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몽테뉴 수상록/몽테뉴/혜원출판사

다림영 2013. 6. 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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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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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젊은이들의 낭비가 없으면 되지 않는다. 농사꾼은 곡식이 비싸야 하며, 건축가는 집이 헐어 무너져야 하고, 재판관은 사람들이 소송 싸움을 해야 된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명예와 직무마저도 우리의 죽음과 악덕이 있어야 존립한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는, 의사는 자기 친구가 건강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군인은 자기 도시의 평화조차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언급했다. 다른 일도 모두 마찬가지다. 더 언짢은 일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내부를 파헤쳐 보며, 우리 마음속의 소원은 대부분이 타인에게는 손해가 되게끔 싹터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살펴본 나는, 대자연은 이 점에서 그의 전체적인 운영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구나 하고 여겼다. 왜냐하면 자연법 학자들은 각 사물들의 출생.양육.성장은 다른 사물의 변질과 썩음이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물이 변하여 그 한계에서 떠나면 그것이 바로 이전에 존재했던 사물의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루크레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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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예지라는 것은 너무나도 덧없고 가벼운 것이다. 사건의 결과는 항상 우리의 계획이나 충고나 조심과는 반대로 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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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형제라는 말은 보다 자애로운 아름다운 이름이며, 이러한 까닭에서 우리들은 형제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러나 재산의 혼합과 분배, 그리고 한 편이 부하면 다른 한 편은 궁하게 된다는 사정은 형제간의 우애를 놀랄만큼 약화시키고 멀어지게 한다. 형제들은 하나의 길과 줄을 따라 각자의 장래를 헤쳐 나가다보면 때로는 언젱을 하기도 한다.과연 그들 사이에 그렇게 진실되고 완벽한 우정을 싹트게 하는 의기투합과 친분이 형성될 수가 있겠는가! ..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는 자연법칙과 의무와 명하는 우정인만큼, 우리의 선택이나 애정과 우정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한 자기의 고유한 생산을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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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것은 전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며, 절제있고 평등한 열이고, 견고하고도 침착한 열이므로, 거칠거나 날카로움은 전혀 없이 매우 보드랍고 매끄러운 마음이다. 또한 사랑에는 우리로부터 이탈해 달아나는 것을 잡으려고 뒤쫒는 강압적인 정욕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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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정신적이며 그 실천으로 영혼이 세련되기 때문에 희망하기에 따라서 기쁨이 도래하나 사랑은 오로지 그 향락에 의해서만 싹트고 가꾸어지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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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은 미모에 끌려서 우정을 이룩하려는 시도이다<키케로>’

 

킬론은 이르기를 ,“어느날 그를 미워할 것같이 그를 사랑하라. 어느 날 그를 사랑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워하라.”고 하였다. 저헐게 내세우는 최고의 우정에 대해 너무나도 얄밉도록 어울리는 이 교훈은 일반적인 우정의 실천에서는 건실한 생각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즐겨 말하던 오 내 친구들이여, 벗이란 없도다.” 라는 말을 적용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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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고도 주체가 되는 우정은 다른 모든 우정들을 면제해준다. 그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지 않겠노라고 내가 맹세한 비밀은 나와 타인이 아닌 그에게는 어김없이 그 맹세를 일러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나다. 자기 자신이 이중으로 된다는 것은 하나의 큰 기적이다. 자신을 이중으로 한다고 말하는 이 우정의 높이를 이해하지를 못한다. 대등한 제일 꼭대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 그리고 그들 중 내가 어느 편이든 똑같이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예견하는 사람은 가장 유독하게 하나로 되어 있으며, 이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단 하나의 일이므로 이러한 우정을 묶어서 여럿으로 만드는 것이다.

 

안일한 삶 아니면 행복된 죽음을 얻을지니라.

목숨이 짐스러울 때에는 죽는 쪽이 나으리라.

불행 속에서 살기보다는 살지 않음이 더 나으리라.-그리스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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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은 어떤 때에는 우리의 기적과 기꺼이 재주를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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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우리 스스로보다 일을 더 잘 결정한다.-메닌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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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갈 때면 어쩌다 한 번 이책 앞에서 들추어 보다가 꽂아놓았다.

어느때는 빌려오긴 했다.

삼분의 일도 못보고는 덮어버렸다.

그러기를 몇 차례... 드디어 손에 쥐고 읽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읽히지 않는 것인지 읽으면서도 글의 내용들이 달아났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어려운 글이었다.

수필 중에서 고전으로 꼽으니 읽어야 했고 두주에 걸쳐 간신히 읽어내며

다시 덮고 처음부터 다시 그래도 나에겐 고지의 글이다.

이따금 슬며시 나의 손을 잡아주던 글귀들도 많았다.

아마도 얼마 지나 나는 또 이글을 붙잡고 씨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엔 끝까지 읽어냈고 또 한 번을 읽었다는데 기쁨을 안아본다.

서너번은 족히 아니 그 이상 읽어야 무어라 입이라도 벙긋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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