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로부터의 자유
사랑은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상대방이 좋아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누구나 자기 집에
도자기 한두 점 놓아두고 싶고
좋은 그림 걸어두고 싶어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거기 그림이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수행의 이유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닦지 않으면 때 묻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처럼,
닦아야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자신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밑바닥에서는 고독한 존재이다.
그 고독과 신비로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안으로 살피라.
무엇이든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직접 체험한 것,
이것만이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
생활의 규칙
‘하루 한 시간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라.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잠들지 말고
조용히 명상을 하다가 잠들도록 하라.
간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으라.
사람들하고는 될 수 있는 한 일찍 헤어지고
자연과 가가이 하라.
텔레비전과 신문을 무조건 멀리하라.
무슨일에나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그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라.
풀과 벌레들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죽을 것이다.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이다.
이 24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쓰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지만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탄력이 생길 것이다.
몸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면 게으름에 빠지기 쉽다.
잠들때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숙면이 되도록 무심해져야 한다.
당신은 어떤 생활의 규칙을 세워 지키고 있는가.
당신을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생활 습관이다.
침묵
인간의 혼을 울릴 수 있는 말이라면
무거운 침묵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침묵은 모든 삼라만상의 기본적인 존재 양식이다.
나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 배경엔 늘 침묵이 있다.
침묵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서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과 열매가 맺는다.
우리는 안에 있는 것을 늘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침묵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내 안에 들어 있다.
따라서 밖으로 쳐다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안으로 들여다보는 데서 침묵을 캐낼 수가 있다.
침묵은 자기 정화의 지름길이다.
온갖 소음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지키려면
침묵의 의미를 몸에 익혀야 한다.
달빛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
달빛이 방 안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네 빙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앉는다.
한낮의 좌정보다
자다가 갠 한밤중의 이 좌정을
나는 즐기고자 한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맑은 정신이 든다.
중천에 떠 있는 달처럼
내 둘레를 두루두루 비춰 주고 싶다.
자신을 창조하는 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든 사람이든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손을 멈추지 않는다.
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친구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울림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어느 쪽이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진정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란 말이 있다.
그런 친구 사이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척에 살면서도 일체감을 함께
누릴 수 없다면 그건 진정한 친구일 수 없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사랑은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상대방이 좋아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누구나 자기 집에
도자기 한두 점 놓아두고 싶고
좋은 그림 걸어두고 싶어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거기 그림이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용서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 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
새날을 등지면 안 된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 문도 활짝 열린다.
큰 거울
평등한 성품에는 나와 남이 없고
큰 거울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그 평등한 성품과
큰 거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남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밖으로 헛눈 팔지 않고,
자기 자신을 투철히 관찰할 때
평등한 성품과
그 큰 거울은
저절로 드러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은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울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엔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깨달음의 길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오직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이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매 순간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 지혜와 자비의 길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녀온
불성과 영성의 씨앗이
맑고 향기롭게 꽃피어난다.
본래 청정한 우리 마음을
명상과 나눔으로 맑혀야 한다.
사랑이 우리 가슴속에 싹트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진정한 탄생이고 부활이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마음의 수양을 하고 개인의 수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만 멈추라는 것이 아니다.
텅빈고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텅빈 공간 속에서
순수한 현재를 발견할 수 있음을,
성당가 모스크와 절간에
어떤 성스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텅빈 현재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 텅 빈 고요,
이런 텅 빈 현재와 고요속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무 꺾이는 소리
산에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올려올 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글자 없는 책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가치 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 속에서 그 길을 찾으라.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다.
침묵은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 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듣는다는 것은
바깥 것을 매개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소리를
깨우는 일이다.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말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구절이 있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야 한다.‘
말이 되기가지는 우리들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비우기 위해
침묵을 익히는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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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익히는 기간..'
12월이 나에게 그렇다.
쉽지 않다. 안으로 고이는 것 없이 금세 뱉어버리고 마는 수다스러움으로 가벼웠다.
뉘우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 깊어지는 오늘을 위해 마음을 다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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