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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동 정미소

다림영 2013. 5. 1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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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동 정미소가 사라진지는 꽤 되었다. 그 곳에 다니던 절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미소를 만나며 옛 친구를 조우한 듯 들뜨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했다. 이제 왕곡동 정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스님도 하늘로 가신지 몇 년이나 되어버렸다. 절에 발길을 끊은지도 오래되었고 자두 밭이 있던 그 길도 나와 멀어졌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왕곡동 정미소, 가끔 그곳에 흰 빨래가 펄럭였고 그것을 바라보며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눈부신 햇살 속에 춤추던 빨래, 왕곡동의 푸른 산자락, 오래된 집의 파란 지붕, 높은 하늘과 멋을 한껏 내던 흰 구름, 그리고 시큼한 자두 밭, 옹기종기 작은 텃밭 속에 숨겨진 손길, 물소리 고왔던 개울가.... 그 아스라한 길을 거닐며 풍경처럼 늙어야지 했었는데 돌아보니 조악한 그림이 된 듯 나는 오늘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제 정목스님께서 텔레비전에 나오셨다. ‘를 물리치는 명상이나 기타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고요히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란다. 그러면 자신이 보인단다. 산 안에 있으면 산이 보이지 않듯이,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주듯이 내 이름을 불러주면 내가 보인단다. 항상 내 안에 있으니 나를 무슨 수로 볼 수 있었겠는가?

화가 나면 ... 하며 가만히 를 불러주면 그 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기다리며 졸음 결에 들었던 말씀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 이름을 가만히 불러주는 연습을 하려 했으나 쑥스러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또한 스님께서는 동요를 자주 들으라 하셨다. 동요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회자의 얘기가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자주 동요를 듣는 시간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리 삭막한 내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음악 옛날에 금잔디..’가 흐른다. 볼품없고 남루하던 지난날들이 영사기필름처럼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한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돌아볼 겨를이 생길 것이다.

혼자만 살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만 주변의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입는 날들이다. 그모든 것을 견디며 하루하루 잘 살아내고 있는 나를 위해 동요를 자주 듣고 가만히 내 이름 석 자를 불러 주어야 하겠다.

 

추억의 왕곡동 정미소가 오늘 문득 내게 다정히 들어왔다. 그 풍경과 함께 맨발이 유난히 맑던 스님이 보인다. 어느날 갑자기 떠난 모든 분들을 생각하면 인생은 부질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시인의 말씀처럼 소풍 나온 듯이 큰 욕심 없이 순정하게, 왕곡동의 정미소가 있던 풍경처럼 맑게 늙어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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