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다산의 마음(정약용 산문 선집)/편역 박혜숙

다림영 2014. 6. 2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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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사람, 꿈꾸는 사람

 

얼굴은 벌겋고 인사불성인데다 구역질을 하고 큰 소리를 질러대며 비틀비틀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취한 사람이다. 그에게 취했다고 말하면 버럭 화를 내며 자기는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눈을 감고 코를 골다가 때로 빙그레 웃으며 잠꼬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꿈속에서 좋은 벼슬에 올랏거나 혹은 돈이나 보석 같은 탐나는 물건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찌 취한 사람과 꿈꾸는 사람만 그렇겠는가? 병이 위독한 사람은 자신의 병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병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의 병은 심각하지 않다.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친 줄을 모른다. 스스로 그것이 나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잘못을 고칠 수도 있다.

 

굴원(屈原)은 취한 사람이다. 그는 성격이 너무 강직하면 자기 몸을 망치게 된다는 것과 재능이 뛰어나면 끝내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비록 술을 먹고 취한 것과는 다르지만 이 사람도 크게 취한 사람이다. 그래서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는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나 홀로 깨어있다라고 말했다.

 

장자(莊子)는 이미 깨어 있는 사람이다. 오래 사는 것과 일찍 죽는 것을 마찬가지로 여기고 길고 짧음을 한가지로 보았으니, 이 사람은 환히 깨달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꿈속에서 그 꿈을 점친다라고 말한 것이다.

 

대개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가 깨어있다”, “깨달았다”,“깨쳤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깊이 취하거나 잠들었다는 증거다. 스스로 취하고 잠들었다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깨어날 기미가 있는 사람이다.

 

황 아무개 군은 어려서부터 자기수양의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다. 세속에 휩쓸려 비록 성취한 바는 없지만 사람됨이 초연하고 깨끗하며, 그 모습은 맑고, 말은 과묵하고 허세가 없다. 파리처럼 이익을 좇아 분주한 사람들이나, 돼지처럼 편하게만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그는 또렷하게 깨어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하루는 황군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저는 취해서 살고 꿈꾸다 죽을 사람입니다. 내 거처를 취하고 꿈꾸는 집이라 이름 지었는데,이에 대한 글을 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취하고 꿈꾸는 것에 대해 본디 생각한 바가 있었기에 글을 써서 그에게 준다. p121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세속의 재미에 푹 빠지는 것은 흡사 초파리가 식초에 빠져드는 것과 같고, 불구덩이를 기를 쓰고 좋아하는 것은 마치 불나비가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이는 진계유의 ,정관편>(靜觀篇)에 나오는 말이다.

 

바위 틈새에 살고 계속물을 마시며 사슴과 한 무리가 되어 사는 자야말로 자신의 듯을 이룬 사람이다. 높은 벼슬아치가 되면 용(龍)이나 봉(鳳)처럼 뒤어난 인물들과 함께 날아오를 줄 알지만 어찌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하겠는가?

 

장자(莊子), 장수하는 것과 요절하는 것이 마찬가지며 삶과 죽음이 한가지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소동파(蘇東坡)가 지식을 탓하며 어리석음을 원한 것 역시 사리에 통달한 말이다.

 

향긋한 채소와 연한 죽순도 때맞춰 배불리 먹으면, 병들어서 고깃국을 먹는 것보다 낫다. 무명옷을 입고 갈건을 쓰더라도 자유롭고 한가하게 살 수 있다면 어찌 높은 벼슬아치가 되어 바쁘게 사는 것을 부러워하랴.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만족하며, 근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전광석화 같은 인생을 잘 보내는 것, 이것을 나는 큰 지혜, 큰 복이라고 말한다. p127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근본이 무엇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반드시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근본이 무엇인가? 효도와 공경이다. 먼저 효도와 공경을 힘써 실천하여 근본을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넉넉해진다. 학문이 넉넉해지면 독서의 단계와 세목을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천지간에 외로이 서서 오직 글쓰기에 내 목숨을 의지하며 살아 있을 따름이다. 혹 마음에 드는 글을 한 구절이나 한편이라도 지으면 홀로 읊조리고 음미하다가 이 세상에서 오직 너희들에게만 보여 줄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렇건만 너희들은 생각이 이미 아득히 멀리 달아나 글을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처럼 여기는구나.

