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1/7
정민의 世設新語
한나라 무제(武帝)때 서역에서 길광(吉光)의 털로 짠 갖옷을 바쳤다. 갖옷은 물에 여러 날 담가도 가라앉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신통한 물건이었다.
이 옷만 입으면 어떤 깊은 물도 문제 없이 건너고, 불 속이라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었다. 길광이 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길광은 신수(神獸), 또는 신마(神馬)의 이름으로 나온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는 "길광의 갖옷은 황색인데, 신마의 종류"라 했다.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도 "길광이란 짐승은 3000년을 산다"고 썼다.
글에서는 반드시 길광편우(吉光片羽)로만 쓴다 편우는 한 조각이다. 길광의 가죽으로 짠 갖옷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을 말한다. 길광편우는 전체가 다 남아 있지 않고 아주 일부분만 남은 진귀한 물건을 가르킬 때 쓰는 표현이다. 길광이란 짐승은 아무도 실물을 본 사람이 없다. 자투리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이게 바로 그 갖옷의 일부분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본들, 갖옷의 효능은 상실한 지 오래다. 길광은 늘한 조각으로만 남아있다. 막상 실물이 나온다 한들 별것 아니기 쉽다.
한편 이규경(李圭景)은 그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에서 길광을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새의 일종으로 보았다. 이와 비슷한 새에 숙상(. .)이란 것이 있다. 이 새도 봉황 같은 깃털을 지닌데다 빛깔이 참으로 아름다워 이것으로 갖옷을 만든다고 했다.
또 금계(錦鷄)는 애계(崖鷄)라고도 하는데, 제 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온종일 물에 비춰 보다가 눈이 어찔해져서 빠져 죽기까지 한다는 새다. 자기도취가 몹시 심하다. 이 또힌 글 속에 몇 줄 등장할 뿐 직접 본 사람은 없다.
길광은 신수(神獸)인가,신조(神鳥)인가? 어차피 실체는 없다. 새든 말이든 따질일이 못 된다. 사람들은 뭔가 굉장할 것 같은 한 조각만 달랑 들고, 있지도 않은 전체 상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간다. 그것만 있으면 물도 불도 아무 겁날 것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길광은 편우(片羽)일 때만 길광이다. 어딘가 신비한 곳에 숨어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절대로 모습을 나타내는 법은 없다. 길광은 혹시 희망이란 짐승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양대 교수 .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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