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남향집/고영민

다림영 2014. 2. 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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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집/

 

대문 옆에 아이들이 서 있다

조금 떨어져 방한모를 쓴 노인이 서 있다

노인 옆엔 지게가 비스듬히 서 있다

그 밑에 누렁이와 장화가 서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다

일제히 마늘밭을 쳐다보고 있다

반짝 반짝 살비듬이 떨어지고 있다

남향집을 비추는 빛은 서 있는

아이들의 입속과 노인과 개의 입속

검은 장화 속에서도 환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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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즈음이었다. 아주 오래전 친구와 한복을 챙겨 입고 따스한 겨울 햇살이 쏟아지던 담벼락에 붙어 사진을 찍었다. 앨범 어느 한 곳에 나란히 서 있을 우리의 모습이 시를 읽으며 불현 듯 떠올랐다. 엊그제 같이 선명하기만 하다. 친구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 친구 어머니의 얘기로는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또 다른 짝을 채워주지 못해 시름하신다. 우리가 예쁜 한복을 입고 따뜻하게 햇볕을 쬐고 있었을 그 때에는 지금을 생각지도 못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어디선가 꽃이 피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아침에는 햇살이 좋아 차 한잔을 들고 유리창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새 볕이 넘어가고 있다. 그녀에게 봄빛이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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