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안능지
의미는 사소한 데 숨어 있다
具眼能知
요네하라 마리미원방리米原万李<교양노트>(마음산책 간)에 <사소해 보이는 것의 힘>이란 글이 있다. 건축가를 꿈꾸던 젊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는 오랜 시간 고치고 다듬어 도면을 완성했다. 흡족했다. 목수를 찾아가 자랑스레 그 설계도를 내밀었다. 한참을 보던 늙은 목수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기븜과 행복의 마을이 아니라 슬픔과 불행의 마을이로군.”
“그럴리가요?”
“호가실히 애써서 만든 설게도일세. 도로와 건물의 위치, 소품의 배치도 완벽해.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있네. 그림자일세. 건물에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군. 햇빛을 받지 못하는 마을은 어두침침한 회색마을이 되고 마네. 사람들은 우울해지지. 젊은이. 명심하게나.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그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닐세.”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그림을 사왔다. 낙락장송 아래 한 고사가 고개를 들고 소나무를 올러쟈보는 그림이었다. 솜씨가 기막혔다. 안견이 보고 말했다.
“고개를 들면 목덜미에 주름이 생겨야 하는데, 화가가 그것을 놓쳤다.”
그 후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림이 되었다.
신묘한 필치로 일컬어진 또 다른 그림이 있었다. 노인이 손주를 안고 밥을 먹이는 모습이었다. 성종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했다.
“좋긴 하다만,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는 저도 몰래 자기 입이 벌어지는 법인데, 노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 화법을 크게 잃었다.”
그 후로는 버린 그림이 되었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그는 이렇게 부연한다.
그림이나 문장도 다를 게 없다. 한번 본의를 잃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식자가 취하지 앟는다. 안목 갖춘 자라야 이를 농히 알 수가 있다(具眼者能知之)
夫畵與文章何異?一失本意,雖錦章繡句, 識者不取.惟具眼者,能知
의미는 늘 사소한데 숨어 있다. 기교는 손의 일이나 여기에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버린 물건이 되고 만다. 가자일수록 그럴싸하다. 진짜는 사람의 눈을 놀래키는 법이 없다. 덤덤하고 절박하다. 꽉 다문 입에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픈 할아버지의 마음이 달아나버렸다. 목 뒤의 주름을 놓치는 바람에 소나무의 맑은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이 흩어졌다. 젊은이! 명심하게. 사소해 보이는 것을 소흘히 하지 말게.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p90
유언혹중
무리는 헛소리에 혹한다
流言惑衆
말이 많아 탈도 많다. 쉽게 말하고 함부로 말한다. 재미로 뜻없이 남을 할퀸다. 할큄을 당한 본인은 선혈이 낭자한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죽어야 끝이날까? 요즘 악풀은 죽은 사람조차 놓아주지 않는다. 이유가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송나라 때 이방헌李邦獻이 역은 <성심잡언省心雜言>을 읽었다. 몇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말로 남을 다치게 함은 예리하기가 칼이나 도끼와 같다.
꾀로 남을 해치는 것은 독랄하기가 범이나 이리와 한가지다.
말은 가려 하지 않을 수 없고, 꾀도 가려하지 않을 수 없다.
以言傷人者,利如刀斧.以術害人者,毒如虎狼.言不可不擇,術不可不擇也
남을 다치게 하고 남을 해코지하는 말이 너무 많다. 처지가 바뀌면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온다.
강변하는 자는 잘못을 가려 꾸미느라고
허물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은 다툴일이 없어
선함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안다.
强辯者飾非,不知過之可改,謙恭者無諍,知善之可遷
잘못을 해놓고 깨끗이 인정하는 대신 변명하는 말만 늘어놓으면 허물을 고칠 기회마저 영영 놓치고 만다.
사람이 과실이 있으면 자기가 반드시 알게 되어 있다.
제게 과실이 있는데 어찌 스스로 모르겠는가?
시비를좋아하는 자는 남을 검속하고,
우환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을 검속한다.
人有過失,己必知之,己有過失,豈不自知,喜是非者,檢人,畏憂患者,檢身.
잘못해놓고 저만 알고 남은 모를 줄 안다. 알고도 모른체해주는 것이다. 남의 시비를 자꾸 따지지 마라. 쌓여가는 제 근심이 보이지 않는가?
귀로 들었어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덩달아 말해서는 안된다. 유언비어는 대중을 미혹시킬 수 있다. (流言惑衆). 만약 그 말만 듣고 후세엦 js한다면 옳고 그름과 삿됨과 바름이 실지를 잃게 될까 걱정이다.
耳雖聞,目不親見者,不可從而言之,流言可以惑衆,若聞其言,而 胎後世,恐是非邪 正失實.
스쳐 들은 말을 진실인 양 옮기고 다니지 마라. 시비와 사정 이 실다움을 잃을까 겁난다. 글로 쓰면 그 죄가 더 크다. 걷잡을 수가 없다.
마지막 한마디.
말을 많이 해서 이득을 얻음은
침묵하여 해가 없음만 못하다.
多言獲利,不如默而無害.
다변인 늘 문제다. 말이 말을 낳는다. p106
‘조심’은 마음을 잘 붙들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마인드콘트롤의 의미다. 지금은 바깥을 잘 살피라는 뜻으로 쓴다. 마음은 툭 하면 달아난다. 몸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려 때 천책선사는 허깨비 몸이 허깨비 말을 타고 허깨비 길을 달리면서 허깨비 재주를 부리는 것을 득의의 삶으로 여기는 허깨비 세상의 허깨비 인생을 탄식했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 덩달아 일희일비하다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세상으로 꽉 차버린다. 나를 잃으면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 삶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돌보잖고 헛된 꿈을 향해 질주한다. 성취할수록 허탈하고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허망하다.
모든 것은 다 쥔대도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옛글에 묻혀 지내다 보니 세상의 표정을 자주 옛 거울에 비춰본다. 복잡한 오늘의 삶이 던지는 물음의 대답을 옛날에서 찾을 수 있을 까? 답답해 들춰보면 답은 늘 그 속에 다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은 가급 줄였다. 입가에서 달그락거리던 언어도 덜어냈다.
세상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은 답을 모르지 않는다. 물질의 삶은 진보를 거듭했지만 내면의 삶은 그만큼 더 황폐해졌다. 김매지 않은 마음 밭의 뒤뜰에 쑥대만 무성하다. ... 서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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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잡을 조操에 마음심心이란 글자가 조심이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이 책을 만나고서야 나는 조심이라는 한자를 알게 되었다.
손님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악세사리가 있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단골손님이다.
그제도 어제도 방문한 그녀가 오늘도 왔기에 그녀에게 전했다.
조심해야 해 . 마음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구....
하면서 조심操心에 대한 한자를 언급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가 싶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웃으며 한글인줄 알았어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때문에 그녀는 몇며칠을 가게에 드나들었고
얼마 전 구입한 것도 있는데 결국 마음을 잡지 못하고 물건을 사고 말았다.
내 눈엔 그녀의 마음이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애를 써야 하지만 그녀를 보면 걱정되어서 몇 번이나 팔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생각지 않으며 가방에 선뜻 넣고 너무 좋아하는 그녀는 장난감을 얻은 7살 남자아이 같기만 했다. 그녀의 생활에 남인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녀가 행복하면 그뿐이지만 물건을 팔았음에도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온다더니 오후부터 눈발이 마구 날리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다.
갖고 싶은 것을 품에 안은 그녀가 들뜬 마음을 잡고 조심조심 미끄러운 눈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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