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이 자호(自號)를 월암(月巖)이라 하여 <월암이란 호>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호를 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 호를 버리기로 하고 그 사연을 글로 쓴다.
몸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는 법이다. 천지라 이름을 지은 것은 천지가 있어서요,
산천이라 이름을 지은 것은 산천이 있어서요, 초목이라 이름을 지은 것은 초목이 있어서요, 금석(金石)이라 이름을 지은 것은 금석이 있어서다. 바탕(質)이 갖추어져 있으니 꾸밈(文)이 없을 수 있겠는가?
별이 걸려 있고 바람이 이는 것은 하늘과 대지의 꾸밈이요, 수풀이 우거지고 잔물결이 넘실대는 것은 산천의 꾸밈이며,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은 초목의 꾸밈이고, 단단하고 흰 것은 금석의 꾸밈이다.
나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 위에 자까지 지었으므로 그 자체가 꾸밈이 화려하다. 그런데 이름을 붙이고 자를 붙인 데다 또 호까지 지어 붙인다면 꾸밈을 가한 데다 또 꾸밈을 가한 것이다. 꾸밈이 승()하여 바탕을 없애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비록 꾸밀 것이 다시 생긴다 한들 더 베풀 곳이 있겠는가?
나의 호를 월암이라 지은 것은 내 집이 월암 밑에 있어서 그런 것뿐이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인생이란 물 위에 뜬 개구리밥이고, 바람 많은 나무에 걸린 버들개지이며, 울타리에 걸리거나 주렴에 날리다가 바닥에 뒹구는 꽃잎이다. 그를 가로막는 철문은 본래없다.
월암이 내 소유의 창고인가? 알맹이 없이 이름만 소유함은 , 바탕을 없애고 꾸밈을 더한 것과 같으므로, 이런 호를 갖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나는 이름을 갖고 있으나 그 이름이 동네 밖을 나가지 않는다. 비록 호를 가졌다 한들 누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를 비난하겠는가? 허나 배움이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있고,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음은 내게 달려 있다.
따라서 나는 나를 닦아 아무 부끄럼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간사한 짓거리와 위선적 행위를 하여 내심 부끄러우면서도 남이 눈치채지 못함을 다행으로 여기는 세인들처럼 행동해서야 되겠는가?
누군가 “이미 사용한 호인데 어떠냐?”며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는 말로 대꾸하였다.
고전산문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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