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로 온 손님
서른세 번째 생일날 아침, 나는 서른세 송이의 장미가 담긴 꽃바구니를 받았다.
이른 아침 나는 느닷없는 벨소리에 놀라면서도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벨은 두어 차례 더 울렸다. 나는 눈을 떠서부터 밥을 지어야 할 때까지의, 늑장을 부리며 누워 있을 수 있는 짧은 자유를 방해받은 데 대해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벽에 누가 왔담. 남편은 지난밤의 과음으로 곯아 떨어져 있었다.
대문 밖에는 낯선 청년이 서 있었다.
“아주머니세요? 꽃집에서 왔습니다.”
그는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내밀었다. 갓 꺾은 듯 싱싱하게 물기가 돋은 꽃은 미처 봉오리를 열지 않은 채 선연하게 붉었다.
“꽃을 주문할 일이 없어요. 집을 잘못 찾았군요.”
나는 짜증기를 감추지 않으며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분명히 이 댁인데요. 어젯밤 이 댁 아주머니께 배달하라고 하셨어요. 보세요. 약도도 있잖아요?”
청년이 내민 약도에는 약국과 부동산중개사무실을 거쳐 편의점을 끼고 네 번째 집에 화살표가 나 있었다. 주소도 정확했다. 꽃과, 우편함에 꽂혀 있는 신문을 들고 들어오며 나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꽃 선물은 뜻밖이었다. 무슨 연유로 누가 보낸 것일가. 생일을 기억하는 건 친정어머니와 남편 정도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라면 닭이나, 아니면 쇠고기 두어 근쯤 사들고 오실 게고 남편은 어젯밤 만취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던 가. 혹시...
문득 짚이는 곳이 있었다. 가슴이 후둘거렸으나 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엌에 잇닿은 컴컴한 광 속에 꽃바구니를 넣고는 방으로 들어왓다.
그새 잠이 깬 남편이 눈을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신문 왔어요.”
나는 신문을 뒤적이는 그의 곁에 다시 누우며 마침 눈에 띄는 흰 머리카락을 뽑았다.
“당신 머리도 벌써 세기 시작하네.”
“새치지 뭘.”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에 나는 애서 광 쪽을 피해 다니며 빨리 빨리 널린 일들을 해치웠다. 그러나 생각은 어두운 광 속에 숨긴 꽃바구니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다. 일을 마치고 긴한 볼일도 없이 몇 군데 전화를 걸어 잡담을 나누고, 그런 다음에야 나는 광 속에서 꽃바구니를 꺼내왔다. 거실 탁자 위에 놓았다가 다시 안방 화장대 위로 옮겼다. 그러다가는 다시 변명이나 하듯 현관 신발장 위에 되는 대로 놓앗다는 인상이 가제끔 얹었다.
아무래도 기일의 짓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그는 내 애인이었다. 누구나 우리가 결혼을 하든가 정사(精死)를 할 것이라고 여길 만큼 절박하고 요란스러운 연애였다. 그러나 그와 나는 헤어졌다. 그리고 당연히 살아 있다.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기르고 있는 지금, 결혼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하듯 그것을 젊은 나이에 누구나 겪기 마련인 한때의 사랑으로 편리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언젠가 우리의 떠들썩한 연애사건을 알고 있는 친구가 지나가는 말처럼, 그가 그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더라고 했을 때에도 심상히 들어 넘길 만큼. 그런데 그는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어딘가에서 항상 나를 지켜보며, 연애시절 그러했듯 생일날 아침 꽃을 보냈단 말인가. 내게 있어 유일한 ‘남자분’인 남편은 섬세함이라든가 로맨틱한 감정 따위를 어린애 장난이나 여자 같은 짓쯤으로 우습게 보는 축이었다.
나는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나이에 대한 신경질적이 되었다.
나, 예뻐요? 날 어떻게 생각하죠? 그냥 여편네에요? 아니면 여자예요? 아니면 인간이에요?
거의 호소에 가까운 내 물음에 남편은 픽픽 웃었다. 나는 때때로 남편에 대해, 아이에 대해,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에 갇혀 맴도는 생활 전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흔히 부정적인 결론에 귀착되었고 남들은 체념과 생활에 대한 사랑으로 안정된다는 나이에 나는 무위와 권태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비오는 날이면 덧창을 활짝 열고 우울하고 무거운 음악을 듣거나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우산을 받고 나가면 어느 길목에선가 나를 기다리며 손짓하는 사람과 새롭게 만나질 것 같은 기대로 어린아이처럼 서성대곤 했다.
꽃은 이미 새벽의 싱싱함을 잃기 시작했다. 아마 저녁이면 볼품없이 시들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익명으로 보내온 꽃다발이 서른세 살의 여자에게 주는 의미를 , 기쁨을, 활력을.
나는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이, 혹은 부정()이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눈화장도 짙게 했다. 그리고는 어제 시장을 보아왔기에 별반 외출할 일이 없었으나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만약, 아주 만약에라도 기일이(혹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만나자거나 하면 물론 나는 거절할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평생잊지 못해 연인의 생일날마다 꽃을 보내는 남자가 있다. 그러나 이미 남의 정숙한 아내가 되어 있는 그 여자는 죽을 때까지 꽃다발을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얘기가 어느 영화에나 소설에 있었던가를 생각하고 잠깐,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일의 아내를 동정했다.
나는 시장엘 들러 배고파 돌아올 아이를 위해 햄버거 재료를 사고 남편을 위해 맥주와 과일을 사들고 돌아왔다. 눈에 띄는 대로 새롭고 신선한 것은 무엇이든 많이 사고 싶었다.
남편이 돌아오는 벨소리가 나자 나는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꽃바구니부터 서둘러 광 속에 숨겼다. 그리고 조금은 긴장되는 기분으로 남편을 맞았다. 전에 없이 귀가가 이른 남편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여 있었다.
“당신 오늘 굉장히 예쁘군..... 그런데 꽃은 받았어? 오늘 새벽에 보내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당신 생일이잖아.”
나는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길었던 외출에서 쌓인 피로가 비로소 발끝에서부터 몰려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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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다. 어느 날 한 양쪽으로 한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박스가 배달되었다. 물건을 시킨 적도 없는데 누가 보낸 것일까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주소가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것도 아니고 초콜렛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발렌타인데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며칠 동안 소설속의 그 여자처럼 어떤 희미한 사연에 사로잡혀 얼굴을 붉히고 다녔다. 혼자 옛 기억을 더듬어 소설을 그리고 있었다.
며칠 후 한 통의 전화로 그러한 상상의 꿈은 단박에 깨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몇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의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초콜렛 잘 먹었느냐 전화가 온 것이다. ....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오정희 선생님의 소설은 좋아한다. 선생님의 소설은 흔희 볼 수 있는 주변의 이야기 같고 편안해서 좋다. 이따금 한 번씩 읽어본다. 생각할수록 별스럽지도 않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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