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성적이 바닥이던 나도 교수 됐다...수험생들아, 인생은 아~주 길단다

다림영 2012. 11. 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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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1월 10~11

남정욱 교수의 명랑 笑說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다. 혼자 힘으로 반평균을 떨어뜨렸다 수준의 고전적인 무용담으로는 소생의 부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틀별반이라는 게 있었다. 이 반의 존재는 국정원도 모른다. 자존심 배려 차원에서 당사자에게만 통보했기 때문이다. 반에서 수학을 제일 못하는 학생만 모아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는데(구구단부터 가르친다. 명색이 고등학생인데....)몇 번의 수업이 진행되고 중간 평가 시험을 본 날 담임은 침통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중간은 할 줄 알았다."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보던 날, 하늘이 참 맑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제 이 지겨운 생활도 끝이구나. 고사장에 앉아 있는데 특별 휴가 나온 군인 아저씨가 화장실로 부른다. "너 좀 공부 좀 하게 보인다? 몇등급이냐. 나 이번이 세번째인데 좀 보고 쓰자." 예나 지금이나 소생 거짓말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술술이다.

"당연 일등급이죠. 서울대 목표고요." 군인 아저씨 달처럼 환해진다. "그럼 나는 연고대는 가겠구나." 눈 똑바로 뜨고 정색을 했다. "무슨소리예요. 저랑같이 서울대 가셔야죠."

 

감동에 겨워 그는 눈물까지 흘렸다. 미안하다. 김병장, 점수가 나오고 쇼무실로 담임이 웬일이냐는 듯 본다. "대학 가려고요." 고개를 갸웃한다. 중위권에 속하는 대학과 학과를 말했을 뿐인데 100점이 더 필요하단다. "안 되는데, 저 대학가요제 꼭 나가야 하거든요." 담임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대학가요제는 모르겠고 어디 근로자 가요제 같은 거 알아보셔."

 

수능이 끝났다. 이 글은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그 부모님들께 드리는 글이다. 먼저 위로다. 너무 좌절하지 마시하. 수능이 끝났다고 당신 인생까지 끝난건 아니니까. 물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실기(失機)한 건 사실이다. 앞으로 십 년은 그 실패의 결과를 뼈저리게 곱씹게 될 것이며 마음것 퍼 자며 희희낙락 즐겁게 보낸 학창 시절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같은 해괴한 계보를 꿰고 명문대와 '지잡대' 사이의 크레바스적 간극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대 졸업생이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얼마나 공허한 위로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문열 선생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평균치의 삶조차도 누리지 못할 것 같은 공포'는 덤이다.

 

그러나 인생은 길다. 아~주 길다. 지겹게 길다. 십년쯤 지나면 세상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 그동안 준비 많이 했니?  그게 무슨 말이세요? 당신이 되묻는 순간 세상은 싸늘하게 돌아선다. 넌 네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놈이구나.그리고 다시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수능을 못 본 당신, 나쁜 학벌을 예약했다.학벌이 나쁘다는 거 별거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고르는 대신 남이 시키는 일을 주로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 정도? 좋은 점도 있다. 밋밋하고 말랑말랑한 삶 대신에 거친 풍파와 싸우는 드라마틱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뒤늦게공부를 시작하고 이 재미있는 걸 왜 몰랐을까 탄복하는 즐거움도 있다. 어지간한 모욕으로는 상처받지 않는 내공이 생겨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군자적 풍모를 갖추게 된다.

 

이런 말 들어보셨나. 뛰는 놈 위에 나는놈, 나는 놈위에 사생결단한 놈. 이제부터 뭘 하든 목숨을 걸고 하시라. 건투를 빈다. 인생은 길다.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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