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서 있는 사람들/법정/샘터

다림영 2013. 2. 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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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나온 김에 빌라의 경제 윤리 같은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마을사람들이 축제에 들떠 즐기고 있을 때, 그는 알바라도라는 지난날의 한 부호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는 돈을 가지고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에 자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빌라는 말한다.

 

참된 부자는 항상 그들의 의무를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돈은 부자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국민의 것입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돈을 쓸 것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궁핍을 덜어 주는 일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알바라도가 돈을 갖게 된 내력을 들어보자.

 

빈부는 운명의 장난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산에서 노다지를 발견해 큰 부자가 된 것도 운명이요, 곧 광맥이 끊어져 몰락한 것도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땅속에서 나온 때문이지요.그래서 나는 이런 행운이 나에게 온 것을, 이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광부들에게 임금을 많이 주었습니다.”

 

부자의 기쁨은 긁어 모으는 재미보다는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그 마음에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서넛이 살고 있는 집에 에스컬레이터를 장치하고 실내 풀장을 만드는가 하면, 지하에 바를 차려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의 졸부들하고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안개가 숲을 가리더니 수목들에 물기가 배었다. 겨울 동안 소식이 묘연하던 다람쥐가 엊그제부터 양지 쪽 헌식돌 곁에 나와 내 공양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늦가을 무렵까지 윤기가 흐르던 털이 겨울을 견디느라 그랬음인지 까칠해졌다. 추위에 짙은 갈색으로 변했던 향나무가 요 며칠 사이에 싱싱한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참나무 숲에서도 가지 끝이 촉촉이 뻗어오른다.

 

겨울 동안 들을 수 없던 산비둘기 소리가 다시 구우구우 울기 시작했고, 밤으로는 앞산에서 고라니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치고 있다. 나는 한밤중의 잠에서 자주 깨어난다. 이런 걸 가리켜 사람들은 봄의 시작이라고 한다.

 

겨울동안 들을 수 없던 산비둘기 소리가 다시 구우구우 울기 시작했고, 밤으로는 앞산에서 고라니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치고 있다. 나는 한밤중의 잠에서 자주 깨어난다. 이런 걸 가리켜 사람들은 봄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 모든 생명이 살아서 수런거리는 이 힘을 우리는 봄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장엄한 생명의 용솟음을 누가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얼었던 대지가 풀리고 마른 나무에 움이 트는 이 일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자기 몫을 위해 신의를 등지고 배반하는 일조차 있지만, 이 존엄한 우주 질서에는 거짓이 없다. 허공에 가지를 둔 나무들을 보라.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생명을 내뿜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들의 가지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우리가 떳떳한 인간이라고 외칠 수 있는가.

 

물어보자. 우리의 있음을. 어디 한 번 큰소리로 물어보자. 이러고도 오늘의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가를.

봄이 온다고 한다. 죽었던 대지에 다시 생명의 봄이 움튼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봄은 주어진 봄이 아니라, 스스로 파서 씨뿌려 일구는 봄임을 잊지 말자. 침묵의 나무에 움이 트고 있다. 우리들의 가지에도 청청한 생명의 움을 틔워야 한다.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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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가 지났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사위에 숨어 있을 듯한데 매서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만 한다.

언제부터 봄을 기다렸다. 기다림이 긴 만큼 겨울은 춥고 느리게 가고 있다.

아직도 눈은 곳곳에 쌓여 있고 봄의 기운이 어디에 있다고 선조들은 이런 날을 만들어 놓으셨던가. 춥고 견디기 어려운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봄이 곧 오고 있음을 생각하면  온기가 퍼질 수 있으니, 때마다 이러한 절기를 만들어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리라.

 

몸도 마음도 겨울에 지쳐 한 치의 기운조차 지니고 있지 않으나 우수라는 얘기에 마음이 먼저 일어나 몸을 부축인다.

따뜻한 날들아 어서 오렴. 김밥 몇 줄 배낭에 넣어 산길을 나서고 싶구나.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은 저도 모르게 녹고 나는 한때나마 봄빛에 물들어 자유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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