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퇴계이황의 함양과 제찰/신창호엮고지음/미다스북스

다림영 2014. 1. 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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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말하였다. “마음은 정신의 주인이 되고 고요함과 움직임은 모두 마음에 따른다. ” 때문에 마음은 도의 근본이 되고 화의 원인도 된다.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일에 태연하고 맥박의 흐름이 활발하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기혈의 흐름이 고르지 못하고 탁하여 온갖 병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성품이 차분하면 정신이 평안해지고 마음이 산란하면 정신이 피로하다. 따라서 참됨을 지키면 저절로 뜻이 가득차게 된다.

 

여러 가지 일을 복잡하게 추구하면 생각이 얽히고 설켜 정신이 산란하게 되고, 정신이 산란하게 되면 기운이 흩어져 병이 생기게 되며, 결국은 죽게 된다. 이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말인 것 같디만,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를 심오하게 표현한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쓴 책이 대단히 많다. 그렇다고 그 모든 책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 사람의 병을 다스리고 고치려는 사람은 먼저 병의 원인을 잘 알아야 한다. 특히 사람이 일생을 통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자신의 수양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자신을 살리는 방법, 즉 자신의 결점과 단점을 보완하고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떳떳하게 나설 수 있으리라.

..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몸이 노곤해진다. 그렇다고 큰일이나 작은 일에 매여 하루 종일 허덕일 필요는 없지만, 몸이 노곤한 경우는 한가한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한가로이 노는 사람은 기운을 쓰는 일이 적다.

또한 배부르게 먹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때가 많다. 그러므로 경맥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응어리져서 그렇게 된다.

 

고귀한 사람은 겉모습은 즐거운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괴롭다. 천박한 사람은 그 반대로 마음은 한가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겉모습이 괴롭다. 고귀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불시에 행하여 가끔씩 금기사항에 집착하기도 하고, 진수성찬을 먹고 바로 누워 자기도 한다. 그러므로 항상 힘을 쓰되 너무 피로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생기가 소통하고 혈맥이 순조롭게 운행되도록 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쩌귀는 좀먹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은 신령스럽고 밝은 것으로 속이 비고 직경이 한마디에 불과하다. 그 특정상 신령스럽고 밝은 것이어서, 세상의 온갖 사물을 파악하고 다스리는데 어지럽고 얽혀 있는 것들을 가려내고 급한 물을 건너는 것 같아 두려워하고 근심스러워 한다. 때로는 어떤 것들을 불러들이면서도 조심하고 경계한다.

 

즐기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며, 깊이 생각하기도 하여 하루 사이나 한때 잠간 동안에도 이 마음의 바탕은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령스럽지 않으면 좀 먹고 밟지 않으면 소모되어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우주자연과 인간세상의 올바른 길과 더불어 괴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착한 일을 실천하면서 조심스럽게 할지라도 욕심이 한 번 싹트면 이는 진정으로 착한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착한 일을 돌이켜 보되,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양심과 대치된다. 이 경우, 반드시 마음에서 성을 내게 되어 나 자신과 적이 될 것이다. 나는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 성난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 어찌 다투지 않겠는가? 다투는 일이 그치지 않으면 나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다.

 

온갖 감정과 육체적 욕망이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도 모두 다툼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하면 신명에 통하고, 어떤 일이 아직 이르지 않아도 먼저 이를 알게 된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창을 내다보지 않아도 우주 자연의 이치를 본다.

 

마음은 계곡을 흐르던 물이 웅덩이에 고여서 흔들리지 않고 물결이 전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오래 되면 맑아져 그 바닥이 훤히 보인다. 이것을 신령스럽고 밝다.”는 의미의 영명이라고 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삶의 활력인 원기를 담고 굳히면 온갖 병이 생기지 않으므로 오래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생각이 싹트면 신령스러움은 밖으로 달아나고, 기운은 안에서 흩어지며, 피의 흐름도 이에 따라 고르지 않게 된다. 기운이 좋지 않아 생기가 혼란해지면 온갖 병이 침투하는데, 이는 모두 마음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공부를 하면, 쉽게 병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

 

도산에서 품은 뜻

 

서당이 반이나 지어졌으니 기쁘기 그지없네

산속에 살며 몸소 밭 일구는 일이 즐겁구나

조금씩 서책을 옮기니 옛 책상자 다 비고

대나무 심어 바라보니 죽순이 새로 돋는다

샘물 소리가 밤의 고요 흔들어도 알지 못하고

산빛 좋은 맑은 아침이 더욱 좋구나

예부터 산림 선비 만사를 온통 잊고

이름 숨긴 그 뜻을 이제야 알겠네.

