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다
임금님이 기거하는 침실의 동쪽과 서쪽 벽에 재해를 입은 여러도를 세등급으로 나누어 고을이름과 수령의 성명 및 세금 경감과 구휼과 관련한 각조목을 죽 써놓았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그 위에 친히 기록하셨다. 그리고는 신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 더구나 재해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백성을 돌보는 것은 특히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는 사안이므로 잠시라도 중단할 수 없다. 오늘 한 가지 업무를 보고 내일 또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면 곤경에 처한 우리 백성들이 편안한 자리로 옮겨갈 것이다.
그런 뒤에야 내 마음도 편안할 것이다. 학문과 물뿌리고 청소하는 일에서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일에 이르러야 공부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사업과 학문을 막론하고 중도에 그만둬서 이전까지 일구어놓은 공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p75
더위는 견딜 만 하다
하루는 날씨가 무더웠다. 임금께서 침실 남쪽 건물에 계셨는데 처마가 몹시 짧아 한낮의 해가 뜨겁게 내리쬐엇다. 신이 “이 방은 협소하여 한여름에 한결 불편합니다. 따로 궁을 짓자는 요청은 윤허를 얻지 못했으나 서늘한 곳을 가려서 무더위를 피하는 것즘은 안될 것이 없을 듯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비좁은 이곳을 버리고 다른 서늘한 곳으로 옮기면 또 거기서도 견디지 못하고 기어코 더 서늘한 곳을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만족할 때가 과연 있겠는가? 참고 견디면 바로 여기가 서늘한 곳이다.
이런 일로 미루어 보면 ‘만족할 줄 안다(知 足)’는 두 글자가 적용되지 않을 곳은 없다. 그러나 학문에 힘쓰고 태평한 정치를 이루려는 것만은 작은 완성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욱 힘써 정진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탄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p88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새해 첫날에 농사를 장려하는 윤음을 몇 번이나 내렸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농사가 해마다 잘되지 않아 재작년에는 기근이 들고 작년에는 더 심한 기근이 들었다. 어찌 날씨가 가져온 재앙만 탓하랴? 대개 밭갈고 김매는 시기를 놓친 적이 많앗고 물을 대어도 효과를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윤음을 내리는 것이 형식만 갖추는데 불과하지 않은가? 형식만 갖추는 것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래서 올해에는 하지 않으려고 하엿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성을 바쳤는데 보답받지 못하거나 감동할 일을 했는데 응하지 않는 인간사란 없다.
지방의 수령이 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것은 내 자신이 반성할 점이다. 나는 내 정성을 다하면 된다. 더구나 올해는 지난해와는 다르지 않은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또 이렇게 불러 쓰노니 관찰사와 수령은 명심하기 바란다. p101
의심하고 의심하라
이치를 따질 때에는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힘써 탐구하여아 한다.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의심을 일으킨 곳에서 또 다시 의심을 일으켜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바짝 다가서야 비로소 시원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일도 이와 같다. 정황이나 법조문에서 털끝만큼도 의심을 일으킬 만한 거리가 없다고 해도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또 의심을 일으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도달한 뒤에라야 비로소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렇게 확대해 나간다면 잘못 처리한 사건이 드물 것이다. -166
새로워야 눈이 번쩍 뜨인다
나라에 학문을 담당하는 기구가 세 개나 설치되어 있다. 그 기구에 소속된 관료를 쓰고 직책을 맡기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까닭이 없으므로 새로운 직책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새로 기구를 설치하려고 하는 내 의지에 어찌 합당한 이유가 없겠는가?
보통 수준 이하의 사람 중 영예와 이름에 기운이 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이란 낡은 것에는 무덤덤하고 새것이라야 귀가 솔깃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관직을 만들고 인선에 최선을 기하여 나라와 사람 모두가 이 사람이라야 이 자리에 적임자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행실을 장려하고 예술을 진흥시키는 길에 보탬이 되리라.
