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날에는 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방향을 잃은 기러기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호수 위를 더듬으며 안개의 요정처럼 요란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나는 며칠을 날이 좁은 도끼 만으로 재목과 간주, 서까래를 자르고 깎았다. 이 기간 동안 남들에게 전할 만한 이렇다 할 생각이나 학자다운 사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고, 다만 혼자 이런 노래를 읊조릴 뿐이었다.
누구나가 아는 척을 한다.
하지만 보라, 예술도
과학도, 무수한 응용도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버렸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문 밖을 스치는 바람뿐.
시간은 낚싯줄을 늘어뜨리는 냇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거기에서 물을 마신다. 마시면서 모랫바닥을 보고 그것이 너무 얕다는 것을 깨닫는다. 얄팍한 시내는 흘러가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이 마시고 싶은 것이다. 강바닥에 별과 같은 조약돌을 촘촘히 박아넣은 큰 하늘에서 낚시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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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우리는 어딘가 멀리에 있는 순간의 환경이 자신에게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기 쉽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뿐이다. 만물 바로 가까이에 사물을 탄생시키는 힘이 존재한다. 우리들 바로 옆에서 세상의 위대한 법칙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할 때 말상대로 삼으려고 고용한 일꾼이 아니라, 우리들을 탄생하게 한 그 일꾼이다.
“천지의 영묘한 힘은 실로 광대하고 심원하지 않은가.”
“그 힘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다. 사물의 본질과 일체를 이루고 있어 그것과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힘은 전 우주에 있어 인간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성스러워지도록, 또 예복을 갖춰 입고 조상에게 공양하도록 한다. 그것은 영묘한 예지의 대양이다. 천지에 있는 영의 힘은 우리의 위나 좌우, 도처에 편재하며 우리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고독만큼 사귀기 쉬운 친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보다 밖에서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대부분 훨씬 고독하다. 무엇을 생각하거나 일을 할 때,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인 것이다. 고독은 한 인간과 또 한 인간이 떨어진 거리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북적대는 기숙사 방구석에서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자와 마찬가지로 고독하다. 농부는 하루종일 밭이나 숲에서 혼자 밭을 갈거나 나무를 자르지만 조금도 외로워하지 않는다 . 일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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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생활하고, 서로 훼방을 놓고, 서로 걸려 넘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남의 횟수를 줄여도 소중한 마음이 담긴 교류는 충분히 가능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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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두막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서,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해서, 세 번재는 교제를 위해 준비한 자리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것들 중에서 말을 할 수 없거나 또는 말하는 것을 초월해 존재하는 내용을 진정 알리고 싶다면, 단지 침묵을 존중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평소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육체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말하는 언어라는 것은 내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을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큰 소리로 아우성치는 것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미묘한 점들이 많다. 벗과 나누는 대화가 점차 고상하면서 웅대한 어조를 띠기 시작함에 따라 우리들은 조금씩 의자를 뒤로 밀어 상대로부터 멀어지고, 결국에는 두 사람의 의자가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구석의 벽에 부딪치면 이윽고 “방이 너무 좁군요”라고 말하곤 했다.
인간은 자신이 숭배하는 신에게 바칠 육체라는 신전을 순수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워나가는 건축사이며, 다른 대리석을 망치로 두드린다고 해 거기에서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그 재료는 우리 자신의 피와 살과 뼈이다. 조금이라도 고매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얼굴 모양은 고상해지고, 야비하고 육욕적인 곳이 있으면 그 얼굴은 짐승처럼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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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장작더미를 보고 있으면 어떤 애정과 같은 감정이 솟구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창문 앞에 장작 쌓아두기를 좋아했다. 장작의 높이가 높을수록 일하는 즐거움도 커졌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낡은 도끼 한 자루를 갖고 있었는데, 겨울날 마음이 내키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콩밭에서 파낸 그루터기를 향해 그것을 휘두르곤 했다. 밭을 경작하고 있었을 때 잠시 부렸던 한 소몰이꾼이 예언한 대로 이 그루터기는 쪼개고 있을 때와 불을 지필 때, 두 번에 걸쳐 내 몸을 따뜻하게 해준 것이다.
