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6월 4일
一事一言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강렬한 쇼핑 욕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생필품 한두 개 정도가 아니라 상점에 있는 코너 전체를 쓸어 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내게 그런 강력한 지름신을 내려준 곳은 바로 함부르크였다. 멋진 가방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주방과는 담쌓고 지내는 내가 독일 주방용품의 미니멀한 아름다움에 측해 주방도구를 싹 갈아엎고 싶은 충동을 느긴 것이다.
나는 뒤집게 .국자.스푼.포크.프라이팬까지 한아름 업어오고 싶은 몹쓸 지름신의 습격을 뒤로 하고, 달걀모양의 타이머 하나와 귀여운 병따게 하나만을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숱한 여행의 기억속에서 내가 얻은 최고의 자산이 바로 ‘절제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평송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해보기’보다는 오히려 평소보다 행동의 가짓수를 줄이는 데서 나온다. 사진찍기조차도 풍경에 대한 소유욕임을 알게 되니 디카 사진보다는 마음속 스크린에 담는 풍경의 꿈틀거림이 훨씬 따뜻하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사진 찍지 않고 여행해 보기, 한국 음식 포기하고 철저히 현지 음식으로 버티기, 호텔에서 수건 한 장만 쓰기, 인터넷 하지 않기, 휴대폰 들여다보지 않기. 이런 사소한 절제를 실천할수록 몸은 자유로워지고 생각은 해방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 그것이 없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 절제는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예행연습이기도 하고 욕망의 거미줄에 내 소중한 자아를 통째로 내주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나에겐 일 중독이 가장 끊기 힘든 집착이었다. 사실 아직도 여행 기간 동안 완전히 놀아본 적은 없다. 강의는 못 하지만 글스기는 차마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조차도 여행하는 동안만은 줄여야겠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테마파크 자유이용권처럼 이것저것 한달음에 다 해보는 성취감이 아니라 템플스테이의 고요한 절제에 더 가깝다. 그런 절제의 미덕을 배우는 여행이 온갖 중독에 찌든 우리 현대인의 신체를 맑게 정화해 주지 않을까.
절제는 나를 괴롭혀서 내 욕망마저 부정하는 자기 말살의 행위가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없어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여행의 깊은 희열은 ‘무엇을 하기’보다 ‘무엇을 하지 않기’에서 우러나온다.
정여울.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저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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