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
當日軒記
사람들이 당일(當日)이 있음을 모르는 데서부터 세도(世道)가 그릇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오로지 당일(當日)이 있을 뿐이다. 이미 지난 시간은 다시 회복할 방법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아무리 3만6천 일이 연이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날은 그날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실제로는 그 다음날까지 손쓸 여력이 없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저 한가할 한(閑)이란 글자는 경서()에도 실려 있지 않고 성인도 말씀하지 않으셨건만, 그것을 핑계로 사람들은 세월을 허비한다. 이로 말미암아 우주에는 제 직분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또 이렇다. 하늘 자체가 한가롭지 않아서 늘 운행하고 있거늘, 사람이 어떻게 한가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당일에 행할 일이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다.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행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하지 않은 일을 행한다.
따라서 길하고 흉하며, 운수가 사납고 좋건 간에, 하루는 시간을 쓰는 사람 하기에 달려 있다.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한 인간을 만드는 것도, 하루하루 행동을 닦은 뒤에야 크게 바뀐 사람에 이르기를 바랄 수 있다.
지금 신군(申君)이 몸을 수행하고자 하는데 그 공부는 오직 당일(當日)에 달려 있다. 그러니 내일은 말하지 말라!
아! 공부하지 않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날과 한가지로 공일(空日)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하게 빛나는 이 하루를 공일로 만들지 말고 당일로 만들라!
이용휴(李用休)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글이다.
신군은 앞에 나온 신의칙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가 당일헌이란 이름의 집에 걸어둘 글을 청하였다. 작자는 그에게 내일을 핑계대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a라고 오늘 당장 실천하라는 취지의 글을 써주엇다. 교훈을 말하되, 식상하지 않게 말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용휴의 외손자인 이학규는 김해에서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요 내일의 어제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네게 진시황이나 한무제보다도 열 배나 더한 권능과 위력을 넉넉하게 베풀었으므로 결코 한 시각도 미루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쓸 수 있는 권한은 눈을 꿈적하고 숨을 들이쉬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글에서 말하고 있는 태도와 언어가 외손자의 글에도 깊이 배어 있다.
<책 고전산문산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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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정한 분량의 글을 읽기로 다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침부터 이제까지 세상사에 휘둘려 아침운동도 거르고 마음은 진탕이 되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터인 줄 알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말았다. 세상사에 한 발 뒤로 물러나 옛 님 의 말씀을 거듭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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