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공이 팔뚝에 맞자, 땀에 젖어 있던 팔뚝에 축구공 도장이 찍힌다. 여시 축구의 왕국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축구들을 하고 있다. 지갑 들고 다니듯 어디든 공 하나를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땀을 식히려고 공터 나무밑에 앉았는데 저기 건너편에서도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경사가 너무 심해서 한쪽 편이 심하게 불리해 보인다. 저건뭐지? 저래가지고 무슨 축구야?
한쪽편은 속도를 줄일 수 없었고 또 다른 편은 속도를 낼 수도 없는데다 공조차도 사람말을 듣지 않았다. 경사진 공터에서의 축구는 아무리 봐도 엉터리였다. 헌데,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양편이 서로 방향을 바꿔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쩔쩔매던 상대가 이번에는 훨훨 날고 있었다.
전반과 후반, 경사진 길과 평평한 길.
우리 인생도 그 둘로 나뉘어져 있다.
그날의 쓸쓸함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모두 그 한 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청춘의 모두는 한 뼘 때문이고 겨우, 그 한 뼘 차이로 인해 결과는 좋지 않기 쉽다.
청춘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사랑으로도 바꿔놓을 수 없는 것이다.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쉬는 날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에는 파도가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태어난 곳이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여행의 폭을 위해서라면
한 장보다는 각각 다르게 그려진 두 장의 지도를 갖는게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고꾸라지는 기분을 이기고 싶을 때는 폭죽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언젠가는 그 길에서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싶을 때가 있지.
누가봐도 그 길은 영 아닌데
다시 가보고 싶은 길.
그 길에서 나는 나를 조금 잃었고
그 길에서 헤맸고 추웠는데,
긴 한숨 뒤, 얼마 뒤에 결국
그 길을 다시 가고 있는 거지.
아예 길이 아닌 길을 다시 가야 할 때도 있어.
지름 길 같아 보이긴 하지만 가시덤불로 빽빽한 길이었고
오히려 돌고 돌아가야 하는 정반대의 길이었는데
그 길밖엔, 다른 길은 길이 아닌 길.
파리에 백 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소박한 빵집이 있다. 이 집은 바게트가 아주 유명한 집인데 빵맛의 비결은 특별한 게 없다고 하지만 빵반죽을 할 때, 그걸 조금 떼어서 남겨둔 다음, 다음번 반죽을 할 때 합치는 것이다(한번 빚은 반죽 덩어리를 모두 다 오븐에 굽지를 않고 반죽의 일부를 남겨 다음번 바게트를 반죽할 때 섞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백 년 된 기억이 조금씩 끊임없이 섞이면서 빵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거란 이야기가 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뭔가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소비해버리고 먹어치운다. 물질도 마찬가지이고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비축해두지도 않을뿐더러 이자처럼, 도시락의 한귀퉁이처럼 남겨진 그걸 어쩌겠다고 뒤돌아보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다음을 위해 조금씩 떼어두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기억할 수 없을 거라는 무섭고도 무거운 사실만 이제 조금 인정할 뿐.
그빵집은 반죽을 남기는 게 아니라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을 반죽해 기적을 굽는다.
잘 다녀와
...
나에게도 ‘빨간 날’들로만 가득 찬 날들이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비행기를 탔고 나에게 말을 거느라 눈이 시뻘게지도록 걷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심심하면 케이크 한 상자를 사서 하루 종일 들고만 다녔다. 매일매일 기념일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어느 낯선 곳에 도착해서 역에 나가 한참을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일이 좋았다. 기차 시간표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가야 할 목적지를 찾은 듯이 하루 동안의 기차 시간표를 수첩에 옮겨 적고는 되돌아오는 길에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을거야. 이곳만으로도 충분하니까’라고 중얼거리는 것. 그것은 기념일에 어울리는 대사였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 건 사실이다).
어떤 카페가 좋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카페 기둥에 흰색 페인트를, 화장실 문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은게 마음이 들었던 거다. 사실 그 색이 좋아 카페의 분위기가 좋고 심지어 커피맛도, 주인장의 얼굴까지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이 쌓아가는 것이다.
고로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이 무슨 색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며 그 색깔을 나에게 조금이나마 나눠달라는 말이다. 그 색에 섞이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당신 목에 두른 스카프 색깔이 그게 뭐냐고 말하지 않는다.
한여자를 알았다. 나는 그녀가 빨간색인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녀는 파란색이었다. 정반대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한순간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럴 경우, 내가 그쪽으로 옮겨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를 더 만났더니 그녀는 차라리 흰색이었다.
