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마크 네포/흐름출판

다림영 2014. 10. 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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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과 평범

기쁨을 아는 한 가지 열쇠는 즐거움을 쉽게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까다롭게 구는 것은 취향이 고급스럽다는 증거다.

자신의 입맛에 맞아야만 만족을 느끼는 것은 세속적이면서도 otek는 신호다.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다.

어느 파티에서 만난 여자가 기억난다. 그녀는 특정 브랜드의 베르무트(와인에 여러 가지 약재를 첨가해 만든 혼성주로서 칵테일의 재로로도 쓰인다-옮긴이)로 만든 술만 마시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이 문제로 화를 내기도 했다. 또 저녁식사자리를 함께한 동료가 스테이크를 아주 복잡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익혀 달라고 주문하는 걸 본 적도 있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이 까다로운 요구가 그에게는 공증서와 같은 의미인 듯 했다. 또 아주 지적인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클럽에 등록하면서 친구 자격으로 누구도 충족시킬 수 없는 조건들을 적는 걸 본 적도 있다. 내 경우에는 인정해 줄 만한 예술작품을 고르는 데 높은 평가기준을 적용하곤 했다.

 

사람들은 이런 분별을 흔히 기준이 높은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이런 분별은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져주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훨씬 특별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삶의 감흥을 스스로 차단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 어떤 특출함도 밤에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진리다. 투병 중에 내가 깨달은 것처럼 까다로운 요구나 고상함은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 물을 못 마셔 죽어가는 사람은 물에 독성을 지닌 염소가 들어 있는지, 프랑스의 작은 언덕에서 퍼낸 물인지 문제삼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지는 삶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의 환멸과 고난들에 대한 도전을 그만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에서나 특별한 살마으로 대접받기를 요구하지 않고, 주어지는 모든 것을 특별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신의 바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중요성과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호를 발달시킨다. 실제로 좋고 싫음이 전혀 없는 사람,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히 숙맥이나 시골뜨기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현자와 아이들은 매일의 삶이 선사하는 모든 것에서 쉽게 기쁨을 맛본다. 그들의 심오함과 순진무구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현재의 삶에 깨어 있을수록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평범함의 외피속에 비범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빛은 깨진 병에도 다이아몬드에도 존재한다. 음악은 바이올린 소리에도 하수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도 존재한다. 정말이다. 신은 현관 아래에도 산꼭대기에도 존재한다. 기쁨은 맨 앞줄에도 외야석에도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의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렇다. p49

 

구름보다 오래

반쯤 열린 꽃봉오리는 구름보다 오래 기다린다.

 

요 며칠 눈을 뜰 때마다 가슴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가슴 깊은 곳이 묵직하기만 할 뿐 모든 것이 심드렁하다. 하지만 오늘 햇살이 비추지 않는다고 해서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실 지구처럼 우리의 가슴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 기압은 우리의 본성과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믿음은 마음에 구름이 잔뜩 끼었을 때도 빛의 존재를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다시는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을 때도 태양은 끊임없이 빛을 발산한다. 실제로 어떤 구름이 우리를 뒤덮건 태양은 저편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열기와 온기를 뿜어낸다.

 

가슴에 먹구름이 끼었을 때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회의주의는 해가 보이지 않을 때 내린 결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해하고 넘어가면 다시는 구름이 끼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어떤 구름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대지와 여기에서 자라는 것들은 이 점을 안다. 가슴과 여기에서 자라는 것들도 모두 이 점을 잘 안다. 이해하고도 남을 만한 우리의 온갖 고통과는 상관없이. p179

 

진정한 발견

우주의 열 가지 영역을 통틀어서 근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백은 혜학-

 