 

세월이 흘러 몇 년이 지나 너희들이 뼈대가 굵어지고 수염이 생기면 얼굴을 마주해도 밉상일 텐데, 그때는 아비의 글인들 읽으려 하겠느냐? 나는 조괄이 그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으므로 훌륭한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만약 글을 읽지 않는다면 내 저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내 저술이 무용지물이 되면 나는 하늘 일이 없어 장차 멍하니 진흙으로 빚은 인형처럼 될 것이다.

 

그러면 열흘이 못 되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약으로 고칠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글을 읽는 것은 내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잘 생각해 보거라. 너희들은 잘 생각해 보거라.

 

내가 전에도 여러 번 말했다. 청족(淸族)은 비록 독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지만, 폐족인데도 식견이 모자라면 더욱 가증스럽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이 비루하게 여기는 것도 슬퍼할 만한데, 지금 너희들은 또 자신을 천하게 여기고 자신을 비루하게 여기니, 이는 스스로 만든 일이라 슬퍼할만하다.

 

너희들이 끝내 배우지 않고 자포자기해 버리면 내가 저술하고 편찬한 것을 장차 누가 수습하고 정리하며, 바로잡고 편집하겠는가? 너희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 글은 끝내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내 글이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나를 탄핵한 글과 재판 기록만 보고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너희들은 아무쪼록 이런 점을 생각하고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기 바란다. 나의 이 한 가닥 학문의 맥이 너희들에게 이르러 더욱 커지고 더욱 발전한다면 그 맑음과 귀함은 대대로 벼슬한 집안과도 바꿀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찌하여 글 읽기를 그만두고 하려 하지 않느냐?(......)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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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산속에서 풀뿌리 캐먹으며 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생이 어디 있을까만 가족을 거느리고 혼자 어찌 그 삶을 일구어 갈 수가 있을까 . 가끔 난만한 세상이 버거워 유배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수십 년 이어온 장사꾼의 생활을 접고 싶은 마음이 부쩍 들고 있으나 무엇을 해야 먹고 사는 것을 해결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의 학교가 모두 끝나지 않아 이렇게 목을 매고 여전히 낯선 삶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애를 쓰고 있다.

 

어느 한 날은 가라앉았다가 또 어느 날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다가 그렇게 흔들리며 이 여름을 지내고 있다. 가만히 앉아 각종의 시나리오를 써 보아도 가만있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이라는 결론이지만 다가오는 무거운 어떤 기류에 근심은 천근이다.

그러나 안다. 긍정의 힘으로 흐를 수 있을 것을...

 

다 접고 떠난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다 잃고 집은 마련했는데 먹을 꺼리 없고 아이 학교비용 있어야 하니 공장에 나가는데 그 월급조차 받지 못한다는데도 행복한 웃음을 전한다. 집 앞에 호수에서 자신이 굉장히 큰 물고기를 잡았 노라며 깔깔거리며 자신의 삶을 전 하는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역특산물을 판다며 두 번째로 전화를 주었노라 소식을 전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어쩌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용기와 삶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눈 딱 감고 일을 벌이면 어딘들 살지 못할까 하지만 사방이 나를 묶고 있으니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합리화를 시키고 세상을 관망하고 있다.

이제 제 2의 삶을 시작할 때가 되기도 했으리라.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면 어떤 것이라도 어디에서라도 날아와 나와 연이 닿으리라.

긍정의 힘은 무궁하나 용기는 많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다산처럼 누가 나를 산 속 그 어디든 사람 많지 않고 한적한 곳에 유배를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때마다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다산이 살았던 그 시절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나의 친구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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