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언소품 20칙
1.현재는 병이요, 과거는 약이다.
2.안 하자니 게으르고, 하자니 괴롭다.
3.어찌 남만 두려워하랴? 나도 내가 두렵다.
4.대기만성(大器晩成), 이 한 마디 말이 수많은 용렬한 선비를 죽였다고 옛사람이 말했다. 그 말이 참으로 맞다.
5.마음맞는 사람과 더불어 맑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눈속이 어울리고, 빗속이 어울리며, 달빛 속이 어울린다. 비가 눈보다 낫고, 달이 비보다 낫다.
6.꽃이 핀 동산, 달이 뜬 다락, 바람 아래 소나무, 눈이 쌓인 골짜기, 모두가 생활의 여가를 즐길 장소이다.
7.빼어난 사람은 언제나 멍청함을 달고 살고 아름다운 사람은 대개 졸렬함을 동반한다. 결함많은 세계의 일이란 늘 이런 것이 걱정이다.
8.천하에는 원만한 일이 없다. 따라서 결함이 일상사다. 천하에는 이로운 일이 없다. 따라서 손해가 일상사다. 이런 사실을 알면 거의 됐다.
9.인간 세계는 천 개, 백 개의 층계가 있다. 가장 나은 것은 벗어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지나가는 것이며, 그 다음은 희롱하는 것이다.
10.미인은 구리거울을 사랑하고,명사는 예스런 벼루를 사랑하며, 장군은 좋은 말을 사랑하고, 나라면, 노인은 손자를 사랑하고 속물은 동전을 사랑한다고 말하리라.
11.고락(苦樂)!이 두 글자는 인생에서 던져버리려 해도 던져버리지 못한다. 물리쳐버리려 해도 물리쳐버리지 못하므로, 목숨을 걸고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짓거리를 쉬지 못한다. 세계는 견디고 참아야 하는 곳, 그럴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12.한 걸음 물러서는 것! 이것이 수월하게 사는 법이다. 옛날에도 그렇게 산 사람은 겨우 조금 있었을 뿐이다. 자취를 거두어 숨어살기가 어렵고, 망가지고 굽히며 견디고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13.뱃속에는 기이한 글자 하나 들어 있지 않고 입으로는 아름다운 말 하나 뱉어내지 못하며 멍청하고 뚱뚱한 몸으로 남을 보며 마시고 먹는다. 이런 자를 지금 편안하게 살도록 해도 좋은 걸까?
14.이 세계는 욕망의 세계다. 기(氣)가 뭉쳐서 욕망으로 시작하여 욕망으로 끝난다. 이 세계를 뛰어넘고 벗어나는 자는 겨우 몇이고, 머리를 들이밀다 사라지는 자는 넘쳐난다. 이것이 정녕 조물주가 이 세계를 만든 이치다.
15.말해선 안될 것을 말한다면 말이 품격을 잃은 것이요, 행해선 안 될 것을 행한다면 행동이 품격을 잃은 것이다. 다른 것도 모두 이와 비슷하다. 인간으로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품격을 잃는 것이요,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품격을 잃지 않는 것이다.
16.나는 나와 더불어 지내고, 나는 녹음과 더불어 지내며, 나는 책 속의 옛사람과 더불어 지낸다. 나는 비굴하고 멍청하여 명기(名器)가 없는 자들과는 더불어 지내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가슴이 펴지며, 시원하고 좋은 일만 생기리라.
17.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일이 많아서는 안 된다. 그 무엇에 마음이 붙잡히면 공부를 하지 못한다. 오늘날 선승(禪僧)들이 불경 공부를 폐하는 것은 게송(偈頌)에 대한 일념이 뱃속에 달라붙어 그것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인데, 그런 사실을 자신은 모르는 것과 같다.
18.옛사람의 득의(得意)의 문장을 내가 마음을 기울여 읽으면 천하만사를 잊어버린다. 그러면 바로 상쾌해진다. 그러나 문장을 읽는 기회를 얻기가 몹시 어렵다. 신령한 마음과 지혜로운 눈이 있어야 읽어서 이해하고, 맑은 시절 한가로운 날을 만나야 읽는 시간을 만들며, 몸의 병이나 집안의 쓸데없는 일이 없어야 읽어서 음미하고, 책갈피와 포갑을 쌓아놓아야 책읽기의 준비가 끝난다. 어렵구나!
19.옛날 어떤 사람이 호숫가에 살았는데 몹시 가난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그대는 한 이랑의 밭도 없으니 마음이 어찌 괴롭지 않으리요?”라고 물었다. 그의 대꾸는 이랬다.
“내게는 호수 삼만 이랑이 있지요. 그걸로 내 마음을 맑게 하기에 괴로움이 있을 수 없지요.”
그러자 어떤 사람이 반문했다.
“호수가 그래 그대의 소유물인가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나요?”
이 말이 너무도 시원하여 속됨을 벗어났다.
20.“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다”는 무구어세(無求於世), 이 네글자는 큰 안락함을 얻은 선가(仙家)의 비결이다. 오호라! 든 인생에서 견디고 참아야 할 수많은 일들은 모두가 구하는 것이기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생고생 휩슬려가느라 쉴 틈이 없다.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이 내 온갖 행위가 이루어진다면, 편으롭고 자유자재하여 소요하며 지내리라. 그렇게 백 년을 보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다만 그렇게 하짐 못하기에 세계는 견디고 참아야 하며, 그 결함을 슬퍼하는 것이다.
,책,고전산문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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