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개/김훈/푸른숲

다림영 2014. 12. 1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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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부를 끝까지 잘 해내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바람이야. 머리끝부터 꼬리끝까지 신바람이 뻗쳐 있어야 한다는 것이야. 신바람! 이것이 개의 기본정신이지. 신바람이 살아있으면 공부는 다 저절로 되는 것이고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p26

 

마음이 재빠르고 정확해야 해. 그래야 남의 눈치를 잘 살필수가 있어. 남의 얼굴빛과 남의 마음의 빛깔을 살필 수 있는 내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부드러운 마음이 힘센 마음인 거야.p27

 

사람의 눈치를 정확히 살피는 공부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야. 사람 곁에서. 사람이 주는 밥을 먹어가며, 또 때로는 매를 맞고 밥도 굶어가면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해. 사람분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과 벌레들의 눈치까지도 정확히 읽어내야 해. 그게 개의 도리고, 그게 개의 공부야. 그래서 개는 일생 동안 공부를 계속해야 돼. p30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 살아가지를 못해. 나는 좀더 자라서 그걸 알았어. 그것이 살마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p42

 

봄의 언덕 위에서 익어가는 보리 냄새와 바람에 실려오는 꽃핀 숲의 냄새가 이 뻥 뚫린 코 속으로 스며들어왔어.

냄새에도 거리가 있어. 먼 냄새가 있고 가까운 냄새가 있단 말이야. 독한 냄새가 가까운 냄새가 아니고 엷은 냄새라고 해서 먼 냄새가 아니야.

먼 냄새는 냄새의 알맹이가 엉성해서 넓게 퍼져서 다가오고 가까운 냄새의 알맹이들은 촘촘해서 콧구멍 속을 가득 메우면서 들어오지.p46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p63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p69

 

봄에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빈둥거리고 있으면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느라고 윙윙윙, 쉭쉭쉭,쿨렁쿨렁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들의 몸 속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몸 속에서는 소리가 난다. 나무도 풀도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p99

 

아이들은 바람처럼 가볍고 기름처럼 미끄러웠다. 아이들은 걸어가거나 달려가지 않고 흘러서 갔다. 흘러갈 때, 엉덩이와 팔다리가 흔들려서, 아이들은 바람속을 날아가는 새나 물 속을 헤엄쳐가는 물고기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자기네들의 몸무게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풀어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들은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를 엇바꾸면서 방향을 돌렸다. 아이들은 흘러가면서, 흘러가는 동사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두 팔을 벌리고 한쪽 다리를 뒤로 쳐들고, 한쪽 다리로만 흘러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날아가는 새와 다름 없었다. p101

 

까닭없이 짖는 개는 없다. 그러나 어느 때 짖는가를 보면 그 개가 어떤 개인지를 알 수 있다. 함부로 짖을 일이 아닌 것이다. ....

낯설다고 해서 짖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이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다. ..

..그러나 짖지 않고 노려보기만 할 때가 더 무섭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p111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

p114

.그믐달을 들여다 보면 달은 이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새파란 칼처럼 생긴 그믐달의 가장자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녹아들면서 희미하게 빛날 때, 슬픈 개는 점점 사라져가는 달을 향해 우우우우 운다.p116

 

내 몸 냄새가 내 코를 스칠 때 나는 수컷으로 태어난 신세가 슬프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온 몸을 q에 적셔가며 들판을 마구 달렸고, 달릴수록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다.

비 오는 날, 마을회관에 모여서 할 일없이 술 마시는 뱃사람들의 몸에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 p146

 

젖어서 늘어진 공기 속에서 젊은 여자의 화장품 냄새는 찌르듯이 날카로웠다. 수컷으로 태어난 나의 모자람을 벼락치듯 일깨워주는 냄새였다.p148

 

주인님은 말없이 술을 마시면서 가끔씩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개가 되고 싶었다.p161

 

주인님이 밥을 삼킬 때 목울대가 흔들렸다. 그날, 배에서 주인님이 주신 미역국 맛은 깊고 부드러웠다. 희미해서 슬픈 맛이었다. p162

 

겨울의 냄새는 맑고 투명하다. 겨울에는 산과 들과 나무에서 물기가 빠져서 세상은 물씬거리지 않는다. 부딪치며 뒤섞이던 냄새들은 땅속이나 나무들 속 깊이 잠겨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세상이 텅 빈 것처럼 콧구멍에 걸려드는 것이 없다.

그래서 쟁하게 추운 겨울날에는 멀리서 다가오는 작은 맴새가 한줄기 빛처럼 가늘고도 곧게 퍼진다. 겨울에는 가느다란 냄새들이 선명해진다.

