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난 ‘대표번호’와 친하다

다림영 2012. 12. 27. 18:47
728x90
반응형

 

조선일보 20121227일 목요일

 

一事一言

대표번호와 친하다

 

회사마다 대표번호라는 게 있다.

ARS전화는 대게 1588이나 1577로 시작한다. 전화를 걸면 돌고 돌다가 직원이 받는다. 이런 전화로 인연을 만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보통 거의 없다고 대답하지만, 뜻밖에도 제법 많다고 말하고 싶다.

 

살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특히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가 되면 내가 올 한 해 잘 살았나싶은 생각에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다고 난 믿는다. 첫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고, 둘재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난 이 두가지를 꽤 잘 지키며 살았다.

 

비결은 딱히 없다. ‘대표번호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강심장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또렷이 전달할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 밖에는.

 

가령 어느회사 사장님과 꼭 한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연락처가 없다면 ? 난 일단 대표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수십 고개를 넘어 사장님과 통화한다. 이때 중요한 건 지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얘기를 조리 있게 또박또박 하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연결된 사장님이 당신 말 참 재미있게 하네. 만납시다라고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5년 전 한 화장품 회사와 공예전시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당시 난 평범한 주부였고, 그저 마을 행사에 참여한 주민에게 화장품 샘플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턱대고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힘들게 연결된 그 회사 간부는 내 얘기를 듣고 기획안을 요청했다.

 

 그렇게 이 회사와 인연을 맺었고, 5년 동안 꾸준히 함께 전시를 열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저지르고 보면 어떨까. 운명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앞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최문영. 북촌상회 대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