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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일홍에게

다림영 2014. 6. 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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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뒤로 넘어갈 뻔 했다.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더위를 뚫고 가게에 도착했는데 철문을 올리는 순간, 나의 꽃들은 무참히 짓밟혀져 있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았다. 흙은 다 파헤쳐져 있었고 채 자라지도 않은 천일홍의 팔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화분의 흙마다 구멍을 파서 다 뒤집고 엎어 놓은 것이다.

 

애지중지 시시때때 들여다보며 공을 들이던 것이었다. 예쁘고 귀여운 보라 빛 꽃망울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꽃밭의 모습에 순식간 기운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언젠가 남겨둔 파란색의 쌀로 된 쥐약부터 찾았다. 옆집의 아이스크림통과 벽 사이에 마구 뿌렸다. 분명 나의 적은 좁은 그 길을 거쳐 바닥과의 약간의 틈으로 셔터 문을 통과했을 것이다.

 

장사할 물건을 꺼내어 놓는 것은 미루고 화분의 흙을 돋우고 살아남은 꽃대를 세우며 불꽃이 일던 마음을 정리를 했다.

나쁜 놈! 어쩌면 그리도 심하게 모조리 파헤쳐 놓을 수가 있는 지 , 만나기만 해 봐라....

 

언제부턴가 그렇게 나는 꽃이 필 무렵이 되면 쥐와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꽃을 꺾고 잎잎을 뜯어 먹고 그것도 모자라 흙을 아무렇게나 파헤쳐 놓는 것이 쥐의 소행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하다가 셔터문과 바닥과의 사이에 벽돌로 막아놓고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는 문을 내릴 즈음 동네 친구와 가게 앞에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술 한 잔을 했는지 같은 얘기를 자꾸만 반복했고 나는 늦은 시각이어서 집으로 빨리 가고픈 생각만 있었다.

 

친구가 집으로 발길을 돌린 다음 문과 바닥사이에 벽돌을 잘 여며놓았어야 했다. 급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마음만 바빠 제대로 해 놓지 못했다. 괜한 친구를 원망하다가 친구 덕으로 적이 나의 천일홍을 올해도 여지없이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꽃이 만개한 연후에 일격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활짝 핀 꽃들을 모조리 끊어 구석에 쌓아놓고 난리를 쳐 놓았던 작년의 일들이 떠올랐다.

사후약방문이 되었지만 근처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철저히 문단속을 해야 하겠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주인의 실수로 만신창이가 된 꽃이여 미안하고 미안하다. 고통스런 오늘을 잘 견디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잘 자라 신록이 우거지는 7월에는 고운 꽃을 보란 듯 피워주렴. 힘든 하루를 굳건히 견디며 이곳 을 지나는 이들이 순간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작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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