하루 그몸이 지나가며, 다달이 옮기고 옮겨서 홀연히 내년에 이르며, 연년 年年이 옮기고 옮겨서 잠깐 동안에 죽음의 문에 이르나니 부서진 수레는 가지못하고 노인은 닦지 못하니 누워 게으르고 어지러이 생각만 일으키니, 몇 생을 닦지 아니했거늘 헛되이 세월을 지내며 얼마나 헛된 몸으로 살았기에 일생을 닦지 않는고. 몸은 반드시 마침이 있으리니,  후에 몸은 어찌할 건가, 

급하지 않겠으며 급하지 않겠는가. p254

 

새벽까지 바느질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나와 함게 피곤에 지쳐 쓰러졌던 물건들도 함께 눈을 뜬다.

수도가 얼어 샘의 물을 길어다 솔불에 밥을 지었다.

그리던 날들은 그리 흘러가는데 마음에 수놓아진 것은

어찌 그리 잊히지 않는 걸까?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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