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2013.1.2. .수요일.
정민의 世設新語
청나라 때 문인 왕학호(王學浩)는 여러번 과거에 낙방했다. 그는 대강남북(大江南北)을 여유롭게 노닐며 그림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림의 격이 워낙 높아 사대부들이 다투어 높은 값에 그의 그림을 사들였다. 남종화의 대가로 기려졌다. 그가 자신의 화첩에 이렇게 썼다. “그림의 여섯가지 방법과 한 가지 원리는 단지 ‘사(寫)’란 한 글자로 귀결된다.
‘사’, 즉 그림 그리는 일은 뜻이 붓보다 앞선 후, 본 것을 곧장 따르는 데 있다. 비록 헝클어진 머리에 거친 복색이라도 의취(意趣)가 넉넉해서, 혹 공교로운 아름다움을 지극히 하더라도 기미(氣味)는 고아한 것이 이른바 사대부의 그림이다. 그렇지 않다면 속된 화공의 그림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의재필선(意在筆先),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 구상이 선 뒤에야 붓을 드는 법이다. 의욕을 앞세워 덮어놓고 달려들면 아까운 화선지만 버린다. 진(晋)나라 때 왕희지(王義之)는 “글씨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벼루와 먹을 앞에 두고 정신을 모은 채 생각을 가라앉힌다. 미리 글자 형태와 크기, 기울게 쓸지 곧게 쓸지, 휘갈겨 쓸지를 생각해서 근맥(筋脈)이 서로 이어지게 하여, 뜻이 붓보다 앞선 뒤에야 글씨를 쓴다.” 고 한다. ‘위부인의 필진도(筆陳圖) 끝에 제한 글’에서 한 말이다.
청나라때 화가 판교(板橋) 정섭(鄭燮)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겼다. 그의 집은 강가에 있었다. 맑은 가을날 새벽에 일어난 그가 대숲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옥한 안개 사이로 햇살이 비껴들고, 댓잎에는 이슬 기운이 아직 남았다. 이 모든 것이 성근 대나무 가지와 촘촘한 잎 사이에서 아련히 떠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슴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어난다. 억제할 수가 없다. 그의 가슴속에 대나무가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는 서둘러 먹을 갈고, 종이를 펼친다. 성큼성큼 붓을 재촉해서 온갖 형용을 그려낸다.
그는 의재필선과 함께 취재법외(趣在法外)를 말했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 하지만 흥취는 정한 틀을 벗어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림만 그렇겠는가? 세상일이 다 그렇다. 세로운 한 해를 맞아 순백의 화선지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의욕을 앞세운 덤벙대는 붓질보다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는 일이 먼저다.-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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