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전읽기의 즐거움/정약용,박지원,강희맹외 지음/솔

다림영 2013. 5.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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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나무꾼

 

갑과 을은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을은 약빠르고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타 언제나 좋은 나무를 많이 했다. 그러나 갑은 성격이 나약하고 나무를 타지 못하여 묵은 풀이나 긁어 모아 겨우 밥지을 거리나 할 뿐이었다.

어느날 을이 으스대며 갑에게 말했다.

자네는 나무할 줄도 모르는가. 좋은 땔감이란 평지에는 없다네. 나도 전에는 종일 죽도록 힘을 들여도 한 짐도 하지 못하였네. 그래서 나무하는 일은 제쳐두고 나무 타는 법을 배웠다네. 처음 나무에 오를 때는 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내려다보면 떨어질 것 같이 아찔하였지만, 얼마 지나자 조금 자신이 생겼고 한 달 뒤에는 높은 나무 꼭대기도 평지 같았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람이 가지 못한 곳에 오를 수가 있었고 높이 올라갈수록 좋은 땔감을 많이 할 수 있었지. 이 일로 나는 평범한 일만 하는 사람은 남보다 앞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네

 

이말을 들은 갑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땅바닥에 있고 자네는 나무 꼭대기에 있어 서로의 거리가 몇 길이나 되지만, 나의 위치에서 본다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이 낮은 것이 아님을 누가 알겟는가. 또 자네의 위치에서 보더라도 자네한테서 멀리 떨어진 것이 높은 것이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 낮은 것이 낮지 않을 수도 있고 높은 것이 높지 않을 수도 있으니, 높은 것과 낮은 것은 자네와 내가 정한 바가 아니라네. 대개 많은 이익을 얻으면 화禍 의 근원도 깊고 빨리 공을 얻으면 잃는 것도 빠른 법이지. 그만두게나. 나는 자네 말을 따르지 않겠네.”

하니 을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을이 벼랑 위에 있는 높은 소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치다가 그만 실족하여 땅에 떨어져 기절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들것으로 실어와 치료를 한 지 한참 만에 소생하였고 몇 달이 지나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두 다리는 부러지고 두 눈도 멀었으므로 마치 시체와 같았다. 그제야 을이 아버지를 갑에게 보내 높고 낮음에 관해 묻게 하니, 갑은 이렇게 말했다.

 

대개 위에 아래는 정해진 위치가 없고, 낮고 높음도 정해진 이름이 없습니다.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게 되고 낮은 것이 없다면 높은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래로 인해서 위가 되고 높은 데를 오르자면 낮은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높은 것은 낮은 것이 모인 것이며 아래는 위가 되는 시작입니다. 항상 높은 곳에 있으면 낮아지기 쉽고 위만을 즐거워하면 금방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높은 곳에서 그 높음을 잃게 되면 낮은 데서 편안하고자 해도 될 수 없고, 위에서 그 위를 잃어버리면 아래에서 머물고자 해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낮은 것이 높은 것보다, 아래가 위보다 낮지 않겠습니까.

 

을이 나무할 적에 높은 꼭대기를 좋아하고 낮은 평지는 싫어 했으니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좋은 나무를 하고 싶어하지만 좋은 나무란 위험이 도사린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익에 눈이 멀면 위험한지를 모르게 되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더 위험해지는 법입니다. 따라서 땅에서 멀어질수록 목숨을 가벼이 여기게 되는 셈인데 이것을 도리어 남에게 자랑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제가 을과 함께 오랫동안 산에서 나무를 하였는데 언제나 을의 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앞으로 얼마든지 나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을은 매우 위험한 곳에서 나무를 하였기 때문에 지금 젊은 나이에 폐인이 되었으니 아무리 계속 나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저는 비록 평범하게 나무를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니 늙어 죽을 때까지 나무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보면 어느 것이 많고 적으며, 어느 것이 높고 어느 것이 낮은 것이 되겠습니까.“

 

을의 아버지가 돌아와서 을에게 이 말을 전하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바탕 통곡하였다. 을은 그제야 전에 갑이 한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대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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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시숙재집 >에 실린 것으로,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다섯 가지의 이야기 <훈자오설 >중 하나이며, 원제는 <승목설 >이다. 좋은 땔감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위험쯤은 감수 해야 한다고 큰소리치던 나무꾼이 결국 나무에서 떨어져 큰 화를 입는 다는 일화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면 감수해야 할 위험도 크고,

빨리 얻으면 잃는 것도  빠르다고 경계함으로써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지름길임을 일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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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으며 큰 욕심없이 지낼 일이다. 모험을 할수록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얻는 그만큼이나 잃을 것 또한 커지는 것이다. 분수껏 살며 약간의 긴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일구어야 하겠다.

친구가 다녀온 비채길 풍경을 보았다. 빈 듯이 채운 듯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숲과 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어우러지며 고요했다.

비채길의 뜻이란 비움과 채움이라 한다. 오늘도 욕심을 채우려 했다면 다 비워내고 맑은 향기로 나를 채우는 작업으로 하루의 말미를 장식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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