세상의 냄새들이 메말라서 깨끗해지는 겨울의 헐거움을 나는 좋아했다. 멀어서, 종잡을 수 없이 가는 냄새가 풍겨올 때 나는 그 어딘지 모를 먼 곳을 향해 빈 겨울 들판을 마구 달렸다. 그때 바람에서는 매운 냄새가 났다. 내 몸속은 찬바람으로 가득 찼고, 바람이 찰수록 내 콧구멍이 내뿜는 콧김은 뜨거웠다.

겨울밤에, 어두운 하늘에서 와글거리는 별들을 쳐다보며 개집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내 콧잔등에 와 닿는 공기는 차고 가벼웠다. 나는 서늘한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온 세상이 빛과 힘으로 가득 차는 봄을 기다렸다. 나는 겨울이 힘들어서 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봄이 신기해서 봄을 기다렸다 . 여름에, 나는 세상이 선명해지고 공기중에 습기가 빠져서 별들익 까워지는 겨울을 기다렸다.p171

 

눈이 녹고 언 땅이 풀렸다. 봄의 흙은 들뜨고 푸석푸석했다. 땅이 물러서 발바닥은 땅속으로 빠져들 듯이 허전했다.

봄의 들판에서는 겨울의 언 땅을 달릴 때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봄의 들판을 달릴 때는 발바닥 굳은살이 따듯했고 햇볕에 부푼 고운 흙에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웠다.p178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p182

 

가벼워진 햇살의 알맹이들은 마른 곡식처럼 바스락거렸다.p183

가뭄은 늦가을까지 계속되었다. 내 마지막 날들은 햇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가볍게도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p219

 

가을비가 내려서 가뭄이 풀렸다. 마른 땅에 처음 빗방울이 떨어질 때 뜨거운 흙에서 물기가 졸아들면서 먼지 냄새가 풍겼다. 비는 이틀동안 내렸고, 땅 속 깊이 스몄다. 비가 그치자 세상은 기름을 칠한 듯이 윤기가 흘럿고 할머니의 배추는 검푸르게 빛나면서 포기마다 단단하게 영글었다.p227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서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를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발바닥의 굳은 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 나는 저무는 바다를 향해 길게 짖었다....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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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를 만난 적이 있다. 동네에서 버드나무 길을 걸을 때면 주인과 함께 유유히 걷던 개다. 그의 귀품있는 외모와 눈빛으로 진돗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의 지능은 인간의 3살 정도라 들었는데 그의 눈빛은 반평생이상을 살아온 지혜로운 이의 모습 같았다  예사롭지 않았다.

내게 화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개는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런저런하고 고개를 흔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깊은 눈을 지닌 그 개를 우연이라도 만나고 싶다. 요즘엔 도통 산책을 나가지 못하니 그를 만날 일이 묘연하다. 건장한 아들이 있고 화목해 보이는 부부가 함께하는 그 집에서 개는 가족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보리와는 달리....

 

개의 기본은 신바람이라고 했다.

신바람이 있어야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큰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 학교도 휴학하고 그 일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에게 신바람 나는 일은 무엇일까? 입 꾹 닫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는데 누구는 신바람 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리 살고 있을까? 그저 사소한 일상으로 부대끼고 살지만 모든 것은 살아있어 느낄 수 있다. 신바람이라고는 어디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는 없는 삶이다. 그러나 추운겨울 자신의 집은커녕 방 한 칸에 의지해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볼 때 우리는 신바람나는 세상에 있는 것이다. 젊은 그가 한참을 살아야 이런 것을 느끼게 될까 걱정스럽다. 나도 매일 잠드는 시각이면 눈을 감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그리다가 잠에 든다. 그것은 굉장한 일인데 정말 신바람 나는 일 같다. 그렇게 마음으로 속으로 꿈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몰라 하면서.

 

개만 일생동안 공부를 해야 할까. 사람 또한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제대로 살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무슨 공부를 했을지 큰아이가 궁금하다. 물어보면 그럴 것이다. 아줌마들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 그는 요즘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을 공부하고 있다. 백화점 행사장에서.. 다행이다. 공부를 하고 있으니 ...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고 있지 않는데 사람은 왜 이리 근심을 달고 살까?..

 

이 책의 내용을 다 적고 싶었다. 가져다주어야 할 날짜가 돌아오니 나는 이만큼만 적어둔다. 언젠가 오래전 그룹의 선생님께서 이분의 책을 권한 적 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어쩌면 이리 글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지 술술 넘어가는 구절마다 마음으로 입으로 읽으며 자판을 두드리고 싶었다.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근래 들어 가장 추운 날 같다. 밤이 드니 바람은 더욱 거칠어졌는지 집으로 향한 사람들의 걸음은 더없이 빨라졌다.

가족이 있고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 어디서 등을 기대고 있을까. 출근길에 전철 안에서 쪽지를 돌리던 청년의 방은 따뜻할까? 버려진 개들은 이 추위에 어디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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