 

 

저녁에 산보하며

 

건망증이 염려되어 책들을 어지러이 뽑아 놓고서

이리저리 흩어진 책을 다시 정리한다.

해는 문득 서족으로 기울고

강에는 빛이 번쩍이고 숲 그림자는 들린다.

대나무 지팡이 짚고 뜰로 내려가

고개들고 구름재를 멀리 바라본다.

밥 짓는 연기 아득히 피어오르고

언덕과 들이 차가워 쓸쓸하구나.

농가의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고을 방앗간에 기븐 빛 도는구나.

갈가마귀 돌아오니 절기 익어가고

나뭇가지에 바람불고 해오라기 우두커니 서있다.

내 인생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숙원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다.

내 마음속의 이야기 나눌 사람 아무도 없어

고요한 이 밤에 거문고만 타본다.

 

 

진솔한 벗을 사귀어 유익함을 구하라

편지21-기명언에게 답함

 

내가 무오년에 서울에 갔던 일은 완전히 낭패를 보았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일은 그대를 만날 수 있었던 일이지요. 그후 남족으로 내려와 은거하게 되면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게 되었으니 그대를 향한 마음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정자중이 전해주는 편지와 사단칠정에 관한 설명을 받아보고는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간 편지로 나의 이런 저런 의견을 대략 밝혔고 사단칠정에 관한 글에서 의심나는 점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동의하지 않고 어긋나는 점을 밝혔습니다. 다시 나의 어리석은 견해를 대략적으로 서술하여 질문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대는 정직하고 성실한 벗을 사귀어 유익함을 구하는 까닭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한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벗을 사귀는 일을 매우 진솔하게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정말 가볍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미천한 의견 가운데, 한두 군데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었습니다. 고치려 마음먹고서도 미처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가을 정자중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그대가 정지운에게 준 글 두 편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나의 미천한 이론에 대해 논박한 부분이 있었고, 또 이미 나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보내온 편지의 마지막에는 조목별로 분석하여 히답해 달라. 스스로 가프침을 받기에 목마른지 오래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천리의 먼 길에서 사람을 보내 글월도 자세히 깨우처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단칠정을 논의한 그릇된 글을 바로 잡는다.”라고 한 책자까지 곁들여 보내 주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그 논증이 아주 풍부하고도 자세합니다. 나의 미천하고 어두운 부분을 지적해 주는 그대의 마음 씀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제 더위는 물러나고 서늘한 기운이 다가옵니다. 날마다의 생활이 순탄하고 마음과 몸은 즐겁게 편안한지요? 나는 천박하고 못나기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생을 병에 파묻혀 지내면서 관직에 나가서는 봉급을 축내며 자리만 지키다가 구지람을 들었고, 관직을 물러나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앗습니다. 이제는 쇠약하고 늙어서 마음과 눈은 어둡고 혼미해지고, 몸은 말라빠진 등나무와 같이 되었으니 사람 축에 들지 못할 성 싶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요. 공자의 말씀처럼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소망은 있으나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도 못하고 좋은 벗의 충고나 격려도 없이 다만 낡은 책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이는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조개껍질로 바다를 헤아리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이 없지는 않으나 얻은 것이 온전하지 못하여 겨우 한 푼이나 한 치 정도 쌓아 놓은 것이 전부이니 손을 흔들면 그대로 흩어져버릴 듯합니다. 조금 알았다가도 이내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명분이나 의리를 말하려 하면 바람을 붙잡고 그림자를 붙드는 형국입니다. 마음을 모으고 글씨를 쓰려 하면 마치 뒤에서 팔이라도 잡아당기는 듯, 창과 방패가 모순 되는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수두룩합니다.

 

그대의 충고와 선도가 이처럼 지극한데, 텅 빈 마음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지는 않을가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겸허하게 수용하고 마음에 새겨두어야 함에도 그만한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의 훌륭한 지적에 만분의 일이라도 부응할 수 있을지 또한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깊이 생각해 주고 간절한 부탁을 해왔으니 조목조목 답변하여 완전한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나 자신 워낙 자질이 둔하여 문자와 의리에 대해 며칠 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일이 많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결례를 저질렀는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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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치장했었다. 이제야 안을 살피게 되었다. 한평생 아름답게 삶을 이어온 이야기를 읽었다. 조금이라도 맑은 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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