나는 그녀를 흰색으로 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줄 흰꽃을 준비했다. 흰 이 꽃이 당신을 닮은 거 같아서 샀다고 했다. 초여름날, 보리수꽃을 내밀면서 내가 뱉은 말은 내 감정의 전부이면서 진실이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대상은 색이 없어지고 오히려 지워져 창백해진다.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대상은 참을 수 없이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그 나라 말을 못해서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일은 성냥을 사는 일이다. 나는 뭔가가 타는 냄새가 좋아 자주 성냥을 사용하지만, 사실 그러면서 나에게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디서든 불을 피워야 안심이 되고 안정이 되는 고약한 피.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배우게 되는 말은 ‘물’인 것 같다. 그다음은 ‘고맙다’라는 말.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위한 말.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도 눈빛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내게 ‘물’이라는 말과 ‘고맙다’라는 말은 서로 다르지 않은 의미의 말이다. 그 말을 배우는 순간, 그리고 그 말을 발음하고 소통되는 순간은 분명 여행의 시작지점을 짜릿하게 한다.
별 기억이 아닌데도 한 사람의 기억으로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돌아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데도 배를 잡고 뒹굴면서까지 웃게 되는 적이, 하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그 웃음의 근원과 크기가 아니라, 그 세세한 기억이 아니라, 아직가지도 차곡차곡 남아 주변을 깊이 채우고 있는 그 평화롭고 화사한 기운이다.
인연의 성분은 그토록 구체적이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좋아지면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저녁이 되면 어렵고, 밤이 되면 저리고, 그렇게 한 계절을 한 사람을 앓는 것이다.
조금은 바보 같아도 좋다.
케냐 초원에는 ‘누’라는 동물이 산다 . 주로 떼를 지어 서식하는 초식동물이다. 케냐 나이바샤의 크레센토 섬에서 사파리를 할 때였다. 사파리를 안내하면서 이런저런 동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던 레인저가 저 멀리 나무 뒤로 누가 나타나자 피실,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누, 쟤들 정말 웃겨서. 아무런 일도 없는데 어떨 때는 갑자기 전속력을 다해서 마구 달려. 그러다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면서 갑자기 급정거를 하지.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러고는 자기 자리로 조요히 걸어서 돌아와. 그게 다야. 진짜 웃기지 않아?”
이 친구는 동물의 그런 행동을 보고 바보같다, 멍청하다하지만 그것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사요할 줄 아는 거라 생각하기로 한다.
열정을 다해서 끝가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면서, 전속력을 다해 하고 싶은 것 가가이 갔다가 아무 결과를 껴안지 못하고 되돌아 오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도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어쩌면 우린 영원히 그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나도 그를 따라 같이 웃기는 했지만 누가 내 모습과도 너무 꼭 닮은 것 같아 얼른 웃음의 꼬리를 잘랐다.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삶은 일방통해이어선 안 된다. 루벤 곤잘레스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만 일방통해이어야 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다 털어놓을 한 사람.
등대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방향입니다.
사랑으로 하여금 인간을 어려운 일에 빠지게 하는 일, 그것은 신이 하는 일이다. 그 어려움으로 하여 인간을 자라게 하는 것이 신이 존재하는 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만 행복으로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신이 어떠한 장난을 친대도 사랑을 피할 길은 없다. 그냥 오고 닥치기도 하는 것이고 누구 말대로 교통사고처럼도 오는 것이다. 사랑은, 신이 보내는 신호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게 한다. 그것도 신이 하는 일이다. 죽도록 죽을 것 같아도 사랑은 남아 사람을 살게 한다.
그래,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하더라도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자. 옆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는 일, 그것은 사랑의 끝이다. 완성이다.
인간적으로 우리 사랑을 하자. 인간의 모든 여행은 사랑을 여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안에서 여행하게 되어 있다. 사랑을 떠났다가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사랑은 삶도 전부도 아니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에만 삶에서 유효하다.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곯아버린 연필심처럼 하루 한 번쯤 가벼워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 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 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누구도 이기지 마라, 누구도 넘어 뜨리지 마라.
하루 한 번 문신을 지워낼 듯이 힘을 들여 안 좋은 일을 지워라.
양팔이 넘칠 것처럼 하루 한 번 다 가져라,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행동하라.
하루 한번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으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펼쳐 놓아할.
먼지가 되어 바닥에 있어보라.
하루에 한 번 겨울 텐트에서 두 손으로 감산 국물처럼 따뜻하라.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큼 애틋하라.
하루 한 번 내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라.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무엇이 문제인가.
해는 지고 있고 하늘이 시리게 시리게 파란데.
저녁으로 맥주 한 잔과 케예프식 호박전을 앞에 두고 있는데.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는데.
황금으로 지은 집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이 가슴 미어지게 눈부신들 어찌하랴.
당신이 당신이 없는데.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바보같은 사람.
여러 번 당신에게 말했지만 나는 멀리 있는 사람.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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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두고 가끔 뒤적이고 싶은 책이다.
옥색의 겉표지에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렇게 씌여있는데
그냥 속을 보지 않아도 좋은느낌이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친구에게 긴 글을 적어 보내며 꼭 사서 읽어보라 권했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아 그것이 아니구나...
나는 친구에게 주소를 물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그녀에게 사 보냈다.
이즈음 들어 가장 잘 한 일이었다.
이 분의 어떤시를 참 좋아했다. 그 시를 다시 찾아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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