알래스카의 어느 길가에서 추위에 떨던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마이애미로 가는 차를 얻어 타려 했다. 하지만 너무 추워서 손으로 직접 만든 표지판을 들고 있기도 힘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 친절한 트럭 운전사가 차를 멈추고 말했다. “마이애미로 가는 건 아니지만, 포트로더데일까지는 태워줄 수 있어요.”하지만 젊은이는 맥없이 소리만 내뱉고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현대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는 완벽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에 경종을 울린다. 올바른 것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운명을 거부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한가? 그동안 꿈꿔왔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물처럼 주어진 길을 거부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완벽한 파트너, 완벽한 일자리, 완벽한 집을 고집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허다한가? 꿈꾸던 이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풍요가 넘치는데, 우리의 길에 도움이 될 기회가 너무나도 많은데,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고집하다가 진정으로 추구하던 것을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p246

 

두려움과 기다림 사이에서

내가 가르칠 것은 세 가지. 단순함과 참을 성, 연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적 모두를 참아내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룬다.-노자-

 

참을 성은 노자의 두 번째 핵심 가르침이다. 기다림은 언제나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솔직히 내 삶을 구원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확실히 가장 힘들고도 보람 있는 수행이었다. 끝도 없이 힘든 진찰을 받으면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때의 고통과 공포, 모호함과 우유부단함, 혼란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나는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암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회피와는 사뭇 다른 이 기다림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기다림이 없었다면 , 불필요한 치료로 기억은 물론 말하는 능력까지 잃어버렸을 것이다.

 

두려움은 성급한 행동을 부추긴다. 인내는 힘들지만 선입견을 극복하게 도와준다. 피로에 찌든 군인이 온갖 탄약을 갖고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기다림을 통해 드디어 서로 상처 줄 이유가 없음을 깨닥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피곤한 연인들도, 망므을 아프게 하는 짜증스러운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충분히 주면, 적들은 대부분 적이기를 그만둔다. 기다림이 상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내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준다.

 

타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두렵기 때문이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결국 자신을 아프게 하는 짓이고, 타인을 죽이는 것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마음이 아프거나 두렵거나 혼란스러울 때는 , 사회에서 빨리 내 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일 때는, 힘들더라도 기다려보자.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은 대체할 수 없는 분명한 아름다움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될 것이다. p291

 

내 삶의 수갑

광폭한 대응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다.-멜로디 베티Melody Beattle-

 

철학자 마이클 짐머만Michael Zimmeman 이 소년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누군가 그에게 중국제 수갑 한 쌍을 주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수갑을 건네받고나서, 호기심에 왼손 검지를 한쪽 끝에 집어넣고 오른손 검지는 다른 쪽 끝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수갑은 수갑이었던 손을 빼려고 할수록 더욱 바싹 죄어왔다.

 

그는 수갑에 걸렸다는 공포감으로 더욱 거세게 손을 빼내려 했다. 작은 수갑은 더욱 바싹 죄여왔다. 그때 문득 반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을 더욱 깊이 집어넣자, 수갑은 찰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는 부드럽게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공포심을 갖고 손가락을 빼내려 할수록 수갑이 더욱 단단하게 옥죄어오는 것 같은 순간들이 우리의 삶에도 아주 많다. 짐머만은 이 일화를 통해 용기를 강조하는 하나의 역설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를 압박하는 것들에 저항하지 않아야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p402

 

시도할 수 있는 능력

배우기도 전에 가르치려 들거나 머물기도 전에 떠나려 들면,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경험과 자신을 분리한다. 젊은시절 사랑의 상처가 주는 고통을 두려워하면서 사랑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조언해주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갈등에서 비롯될 고통이나 슬픔이 두려워서 직접 그들과 대면하는 대신 쪽지를 남겼던 기억도 난다. 얼굴을 맞대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불편함을 건너뛰기 위해서였다. 끔찍한 항암치료를 앞두고 닥칠지도 모르는 온갖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대비하다가, 아무리 준비해도 이 경험을 피해갈 수 없음을 깨달은 기억도 난다.

