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성취는 지식도, 덕도, 선도, 승리도 아니요, 더욱더 위대하고 영웅적이며 절망스러운 무엇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경외였다. “대답을 못하겠나?”
조르바가 불안하게 물었다.
나는 내 친구에게 성스러운 경외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려고 했다.
“우리는 작은 유충입니다.조르바, 커다란 나무의 작은 이파리에 달라붙은 조그만 유충이지요. 이 작은 이파리가 지구입니다.다른 이파리들은 밤하늘에 움직이는 별이고요, 우리는 이 작은 이파리를 조심스럽고 불안하게 살피며 나아갑니다. 냄새도 맡지요,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나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먹어보고 먹을 만하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파리를 때리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가장 용감한 사람들말입니다.- 이파리 끝에 가보기도 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몸을 내밀어 혼돈을 바라봅니다. 몸을 떨지요. 이 이파리 밑에 얼마나 끔찍한 심연이 도사리는지 상상합니다.
멀리서는 거대한 나무에 달린 다른 이파리 소리가 들려오고, 나무뿌리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이파리까지 수액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게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심연을 내려다 보며 우리는 공포로 몸을 떱니다. 바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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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항이란 무엇인가? 필연을 정복하고, 외부의 법칙을 영혼의 법칙에 굴복시키며 모든 존재를 부정하고 자기 정신의 법칙에 따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이 당당한 돈키호테식 반동은? 비 인간적인 자연의 법칙과 상반되는 내부의 법칙에 따라 지금의 것보다 더 순수하고, 더 낫고, 더 도덕적인 신세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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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의 침묵 덕분에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덧없는 질문은 다시 한 번 내 안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가슴이 또다시 고뇌로 물들었다.
이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고민했다. 이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하루살이 같은삶을 사는 우리들은 그 목적에 어떤 도움이 될까?
조르바는 인간과 물질의 목적이 즐거움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영혼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다 같은 말이다. 하지만 왜? 무슨목적으로? 더 나아가 육신이 썩어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모두 다 사라지는 걸까? 불멸을 향한 인간의 풀 길없는 열망은 우리가 진정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짧은 생애를 어떤 불멸의 존재를 위해 바쳐야 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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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어제 있었던 일만 생각하는 짓은 이제 안 하네.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묻는 것도 그만뒀지. 오늘 바로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중요해.‘바로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조르바?’ 하고 물어보네. ‘자고 있다. ’그래 , 그러면 잘 자라.‘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 조르바?‘ ’일한다.‘그래, 일 잘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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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바라보았고 몹시 행복했다. 이 외딴 해변에서의 단순한 순간순간을 인간적 가치가 깊어지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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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살아 있네. 마말리가를 먹고 보드카를 마시지. 석유 광구에서 일하며 시궁쥐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삶을 산다네. 하지만 무슨상관인가? 이곳에서도 내 가슴과 배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걸. 나 같은 늙은 악동에게는 진정한 천국이지. 알겠나, 보스? 아주 멋진 삶이야..“
--옮긴이의 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신에 가까운 고귀하고 영적인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본능적인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한 짐승 같은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책의 주인공은 전자를 대변합니다. 그는 ‘최후의 인간’ 붓다를 표방하여 살다가 우연히 “인간은 짐승이다”를 외치는 ‘최초의 인간’ 조르바를 만나 자신이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던 삶의 일면을 깨닫습니다.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귀한 이념을 추구해야 하는 ‘최후의 인간’은 결국 부자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배고프면 먹어도 되고 , 답답하면 바닷물에 뛰어들어도 되고, 답답하면 바닷물에 뛰어들어도 되고, 외로우면 사랑해도 된다고 가르쳐주지요.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최초의 인간’ 조르바를 추앙하며 ‘카르페 디엠’을 외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을 번역한 뒤 저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주인공은 조르바를 떠나야만 했을까? 영원히 이성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삶을 향한 작가의 냉소적 시선이 반영된 것일까?’
이런 의문을 안고 원고를 다시 한 번 읽어보다가 한 대목에 이르러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사는 것과 ,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는 조르바의 질문에 주인공은 ‘똑같이 험준하고 가파른 길일지라도 도착지는 같을 수 있다’ 고 생각합니다. 숭고한 이념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삶이든,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짐승의 삶이든, 우주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동전은 앞면과 뒷면이 합쳐져 하나의 물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서로 상반되는 두 삶의 방식 또한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한 두 개의 다른 길이 아닐까 합니다.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간 주인공과 조르바도 마침내 도착지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책을 번역하며 저 또한 크레타 해안에서 바다의 한숨 소리를 듣고 과수원에서 불어오는 과일 향을 맡고, 조르바가 산투르를 애무하는 손길을 바라보며 행복했노라고 감히 적어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행복을 향한 자신만의 길을 터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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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약에 취해 간신히 읽었다. 책 만 들면 졸리고 졸렸다. 언제부터 다시 읽어야지 했는데.. 또 어느때쯤 다시 뒤적여야 할 것 같다. 길고 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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