무엇이든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신의 문제는 백이나 천이 아니라, 두 개나 세 개로 줄여두자. 백만을 세는 대신 여섯까지 세고 계산은 엄지손톱에 기록해둔다. 문명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구름이나 폭풍, 물에 밀려 흐르는 모래 등 무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도에 배가 침몰하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사태를 피하고 싶으면 추측 항법으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자면 웬만큼 계산을 잘 하지 않고서는 성공은 꿈도 꿀 수 없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늘 잊지 말고 주의하도록. 하루 세끼의 식사도 필요하다면 한 끼로 줄이고, 백 접시 먹던 건 다섯 접시로, 그 외의 것도 이것에 준하여 줄여 나가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고차원의 본성이 잠이들면 서서히 눈을 뜨는 한 마리 동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파충류적이기도 하거니와 육욕적이기도 해서 아마 완전히 쫓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건강한 우리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구더기, 즉 기생충과 같은 것이다.
그놈으로부터 몸을 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절대 그 본성까지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곤란하게도 그놈은 그 자신 고유의 건강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건장해진다 해도 순수해지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악착같이 성공에 집착하고, 무모하게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일까? 한 남자의 발걸음이 다른 동료들의 보조와 맞지 않는다면 이는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탓이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북소리에 맞추어 발걸음을 내딛지 않겠는가.
그 박자가 어떠하든, 또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든,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처럼 빨리 성숙하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치 않다. 우리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기라도 하라는 것인가? 자기본래의 목표를 달성할 만한 조건도 채 갖추어지기 전에 현실을 바꾸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공허한 현실에 부딪쳐서 난파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아니면 노고를 마다 않고 머리 위에 높이 솟은 파란 유리 천장이라도 건설해야 할 것인가? 설사 그것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저편 멀리 영기에 차있는 진정한 하늘을 올려다 볼것이 뻔하다.
삶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거기에서 얼굴을 돌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생활을 피하거나 욕설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그것도 당사자만큼은 나쁘지 않으니까. 삶은 여러분이 제일 풍족할 때에 가장 빈곤해 보이는 것이다. 트집 잡길 좋아하는 인간은 천국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가난해도 삶을 사랑하길. 구빈원에 들어가 있어도 즐겁고 가슴 뛰는 시간은 있을 것이다. 저녁노을은 부자의 저택뿐만 아니라 양로원의 유리창도 붉게 물들인다. 봄이 오면 뉘 집 문 앞이건 쌓인 눈이 녹아내리긴 마찬가지다. 평온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곳에 살아도 궁전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만족감을 누릴 것이요. 자신을 분기시키는 사상을 품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한 소년을 향해 ,“거기 늪 바닥이 단단한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소년은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나그네의 말이 뱃대끈 부근까지 푹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아니, 늪 바닥이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더냐?”고 추궁하니 소년은,네, 그랬지요.”하고 대답하더란다.
인간 사회의 늪이나 물에 떠밀려 내려가는 모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노련한 자만이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거나 이야기 하는 것, 행하는 것 등은 드물게, 우연히 어느 정도의 일치를 본 경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욋가지나 회반죽에 못을 박아넣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면 밤에 잠도 편히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망치를 손에 쥐고 벽 속의 간주를 더듬어 찾고 싶다.
접합제 따위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못을 단단히 박아넣고 뚫고 나온 못 끝을 조심스레 굽혀두면, 밤중에 눈을 떠도 자신의 일을 떠올리고 흡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리라. 뮤즈의 가호를 빌어도 부끄럽지 않을 일을 한 것이니, 그렇게 되면-그러한 경우에 한해서- 신도 손길을 뻗어주실 것이다. 박아넣은 못 하나하나가 우주라는 기계의 리벳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그 작업을 계속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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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던 책을 다 읽었다. 글씨가 커서 다행이었다. 글씨도 작고 내용도 이해하기 힘든 옛책은 정말 읽기가 어려운 것이다. 중간중간 다른 것을 봐가며 보니 그런대로 읽힌다. 이분이야 모르는 분이 없겠으나 쉽지 않은 전원생활을 그 옛날에 고독과 자연을 벗 삼아 묵묵히 마음을 비워낸 분이시니 나는 필히 읽어야 했다. 다음에 또 언제 다시 읽을 수도 있겠다. 그분의 몇권의 책중에 가장 두꺼운 것을 빌렸다. 예전에도 읽었던가 아니던가 흐릿하다... 내용이 워낙 조용히 흘러가는 터라 ... 자연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습도도 그렇게 오늘은 찌는 더위라 이름해야 하겠다. 그래도 책 속에서 나를 채우고 비워가니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손님이 없어서 그렇지... 그러나 때가되면 오시리라 한다. ^^ 내일도 열심히 도서관에 달려가 맛난 책을 빌려야 하겠다. 어느새 깊은 오후다. 기타음악은 더없이 좋고 시조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식어버리니 알수가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아니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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