이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관직을 설치한 이래로 그 자라에 뽑힌 자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그만큼 선발을 신중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뽑힌 사람이라고 해서 과연 모두가 뽑히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인지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인물인지 모르겠다. 백성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점이 없다면 틀림없이 비아냥거림과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그것이 또 내가 몹시 두려워하는 일이다. p127
작은 것부터 따져야 한다
발본색원(拔本塞源 )하는 길이 큰 것을 앞세우고 실질에 힘쓰는 데 있다는 것쯤은 잘 안다. 그런데 일의 성격에 따라 힘을 들이는 방법을 강구하자면 작은 것을 소홀히 하고 형식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작은 것을 거쳐 큰 것에 나아갈 수 있고, 형식을 통해 실질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과인이 작은 것이나 살피고 형식에나 치중한다는 혐의를 받으면서도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나가려는 까닭이다. 실천을 확산시키지 못했고, 관습은 아직도 예전과 같다. 크고 실질적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미세한 일을 살피고 형식을 갖추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경의 말도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셈이다. -p199
오늘 벌어진 일은 옛사람이 일찍이 겪었다
세상 고금(古今)의 일들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비슷한 데가 없을 수 없다. 사람의 천성과 감정이 같기 때문이고, 시대의 흐름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추세가 대충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살펴보면 오늘 벌어진 일이 옛 사람이 일찍이 겪었던 일이고, 옛 사람이 한 말은 지금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 분들이 한 말이 좋아서 그분들을 그리워했고, 그분들을 그리워하면 할수록 그분들이 한 말을 더욱더 소중히 여겻다. 비록 그분들과 시대를 함께 살지는 못했어도 마치 아침저녁으로 좌우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책으로 보는 것은 직접 말로 듣느니만 못하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이 지금 일어난 일을 말하면 그 이해득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이에 자세하게 나타나고, 그의 성의와 정신이 움직이는 태도에서 잘 드러나서, 이른바 그 사람은 이미 죽고 없어 남은 것이라곤 찌꺼기뿐인 것과는 비교할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제 아무리 먼 옛날의 벗을 소중히 여기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세 명의 벗을 찾았다. 당 태종이 위징을 거울로 삼은 결과가 과거의 일을 거울삼은 것보다 나앗던 이유도 실제로는 여기에 있다. 내가 옛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살지 않는 것만 안타까워하고 동시대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p209
----
드라마 정도전에 빠져있는 나날이다.
오늘 나의 기다림은 정도전.. 하여 조선시대 인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그분들에 관한 글을 읽는데 재미가 만만치 않다. 세종과 나란히 할 임금이 또한 정조가 아니었나 싶다. 그분의 말씀을 하나하나 바르고 곧아 마음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그 옛날의 말씀들이 지금에도 각별한 가르침이 될터
옆에 두고 가끔 들추어보면 참 좋을 듯 싶다.
어느새 주말이 찾아왔다. 월요일부터 기다린 토요일이다. 낮과 밤 기온차가 20도 정도라 하니 이것이 봄인가 겨울인가 하며 겨울옷에 의지하는 날들이다. 정오가 지나 햇살이 쏟아지니 봄날은 완연하다. 이제 점심을 하고 내일 빌릴 책들을 찾아보아야 하겠고 가끔 들여다보는 아기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도 보고 한껏 웃을 것이다. 이런 큰 자유를 누리니 감사한 마음을 부디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래본다. 부족한 무엇으로 가끔 마음주름이 있는대로 접혀지지만 다시 활짝 펴 보며 햇살과 마주하는 시간들. 이환한 오늘에 건강히 존재하고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음은 매우 큰 행복이라 하겠다.
'책 만권을 읽으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브라흐마/류시화옮김/ (0) | 2014.03.26 |
---|---|
내 영혼의 한 문장 센텐스/공선옥.서명숙외 58명/plumbooks (0) | 2014.03.22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민음사 (0) | 2014.03.10 |
아프리카를 날다/베릴 마크햄/서해문집 (0) | 2014.03.07 |
젊은날의 초상/헤르만 헤세/가람문학사 (0) | 2014.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