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알랭드보통
거대한 바다와 비교하면 사람은 늘 아주 작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머나먼 항구 이름만 나와도 그곳에서 펼쳐지는, 우리가 여기서 알고 있는 삶보다 훨씬 생생할지도 모르는 다른 삶에 대한 혼란스러운 갈망을 느끼게 된다. 요코하마, 알렉산드리아, 튀니스 같은 이름에서는 낭만적인 느낌이 진하게 묻어난다. 실제로는 그런 곳들 역시 권태와 훼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한동안은 혼란스러운 행복의 백일몽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다. p30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 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혀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나 과거의 거장에게만 초첨을 맞추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p86
그렇게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길고 긴 아침나절의 공복감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매끈하게 빠진 줄무늬 초콜릿 서클을 만드는 것도,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혁신들의 만신 전에서 비록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그 나름의 자리를 확보할 자격은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 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이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이 작업 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만 의미 있게 보일 수도 있다.
아이들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지역 영업 관리자나 건물 서비스 엔지니어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의미심장하다.
아이들 책에는 보통 가게 주인, 건설 노동자, 요리사, 농부가 등장한다. 인류의 생활을 눈에 띄게 개선하는 일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선천적으로 균형과 비례를 의식하는 피조물인 우리는 ‘스위트 미스킷브랜드 감독 코디네이터’ 같은 직책에는 뭔가 뒤틀린 것이 있다고 여기며, 빌프레도 파레토의 주장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명민하다 해도, 아직 아무도 설득력 있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 다른 원리가 무시되고 더 섬세한 인간 법칙이 침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p83
나는 르네에게 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나는 르네에게 우리의 로봇이나 엔진은 그것들이 줄 수 있는 혜택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우리 욕구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낮은 것에만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우리는 과자를 빠르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전문가이지만 아직도 감정적 안정이나 결혼의 조화를 이루어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p94
직원들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위층을 올라간다. 사무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곧 로비의 이상한 은 조각품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곳이 첫날 얼마나 낯설어 보였는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회계사의 만 가지 가능성도 이제 마음에 드는 몇 가지로 줄어들었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는 명함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우연적인 우주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덧없는 의식 한 조각이 아니라 ‘비즈니스 유닛시니어 매니저’라고 말해준다. 아니, 좀 더 의미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료들이 그 직책을 근거로 나에 관하여 가정하는 것들이 나를 제어해주는 덕분에 새벽의 외로움 속에서도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얼마나 만족스러운지...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다. p266
현대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성취한 것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허리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건물, 스타일 대한 감각, 우리의 관념들, 이 모든 것은 곧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크나큰 자부심을 갖는 기계들은 햄릿이 들고 다니던 요릭의 두개골만큼이나 진부해 보일 것이다.p360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이 좋으면 우리는 모든 나라의 모든 인간 경험과 동일시를 하고, 머나먼 땅에서 벌어진 살인에 한숨을 쉬고, 우리 자신의 수명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경제적 성장과 기술적 진보를 바란다. 우리가 악당 세포 몇 개만 거치면 바로 종말에 이르는 존재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00에서 오전 11:15분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 버리는 것-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p367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집중시켜 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줄 것이다. 거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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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일하고 많은 보수를 받는 즐거운 인생을 부여받고 싶을 것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보면 그 안은 그들의 노고가 한없이 녹아있을 것이다. 많은 보수를 받으면 그에 응당 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 내면은 헤아리지 않고 보이는 것으로만 부러워하는 것은 삼가야 하겠다.
정신을 팔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일 속에 있으면서도 오만 잡생각으로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땀을 흘리고 몸이 고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에 마땅한 보수로 행복해 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인데 용기가 턱없이 부족하니 이말 저말 할 것은 없다. 죽을 마음으로 도전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몸이 아니니 두려움이 앞서고 생각의 계단을 오르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어떤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막연한 생각과 수많은 계획으로 하루해가 저문다. 친구 말처럼 결단을 내리고 도전해야 한다는 데 나이가 드니 갈수록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은 옳은 것인가. 더 나은 곳을 향해 걸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나은 곳이라 해도 그것이 꼭 나은 길만은 아닐 수도 있고 더 늦기 전에 도전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것에 취해 정신없이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은 내가 생각한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한 여인이 사진을 보여주며 그 글귀를 보고 함빡 웃는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보여주며 앞으로의 거대한 꿈을 환상에 젖어 쏟아낸다. 괜스레 듣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지는데 난 그렇게 거창한 꿈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이루기 힘든 일을 하나씩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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