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김풍기/해토

다림영 2012. 10. 1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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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 얻으면 소리높여 노래하고 잃으면 쉬니

근심스럽든 한스럽든 모두 느긋해

오늘 아침 술 있으면 오늘 아침 취하고

내일 아침 근심 오면 내일 아침 근심하려니

 

得卽高歌失卽休

多愁多恨亦修修

今朝有酒今朝醉

明朝愁來明朝愁

 

나은羅隱 ,<자견自遣 >

사람살이가 어찌 즐거움만으로 이어지겠는가. 희노애락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내 앞에 닥친 것을 살피며 살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나은의 시처럼 살아가는 태도는 때때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관達觀 과 체념 諦念사이에서 끊임없이 떠도는 듯한 느낌이다.

 

복잡한 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일 중독증 사이의 긴장이 강한 법이다. 이런 사정은 조선 시대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바쁜 관직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도연명陶淵明 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에 비의하여 표현했다. 그런데 귀거래를 많이 읊조리는 사람일수록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은의 시를 읽으면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달관인지 체념인지 정확히 가르기가 어렵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 이런 종류의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매사를 심드렁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나은의 시를 체념의 방식으로 읽을 것이고, 시구 속에서 뭔가 번뜩이는 지혜의 편린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달관의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체념의 대척점에 달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분분한 논의를 완전히 뛰어넘은 전혀 다른 제 3의 자리에 달관이 위치한다. 그건 마치 아무것도 갖지 못한 비렁뱅이가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데 소유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런 사람은 비록 아무것도 없는 거지라 하더라도 무한한 욕망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이다. 내가 충분히 소유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삶이야말로 무소유의 실천이다.

 

달관도 마찬가지다.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동의 표면만을 가지고는 달관과 체념의 구분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현실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지만 그것의 허망함을 충분히 깨닫고 스스로의 의지로 단호하게 거부하는삶이 바로 달관의 자리이다. 더욱이 그 삶이 긍정의 몸짓으로 표현되어야 달관이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깨달음의 경지다.

 

부처님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스님에게, ‘차나 한잔 하시라 喫茶去고 권했던 조주 趙州스님의 말씀이 어쩌면 그 경지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진리가 무엇인지 과거의 경험이나 학습을 떠올린다거나, 나중에 이 말을 가지고 무엇을 생각해 보려 한다면, 모두 망상이다. 그 순간 어던 욕망과 망상의 개입없이 무심하게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래야 술을 보면 마시고 근심이 오면 근심을 하는 달관의 경지를 살아간다.

 

추억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무리 당차다고 한들, 모두가 집착이요 망상이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부여잡고 돌아보며 머뭇거리는 것은 고단한 한때를 위로할 수는 있다. 장밋빛 미래의 청사진을 내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 역시 힘든 현실에 잠시나마 위안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미 지나가버려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딛고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여 헤어날 줄 모른다. 그 집착은 지금, 여기의 나를 옥죈다.

 

집착을 버리는 일은 참으로 끔찍한 과정을 동반한다. 한 여름날 밤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별을 바라보던 추억을 , 친구들과 눈밭을 뒹굴면서 비료부대를 찢어 만든 눈썰매를 타던 소중한 기억을 집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노후를 준비하고 커나가는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는 마음을 집착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추억과 희망을 집착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집착과 대면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당면한 현실을 정확한 눈으로 보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라야 한다.

 

현실에 대한 욕망과 집착도 우리의 현재를 힘차게 만들어 나가는 힘이다. 그걸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희망이 현재의 나로 나타나고, 현재의 내 소망이 미래의 어떤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그 관계성을 정확한 눈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한 눈을 갖는 순간 추억과 희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나를 옥죄는 추억과 희망이 내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면서 내 삶의 가장자리를 만들 때, 그리고 내가 그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욕망과 집착을 벗어던진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유로운 눈으로 우리의 추억과 희망을 다시 살펴야 한다.'

 

김풍기/

강원도 강릉출생.

한때 시인을 꿈꾸었으나 독자로서 만족하며 살아가기로 하고 오랫동안 한 시를 읽고 암송하며 즐겨왔다.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수유+연구공간 너머’>에서 여러 벗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으며,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조선전기문학론연구>

<한국 고전시가 교육의 역사적 지평> 등을 비롯하여, <옛시 읽기의 즐거움>,<시마, 저주 받은 시인들의 벗><누추한 내 방, 허균 산문집>등이 있으며, 앞으로도 한 시를 포함하여 우리의 고전문학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내는 일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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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두분이 다녀가셨다. 한번은 종을 울리며 염불을 몇마디 하시더니 내가 천 원 한 장을 들고 나가니 그만 목례만 하고 휭하니 가시고 또 한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하고 염불을 가게 안까지 들어와 한참이나 해주셨다. 달랑 천 원 한 장 드리기 송구해서 돈을 반을 접었더니 하시는 말씀 돈은 반듯하게 펴서 건네는 것이라 하셨다. 차마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하기가 뭐해서 웃고 말았다.

천 원 한 장에도 그렇게 마음을 다해 주시는 분 때문에 내게 들어오는 모든 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저녁이다. 어쩌면 이리 조용한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체념을 떠나 달관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저녁이면 매일 소줏잔을 기울이시던 생각이 거듭 떠오른다. 오남매를 둔 아버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그때 아버지의 심정이 오늘 나의 마음 같지 않았을까 싶지만 난 술을 잊은지는 오래 되었고 책에 의지한다.

 

 

좋은 스님이 주신 <고왕경>을 겨우 한 번 필사를 해 보고 좋은 시를 읽어보고 빈 마음인 듯 널어놓은 호박도 뒤집어 놓아보고 걸레도 쥐어보지만 근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냉동실도 되지 않는 오래된 냉장고 소리는 왜 이리 크게 또 들리는 것인지 참으로 그렇다. 그러나 웃어야 하리 지금 이 자리에 나는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음으로.

이제 곧 퇴근시간이 돌아온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는 날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주 싼 쌀 과자를 하나 사야 하겠다. 그리고 마음껏 웃어야 하리라. 내일의 근심은 내일이 되어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점점 나는 달관의 길이 멀리서 보이는 듯도 하다. 웃음!

 

지은이의 말씀들이 마음으로 쏙쏙 들어오는 책이었다. 좋았다. 곁에 두고 보면 참으로 좋을 듯 싶으나 이것은 빌려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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