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8.5.일 수
정민의 世設新語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제명 선생 작사 작곡 ‘고향생각’의 1절 가사다. 저물어도 마실 오는 친구 하나 없다. 초저녁부터 허공의 흰 달을 올려다보니 외로움이 바다 같다.
타지의 초라한 거처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 막막한 생계 걱정과 앞날 근심만 하염없다.
늦은 밤 연구실을 나와 환한 달빛을 보며 걷다가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두운 길 위로 그 처연했을 심사가 엄습해와 툇마루에 나와 하늘 보며 흘리던 그 눈물을 떠올렸다. 인터넷이나 전화가 없던 그 시절에는 그리움도 막막함도 지금과는 농도가 애초에 달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이나 전화가 없던 그 시절에는 그리움도 막막함도 지금과는 농도가 애초에 달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진자앙 (659~700)은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자니, 홀로 구슬퍼져 눈물흐른다()”고 노래했다. 천지는 인간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다 머금고 유유히 흘러간다. 차고 넘치거나 일렁임없는 유장한 흐름이다. 이를 마주해 그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 급기야 서글픈 눈물로 맺혀 떨어지더라는 얘기다. 슬픔조차 유장하다.
삶의 속도는 느려터지고 팍팍한 생활고에 배고파 힘들었을망정 오가는 마음만큼은 간절하고 안타까웠다. 단추 몇 개만 누르면 바다 건너 가족 얼굴이 화면에 뜨고,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편한 세상에서는 떠올리기 힘든 감정이다. 마음에 안든다고 치약 하나를 다 짜서 먹이고 급기야 때려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요즘 군대다.
고일틈 없이 소비되는 감정에 길들어 사람 목숨도 게임의 리셋 버튼 누르듯 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속도의 시대가 낳은 젊은 괴물들의 흉포함을 어찌해야 옳은가? 자리보전에 급급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덮기 빠쁜 이들의 행태도 밉다.
2절 가사는 이렇다. “고향 하늘 쳐다보니 별 떨기만 반짝거려.... 저 달도 서쪽 산을 다 넘어가건만,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이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불면도 자꾸 깊어져만 간다.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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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생략-
한자생략-
한자를 하나하나 찾아 옮겨쓰기가 나의 컴에 이상이 크다. 하여 제목만 옮겼다. 그리고 윤일병의 아픔 때문에 기운이 나질 않는다. 세월호 때와 비슷한 무겁고 슬픔에 겨운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시간장소를 가릴 것 없이 그 아픔이 밀려와 모든 것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이들과는 다르게 아들을 셋이나 두었고 한 녀석은 지금 군에 있고 군에 가야 할 막내가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친구들은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관심병사나 문제를 지닌 사람들이라고만 보는 시선을 지닌 이들의 생각을 난 이해하지 못한다.<그런생각을 지닌 친구들이 있음>
입시위주의 교육과 흩어져가는 가족과 버려지는 아이들과 시시때때로 접속하여 무자비한 폭력게임에 어릴 때 부터 노출된 모든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혁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쉽지 않을 일일터이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과 평안을 위해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의 지원으로 따뜻한 심성을 길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방팔방으로 흐르는 복지정책은 이런곳에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치가 떨리는 행동들을 어찌 하루도 아니고 한 달 내내 행해도 누구도 신고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그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무언가 다 바꿔버릴 듯 서로들 앞에 나서서 굳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계획과 쇄신을 발표했다. 그런 결과가 오늘 윤일병의 처참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후로도 여기 저기서 군의 사건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할 말이 없다. 그들은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누가 키운 것인가. 전반적인 교육이 철저히 잘못되었다. 인성은 사라져가고 학벌위주로 향하는 이 나라와 사회의 책임이다.
그리고 은폐한 지위 높은 어른들은 누구신가. 내 자식이 맞아 죽어도 그리하실 터인가. 슬프기가 한량없다. 다소 아이들에게 냉철한 내가 이런데 그의 부모는 어찌 오늘을 보내고 있을 것인가.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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