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삼월을 주제로 한 詩 여섯편 감상하세요

다림영 2014. 3. 1. 15:37
728x90
반응형

<1>-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박목월-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서·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水菊色)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2>-2월에서 3월로/반기룡-

 

 

다소곳하게 머물렀던 지난 날이여

 

목화솜 같은 눈송이

온몸 싸르르 휘감고

겨우내 부름켜 살찌우며

긴 시간 기다리고 있었지

 

이젠 춘풍이 몰아치고

황사바람이 옷깃에 더께처럼 눌어붙어

태연한 척 사색에 잠기고

물관 터지는 아우성이

골목 골목 서성대고 배딴 피라미처럼

수도관은 툭툭 파열음을 내겠지

 

2살에서 3살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성장과 성숙의 전주곡이지

그리고 3월(March)은

행진(March)의 내음이 콕콕 찌르는 달이며

그동안 숨죽여 지냈던 뿌리는 신명이 나고

둥치마다 쏴아쏴아 진액이

홍수처럼 흐르는 전환의 여울목이지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엔

소생과 푸르름의 사연이 알토란처럼 널려 있지  

 

<3>-3월/권오범-

 

 

눈썰미 귓썰미 더뎌

여태 지각없다가

어쩌다 보니

속절없이 내리닫는 늘그막

 

물오른 처녀들 매무새 가벼워 싱그럽고

한낮 아스팔트 끄트머리서 아지랑이 태어나

신기루처럼 헷갈리게 눈 이간질하는 걸 보면

땅이 언제 봄과 만리장성 쌓았는가

 

칙칙한 다운재킷 벗으라는 듯

소소리바람이 목덜미 살랑살랑 더듬어

분명 시절이 바뀐 것 같은데

왜 이리 내 마음은 빙하기냐

 

강물도 감 잡고 뒤척이느라

끌어안은 하늘 감추며 너울거리고

수양버들 삭정가지까지 정신 차려

물속 향해 물색없이 낭창거리는데 

 

<4>-3월의 밀어(蜜語)/고은영-

 

 

그대 향한 사랑이 시들지 않음을 기뻐하는 슬픔이여

그대 향한 영혼을 거두지 않는 애틋함이여

모든 것이 변하여 죽어간다 하여도

영혼의 정수리에 심어 놓은 한 그루의 나무로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대가 선들 들어선 날부터

그대의 그늘에 쉼을 얻고 그대의 염려에

그래도 나는 상한 심령을 위로받았나니

 

그대 이름 석 자를 꽃 피우는 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탐미하는 여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음미하는 가을이 있었고

그대 이름 석 자를 아파하는 겨울이 있었다

 

어느 이름 없는 오후

상수리 나무 끝 가지를 희롱하다

머리칼을 간질이는 저 바람은

몇 천년을 넘어 내게로 온 것이냐

태초부터 시작된 것이냐

억 겹의 영속(永續)에도 질리지 않는지

바람은 자꾸만 새롭게 현화(現化)하며 세상을 버릴 줄 모른다

그리하여 나도 가끔은 가볍게 스친 인연조차 그리워진다

 

억센 바람의 날개 속에 그대가 묻어 온다

3월의 광장에서 햇살이 프리즘을 투과하고

영롱한 빛으로 굴절되어 머물다

다시 아픔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억의 창가에 서면

공허한 허파로 숨을 쉬고 제 살을 찢으며

피어나는 연녹의 잎들조차 상처로 가득하다

 

몇 날 못하여 시들어도

다시 사랑을 위하여 일어서는 저 끈질긴 행보

스쳐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느냐

가득한 상처는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신만큼 상처 위에 선 부활은

상큼하고 지극히 아름답다

 

이제 겨울은 갔다

설렘의 꽃잠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의 그리움에

보고픔의 밀물로 그대는 다시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햇살이 되어

아픔으로 혹은 기쁨으로 환희로 감사로

서글픈 내 안에 충일하게 흐를 것이다

 

<5>-3월의 산에 오르면/박종영-

 

 

3월의 산에 오르면

드문드문 산수유 선 자리

바위틈마다 꼭꼭 숨어

눈웃음 메아리로 손짓한다

 

겨우내 꽝꽝하게 언 땅 밀치고

파란 봄 이고 오는

가르마 같은 오솔길은

그대 하얀 웃음으로 설레이고

 

산에 올라 고향 하늘 짚어보면

잘박하게 끓어올라

시장기 밀어올리던 보리밥 냄새

사록사록 가슴에 젖는다

 

3월이 되면,

아주 가깝게 잡히는 들녘

곤줄박이 폴짝 거리며 날개치고

 

옹달샘 맑은 물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달빛으로 떠 있다

 

<6>-2월과 3월 사이/김하인-

 

 

  슬픔에서 졸업하면 금방 기쁨으로 입학하는 건 아닙니다.

 

  졸업과 입학 사이엔 늘 간격이 있기 마련이듯 이별에서 만남으로 가는 과정에도 홀로 견뎌야 할 틈이 있습니다.

 

  아픔 정리하기도 하고 슬픔을 묶어 세월의 다락방에 올려두기도 해야 하죠.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한 사람의 마음과 가슴 사이에도 메울 수 없는 깊은 골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타는 래프팅에 익숙치 못하면 자신의 가슴골에 빠져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별하는 사람들, 다시 새로운 사람 만날 사람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눈물에서 빠져나와 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오르십시오. 지나가면 멀어집니다. 아득히 잊혀지면 신개척지의 새로운 가슴

닿는 일도 무척이나 설레고 멋지답니다.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애송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깃든다는 말/김인호  (0) 2014.03.15
[스크랩] 늦은 꽃/김종태  (0) 2014.03.08
마음/김영재  (0) 2014.02.21
남향집/고영민  (0) 2014.02.15
[스크랩] 신경림의 `별` 감상 / 문태준  (0)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