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6월 11일
정민의 世說新語
고전명문감상 수업 시간에 청나라 공자진( 공自珍:1792~1841)의 ‘병매관기(病梅館記)’를 함께 읽었다. 그가 쓴 병든 매화의 집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업자들이 파는 분매(盆梅)를 보니 하나같이 온전한 것이 없었다. 글 속에서 혹자의 입을 빌린 설명은 이렇다. ‘매화는 굽어야 어여쁘지 곧으면 맵시가 없다. 기웃해야 볼만하지 바르면 볼 것이 없다. 성글어야 고우니 빽빽하면 태가 안 난다(梅以曲爲美,直則無姿,正則無景,梅以疏爲美,密則無態).
문인화사(文人畵士)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취향을 돈벌이를 원하는 화훼업자들에게 슬며시 뚱겨주어 “바른 둥치를 찍어 곁가지를 기르고, 촘촘한 것을 솎아내 어린 가지를 죽이며, 곧은 것을 쳐내서 생기를 막아버려 비싼 값을 구한다. 그 결과 강소성과 절강성의 매화가 모두 병들고 말았다(斫其正,養其旁條:刪其密,?其稚枝:鋤其直,?其生氣,而江浙之梅皆病)”
멀쩡하게 중심을 잘 잡아 뻗어 오르던 둥치를 도끼로 찍어내서 곁가지를 틔우고, 제 성질에 따라 촘촘히 돋는 잔가지는 솎아내 듬성듬성 남긴다. 곧게 쭉 내지르는 가지는 끈으로 동여매서 휘게 만든다. 건강한 매화나무를 이렇게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그제야 운치가 있네, 값이 얼마네 하면서 흐뭇해한다는 것이다.
병든 매화를 300분이나 구입한 그는 먼저 화분을 깨고 매화를 땅에 묻어 준 뒤, 칭칭 동여맨 결박을 시원스레 풀어 주었다. 내가 너희를 모두 온전하게 치료해 주마, 든든한 중심도 다시 세우고, 뻗고 싶은 팔도 쭉쭉 뻗고, 여기 저기 돋는 잔가지도 생긴대로 키워보렴.
전체 글의 강독을 마치고 잠깐 딴전을 부리다가 내가 말했다. “글 속의 병든 매화는 바로 너희다. 어려서부터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 돼,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 못받고 저렇게 하면 좋은 대학 못가 하면서 이리 꺾이고 저리 비틀리는 동안 본성을 다 잃고 말았다.
어느새 저도 그걸 맵시로 알아 칭찬받을 짓만 하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느라 바쁘지.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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