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一事一言
난 ‘대표번호’와 친하다
회사마다 대표번호라는 게 있다.
ARS전화는 대게 1588이나 1577로 시작한다. 전화를 걸면 돌고 돌다가 직원이 받는다. 이런 전화로 인연을 만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보통 ‘거의 없다’고 대답하지만, 난 ‘뜻밖에도 제법 많다’고 말하고 싶다.
살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특히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가 되면 ‘내가 올 한 해 잘 살았나’ 싶은 생각에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다고 난 믿는다. 첫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고, 둘재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난 이 두가지를 꽤 잘 지키며 살았다.
비결은 딱히 없다. ‘대표번호’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강심장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또렷이 전달할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 밖에는.
가령 어느회사 사장님과 꼭 한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연락처가 없다면 ? 난 일단 대표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수십 고개를 넘어 사장님과 통화한다. 이때 중요한 건 지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얘기를 조리 있게 또박또박 하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연결된 사장님이 ‘당신 말 참 재미있게 하네. 만납시다’ 라고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5년 전 한 화장품 회사와 공예전시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당시 난 평범한 주부였고, 그저 마을 행사에 참여한 주민에게 화장품 샘플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무턱대고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힘들게 연결된 그 회사 간부는 내 얘기를 듣고 기획안을 요청했다.
그렇게 이 회사와 인연을 맺었고, 5년 동안 꾸준히 함께 전시를 열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저지르고 보면 어떨까. 운명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앞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최문영. 북촌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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