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생한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이 있다. 무척 오래된 이야기다.
시골티를 풀풀 날리며 중학에 입성하며 도시아이들의 잘난 모습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 내가 남의 무시로부터 벗어날 길은 공부였는데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남들이 두서너 번에 외웠다면 그 몇 배로 노력을 해야 했고,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내 교과서들은 거의 걸레 같았다. 연필로 밑줄을 수십번 그어대며 요란하게 공부를 했던 것이다. 어떤 열성만은 지극해서 마음을 먹으면 잠이 안 오는 약까지 먹고 밤을 지새우는 일이 종종 있었고 일 이등은 하지 못해도 삼등까지도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맞지 않는 과목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리한 머리끝으로 푸는 수학이나 과학 등이었고 마치 벌레인 것처럼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생각하는 것조차 싫었고 다만 수학을 잘 하는 아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어찌 어찌 연습과 노력 속에 얻은 점수가 겨우 칠십에 달할까 말까 했고 그것이 나의 전체 점수를 떨어뜨리는 것은 다반사였지만 너무도 싫어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점수를 올리기에 급급해 하지 않았다.
그러한 내게 학년이 바뀌고 과목 반장을 선출하는 시간이 왔는데 그 혐오스러워하던 수학과목에 반장을 떡 허니 시키는 것이었다. 수학을 못하는 사람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제발 시키지 말아 달라 반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반장은 정해진 것이어서 그리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나는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며 그 과목의 반장됨을 물리게 하고야 말았고, 대신 훨씬 수월했을 한문 과목의 반장을 맡게 되었다. 옛 글을 좋아하는 것부터 지금껏 나의 어떤思考는 그때 한문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근래에 나도 모르게 연결된 좋은 마음을 지니신 시인으로 하여 시조에 눈을 뜨게 되었다. 옛 책의 글 들을 좋아하여 보아왔던 시조임에도 눈을 뜨지 못했고 잡문을 쓰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불현 듯 시조와의 사랑이 시작되고 나도 그러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염려하며 몇 발짝 겨우 걸음마를 뛸 수 있었다.
문단이라 일컫는 곳의 내면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인들이 노래하는 곳간에 팔랑거리며 춤추듯이 선무당은 들락거렸던 것이다.
이러한 때 지켜봐 주시며 조언을 아끼지 않던 한 분께서 나의 옷자락을 거침없이 잡아당겼다. 바른 길이 아님을 재차 일러주셨다. 한동안 그분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조에게로 달려가는 내 사랑의 연을 끊어놓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심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잃었던 중심을 나는 찾을 수 있었다. 겉모습의 치장을 위해 달려가던 섣부른 어떤 마음을 데려올 수 있게 되었고 무수히 올라오는 시인들의 황홀한 시조만을 감상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 좋아하는 시인께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축하를 한다는 글이었다. 무슨 얘기냐 물으니 문단에서 내게 어떤 상을 주신다며 나의 부끄러운 이름석자를 어딘가에 올려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녀에게도 문단 내에서 어떤 방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일에 내가 한끝이라도 섞여 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으면 된다고 했지만 이런 저런 말도 없이 이름석자 부끄럽게 휘날릴 페이지는 어찌 할까 싶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주시고 글을 처음에 조금 봐주시던 시조 선생님께 상을 사양하노라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은 몇 편 쓰지 않아도 잘 썼기 때문이라고 구구하게 설명하셨으나 온당치 않음을 삼척동자라도 아는 일이다.
그저 시인들의 글마다 황홀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었지만 함께이고 싶었다.
시상식이 있는 날 인줄도 모르다가 그 페이지를 찾아 상을 사양하겠노라 댓글을 올렸다. 선생님께 얘길 전해 드렸던 터라 내 이름은 지워져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 내게 따뜻한 마음 한줄 친절히 달지 않았을까 싶어 다시 들여다보니 내가 썼던 ‘상을 사양한다..’는 댓글이 사라지고 없었다....
시조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 차 매일 노트와 연필을 들고 다니며 혼자 공부했다. 어떠한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주뼛거리기 시작한 날로부터 시마란 것이 한줌 희망도 남겨 놓지 않고 내게서 멀리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우울함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다.
오래전의 수학과목 반장을 거부하던 나의 어린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때 수학반장을 받아들이고 어찌되었든 반장이니 잘해야 했으니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해서 더 나은 성적을 올렸을 것임에는 짐작이 된다. 그러나 나의 판단은 누구보다도 수학을 잘 해서 다른 이들을 이끄는 보기도 좋고 떳떳한 사람이 수학반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손을 내밀어주신 선생님께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상을 받으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더 잘 지을 수 있게 되며 충분한 능력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떤 관행으로 맞지 않고 부끄러운 옷은 입고 싶지 않았다. 인고의 시간이 있었던 많은 순수한 시인들의 얼굴을 볼 낯이 서지 않는 것이다. 다만 관심 주시고 지켜보신 것은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한때 그림에 마음을 품고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겨우 얼마 배우지도 않으며 정신을 잃고 붓을 들었는데 어떤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냥 주시는 것이니 그래도 들뜬 기분으로 좋아하기만 하였던 것인데 지금 돌아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별스럽지도 않을 것을 혼자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여러 문단이나 기타 예술단체들의 나눠 주기식의 상에 대한 언급이 있음을 보았다. 마음이 여간 불편하고 씁쓸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시선 속에 어깨 세움으로 그로 향하는 길, 많은 이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을 보면 상은 사실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받고 싶기만 한 것이리라.
조금은 부족하고 빈듯해도 사람인지라 시인이란 명함 하나 주머니에 넣고 반짝이며 치장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조에 눈을 뜨면서 나의 잡문에 대한 사랑도 함께 피어오르고 있다. 심혈을 기울이며 잡문과의 만남이 길어지는 나날,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내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고 있다. 오래전에 문학회에서 가르침을 주시던 선생님 말씀이 새록새록 가슴을 파고든다.
‘아는 만큼 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속빈 강정이나 요란한 빈그릇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파에 흔들림 없이 깊고 넓은 독서 속에서 맑은 사람이 되는데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겠다. 나를 채우고 비우는 시기가 더 길어져야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