 

배우기도 전에 가르치고 , 머무르기도 전에 떠나고, 겪어보기도 전에 짐작하는 이런 분리들은 내게서 가장 깊은 자원을, 생명력이라는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고통 탓이었지만 이렇게 뒷걸음질 친 탓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창백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바늘이나 손, , 햇살이 살갗에 내리꽂힐 때 우리가 할 일은 내면으로부터 이것들의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뿐이다. 안과 밖이 만나는 이 순간에 영혼의 힘이 생기고 , 이 힘이 깨어 있음에 필요한 온기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p446

 

아침의 의미

영혼을 고요하게 만드는 광막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생명력의 한가운데서도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서 자신이 무엇의 한 부분인지 깨닫지 못한다.

 

다시 또 다시 뚫고 나아가는 시작의 작은 빛, 이것이 아침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 빛은 아주 크고 분명하며, 고요히 그러나 완벽하게 평생을 우리와 함께 한다. 그래서 이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경험이 남긴 먼지와 모래들은 매일 우리를 뒤덮는다. 이로 인해 울적해지다가도 우리는 다시 생각하고 계획을 짜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고는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 적절한 방법인지 걱정한다. 이런 걱정들은 우리를 어둡고 어수선하게 만든다.

 

걱정이 아무리 커도, 우리는 결국 피곤에 젖어 낮아 일어난 일들을 밤의 침상으로 가지고 간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마무리를 못한 것 같아도 잠에 내맡기는 것은 고요한 기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잠에 내맡기는 것은 반성을 위한 본능적인 명상과 같다. 파리가 얼굴을 문지르거나 어미 사슴이 새끼를 핥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훈련이나 기도를 하지 않아도, 결심이나 실수와 상관없이 이내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자신을 내맡겨 모든 의도와 후회를 고요하게 만들면, 시작의 작은 빛이 다시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이 심오하고 단순한 진리를 피할 길은 없다.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먼지처럼 뒤덮는다. 우리의 가슴과 정신을 뒤덮는다. 소진의 해변에 이르러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세례를 받듯 잠의 물결속으로 미끄러질 때까지 우리를 뒤덮는다.

 

그러므로 초조하거나 짓눌리는 느낌이 들 때는, 무언가를 파악하거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는 휴식을 취한다. 어떤 이들이 신의 음성이라고 하는 끝없는 시작의 빛이 이미 일어난 일들을 뚫고 솟아오르도록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 우리도 새벽의 빛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눈 뜰 것이다.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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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마음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애써 극복하려 하지 않고 일찍 잠에 들어간다고...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친구만의 각별한 고난에 대한 대처법이었던 것 같다. 삶을 멋지게 이끌어가며 반듯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보니 고요한 잠의 명상은  어떤 치유의 능력을 주었던 것이다. 긴 시간 나를 안아 재우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순한 의식이 바로 잠 명상인가 한다.

 

아침과 저녁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예전에도 간혹 명상을 한다고 앉아 있곤 했는데 오만잡념으로 심히 흔들렸다. 그러나 요즘은 정목스님의 불교명상의 도움으로 아득한 세계를 만나곤 한다. 매일 마다 명상으로 나를 돌보고 있다.

 

천국도 지옥도 마음이 만듦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 끌려 다니며 천국의 길을 잃곤 한다

명상을 접하며 걱정을 물리는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낀다. 고요한 세계 속에서 들숨 날숨에만 의존하고 그 순간만큼은 잡념을 물리게 되니 감사한 일이다.

 

바람 조용하고 날씨 참 좋은 주말이다. 저마다 차를 타고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지 바쁘게 지난다. 나도 그 옆 한자리 앉아 들판과 오솔길과 숲을 만나러 가고싶지만 유리문에 기대어 흐르는 주말의 거리만을 감상할 뿐이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어지러웠던 마음 밭을 정리한다. 다소 찬바람이 들어오는 문을 닫고 잠시 고요해 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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