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고전산문산책.조선의 문장을 말하다/안대회/휴머니스트

다림영 2013. 4. 2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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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움原閒/이 덕무

 

사통팔달의 큰길 옆에도 한가로움은 있다. 마음이 한가롭기만 하다면 굳이 강호(江湖)를 찾아가고 산림에 은거할 필요가 있으랴?

내가 사는 집은 저잣거리 바로 옆이다. 해가뜨면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 시끌벅적하다. 해가 들어가면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댄다. 그러나 나만은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때때로 문밖을 나가보면, 달리는 자는 땀을 흘리고, 말을 탄 자는 빠르게 지나가며, 수레와 말은 사방팔방에 부딪치며 뒤섞인다.

그러나 나만은 천천히 걷는다.

    

저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내 한가로움을 놓치는 일 한번 없다. 왜그런가?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사방 세 치의 마음이 소란스럽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들의 마음에는 제각기 영위하는 것이 있다. 장사하는 자는 작은 금전을 놓고 다투고, 벼슬하는 자는 영욕(榮辱)을 다투며, 농사짓는 자는 밭갈이와 호미질하는 것을 다툰다. 바삐 움직이며 날마다 소망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영릉()남쪽 소상강(瀟湘江)사이에 데려다놓는다 해도 반드시 팔짱을 낀 채 앉아서 눈을 감고 그들이 추구하던 것이나 꿈꾸고 있으리라. 그들에게 한가로움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그렇기에 나는 말한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은 저절로 한가롭다.”

 

 

<원한(原閒)>이란 제목은 한가로움의 근원을 밝혀보겠다는 뜻으로, 아무 일 없이 한가로운 자신의 삶을 한번 분석해보겠다는 의도다.

(汚)와 치(痴)의 작자가 이제 다른 쪽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낸다.

이덕무는 서울의 종로 인사동에 살았다. 조선시대에 가장 번화한 곳이 바로 종로 네거리였다. 그는 시끌벅적한 시장 옆에 살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삶 가운데서 얻어내는 평화로움을 예찬하였다.

    

그는 그러한 한가로움의 근원을 마음의 여유에서 발견한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사람은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데려다 놓아도 돈 버는 꿈이나 꾸고 권력의 쟁취나 꿈꾼다고 하였다.

    

이 글은 도시에 인구가 폭증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삼도 바빠진 현실을 배경에 깔고 있다. 전에 없이 바빠지고 소란스러운 삶을 경험하면서 여유와 한가로움이 18세기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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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야 봄날임을 깨닫고 꽃씨를 뿌렸다.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행하던 일이었다. 무엇에 정신을 홀려서 지금 있는 자리도 제대로 가꾸지 못한것일까남의 것에 눈이 어두워 마음은 소란스럽기만 했고 가는 시간을 잡지 못해 혼이 나간 듯도 했다. 문득 좋은 분의 깊은 말씀으로 헛바람을 재울 수 있었다. 며칠 전 책을 읽고 난 후의 마음도 이제사 정리한다. 나를 잃고 지내던 며칠 이지만 제자리를 찾아 다행이다.

 

쉰 고개를 넘겨도 배움은 지속된다. 나를 감싸던 진실과 마주하고 살피지 않으며 달려가지 않아 안도한다.

언젠가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道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하든 그 어느 곳에 있든 오로지 주어진 순간에 정신을 모으며 정성으로 다하는 것이 道라 하셨다. 어지러운 세상사 내 마음 하나 지키는 일조차 버거워 道를 인생에 처음으로 두었다.

 

오늘의 봄볕은 말할 수 없이 한가롭기만 하다. 그 한가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둥대던 사람이 있었다. 한적한 신작로를 바라보며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음악에 취하며 깊은 차 한 잔을 하는 일 ...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싱거운 일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다정한 일인가? 순한 눈빛과 따뜻한 마음과 싱그러운 봄 바람... 그 안락함과 한가로움이 내 삶의 질서임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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