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계방의 글 읽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으니 한번 읽으라.
세손은 자신이 찾던 ‘범어지언’이 나오는<논어>자한편을 읽으라 했다. 홍대용이 그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이런 내용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른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부드럽고 순한 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되 실마리를 찾지 않고 따르되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그를 어찌할 수 없다.’ 읽기를 마치자 세손이 홍대용에게 물었다.
세손:‘손여巽與 ’란 무슨 뜻인가?
‘손여’란 부드럽고 순하다는 뜻이다. 세손은 이미 오래전에 <논어>를 읽었으니 그 뜻을 몰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암시하려는 것 같았다. 홍대용이 답하였다.
홍대용:‘손여’란 부드럽고 순하다는 뜻입니다. 군신간에 대화하는 것을 예로 들어 말할 것 같으면 ‘납약자유納約自유 ’가 ‘손여’와 같은 것입니다.
홍대용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하필이면 군신간에 대화하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신하가 임금에게 알기 쉬운 것부터 설명하여 차츰 깨닫도록 인도하는 것이 ‘손여’라는 것이었다. ‘납약자유’<주역周易 >감괘坎卦 육사六四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납약’은 임금과 사귀는 도리를 말하고,‘자유’는 밝고 툭 트인 것으로부터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의미에서 부드럽고 순하게 말하여 권고한다는 말과 통한다. 물론 이것이 아첨, 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의미가 오묘하여 세손의 지금 처지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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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은 한고조 유방을 중국 역대 임금 중 최고로 여겼다. 학문과 사대부의 풍모만 더한다면 이상적 군주인 요순에 필적하리라 생각했다. 한고조는 단점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너그러웠고 신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줄 알았다. 아랫사람을 관대하게 포용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가 능력 있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권한의 위임을 불안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유방과 한신 사이에 있었던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유방이 한신에게 물었다.
“내가 군사를 부린다면 몇 명이나 부릴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10만 정도의 군사를 부리실 수 있습니다.”
“그대는 어떠한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신이 대답에 배알이 틀린 유방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나의 포로가 되었는가?”
“폐하는 군사를 다스리는 장수가 아니라 장수를 다스리는 장수이고 황제의 자리 는 하늘이 준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
박지원은 그의 묘지명을 썼다. 거기서, ‘세상에서 홍대용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일찌감치 스스로 과거를 그만두어 명예와 이익에 뜻을 끊고 한가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거문고와 비파를 타며 세속 밖에서 놀고자 하였던 것만 알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세상 많은 사물의 이치를 종합하고 정리하여 나라 살림을 맡거나 먼 곳에 사신으로 갈 만한 사람이었고, 나라를 지킬 기인한 책략을 가진 사람이었음은 알지 못한다.’ 하였다. 급작스레 홍대용을 잃은 박지원은 슬픔에 겨워 그를 알아주지 않은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을 드러내었다.
장례를 마친 박지원은 집에 돌아와 거문고며 가야금이며 생황 같은 악기들을 모두 남에게 주어버렸다. 더 이상 음악을 연주하지도 즐기지도 않았다.
예로부터 서로 알아보아 주는 사이를 지음이라 하였다. 홍대용이 가고 없는 지금, 그의 거문고는 다시 울지 않았다.
엄동설한에 홍대용의 시신이 담긴 관은 한양을 떠나 고향인 청주 수촌의 무덤에 안장되었다. 12월 8일이의 일이었다. ‘이름없이 살다가 죽어서 빨리 썩어지려던’ 사람은 그렇게 세상과 이별하였다. 그의 몸이 누운 무덤가에 그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문 앞엔 잘난 사람(장자長者 )의 수레 없으나
책상에는 멀리서 온 편지가 있네
선생님(선사先師)의 가르침 길이 품으니
세상사람과는 날로 멀어지네
겨루지 않으니 비난 소리 쌓임을 면하겠고
재주 없으니 헛된 명예도 끊어졌네
좋은친구 때때로 문 두드리니
항아리에 술이 있고 깨끗한 나물 안주가 있다네
위태로운 난간에 맑은 거문고 소리
노랫가락 또한 슬피우네
홍대용:(1731~1783)
18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실학자이다. 본관은 남양, 호는 담헌湛軒 , 자는 덕보德保, 홍지洪之 였다. 유교 본연의 실천성, 실용성, 실행성을 강조하였고 천문학, 수학,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업작을 남겼다. 천문학 분야에선 지구가 둥글며 스스로 돌고 있다는 지구 자전설과 우주의 크기가 무한하다는 우주 무한론을 논증하였고 수학 분야에서는 서양의 기하학을 최초로 받아들이면서 철저하게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한<주해수용>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음악분야에서는 서양의 앙금을 들여와 우리음악에 맞게 개조하고 연주법을 개발했다. 청나라 선비들과 사귀고 교류를 지속해 북학의 문을 열었으며 북학론의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 그의 사상은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김정희 등으로 이어졌지만 그의 수학, 천문학 분야의 연구는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정조(1752~1800)
영조의 손자이고 고종때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의 아들로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진종)의 양자가 되어 조선의 22대 왕으로서 24년간 조선을 통치했다. 이름은 산, 자는 형운亨運 , 호는 홍재弘齋,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었다. ‘우현좌척’과, ‘의리탕평을 내세우며 외척을 물리치고 문신을 우대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학술, 정책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해 문예부흥을 이끈 학자군주였다. 그러면서도 문체반정을 주도해 유행이 된 북학풍을 억제하였다. 말년에는 화성 신도시를 건설하여 왕권강화를 꿈꾸었으나 49세의 나이로 죽었다. 정조는 죽기직전 세자(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에게 세도를 부탁함으로써 안동 김씨 60년 세도정치의 문열고 말았다. 화성의 건릉에 묻혔고 고종 때 정조 선황제로 추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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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텔레비전에서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다. 잘 몰랐던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지는지라 눈에 띈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홍대용과 정조의 문답이다. 홍국영은 들은바 있어도 홍대용은 잘 몰랐다. 박지원이 그가 죽고 음악을 거둘만큼 참다운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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