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12.26
정민의 世設新語
추연가슬(墜淵加膝)
연암 박지원이 면천 군수 시절, 충청 감사가 연분(年分)의 등급을 낮게 해줄 것을 청하는 장계를 누차 올렸지만 번번이 가납되지 못했다.
다급해진 감사가 면천 군수의 글솜씨를 빌려 다시 장계를 올렸다. 연암이 지은 글이 올라가자 그 즉시 윤허가 떨어졌다. 감사는 연암을 청해 각별히 대접하고 은근한 뜻을 펴보였다.
하루는 감사가 연암에게 도내 수령의 고과 점수를 매기는 종이를 꺼내놓고 함께 논의 할 것을 청했다. 채점을 받아야 할 당사자에게 채점을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니, 감사로서는 특별한 후의를 보이려 한 일이었다. 민망해진 연암은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해 면천으로 돌아와 버렸다.
감사는 연암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꼈다. 나는 저에게 속마음을 주었건만, 제가 어찌 저리 도도한가? 연암을 따라간 아전을 붙잡아 벌을 주고, 인사 고과도 “치적은 구차하지 않지만, 병이 교묘히 발동한다”는 평과 함께 낮은 등급을 주었다. 애정이 바뀌어 미움을 변한 것이다. 연암은 사직서를 쓰고 휴가를 청한 뒤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이때 일을 적은 연암의 글 중에 추연가슬(墜淵加膝)이란 말이 보인다.‘예기(禮記)’단궁(檀弓)에 나오는 자사(子思)의 말이다. “지금의 군자가 사람을 쓸 때는 마치 무릎에 앉힐 듯이 하다가, 물리칠 때는 못에 빠뜨릴 듯이 한다(今之君子,進人若將加諸膝,退人若將墜諸淵 )”고 했다. 예쁠때는 제 무릎 위에라도 앉힐 듯 살뜰하게 굴다가, 내칠 때는 깊은 연못에 밀어 넣듯 뒤도 안 돌아본다는 의미다. 사람을 쓸 때 애증()이 죽 끓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쓴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시절이 왔다. 윗사람의 용인법은 역량을 가지고 해야지 미쁘고 미운 감정을 가지고 해서는 안된다. 예쁘다고 무릎 위에 척 앉히면, 다른 사람들도 역량이 아닌 아첨으로 섬기려 든다. 무릎 위에 앉는 것을 기뻐할 일도 아니다. 언제 못에 빠질지 알 수가 없다.
‘시경’진풍(秦風)권여(權與)에도 “내게 잘 차린 음식이 가득하더니, 지금은 매끼니조차 빠듯하네. 아아, 처음과 다르도다(於我乎 夏屋渠渠 今也每食無餘 干嗟乎 不承權與)”라고 했다. 진나라 임금이 선비 대접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풍자한 노래다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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