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들/이어령/문학사상사

다림영 2012. 10. 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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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친구여,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친구여!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여름밤의 반딧불과 겨울의 그 화롯불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고 친구여, 당신은 물어보지 않았는가? 등잔불 밑에서 긴 편지를 쓰던 그 많은 밤들이 어디로 갔는가 하고 친구여, 당신은 물어보지 않았는가?

친구여!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돌담을 돌아 막 사라진 시집간 누이의 그 가마 꼭지 같은 혹은 수풀 너머 사라진 연과도 같은 혹은 빈방에서 울려오던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나 담뱃재를 터는 장죽長竹 소리와 같은 그리고 친구여! 이제는 가사도 곡조도 희미해져 버린 옛날의 그 노랫가락과도 같은 사라진 우리들의 그 생활을 기억하지 않는가?

 

흙은 콘크리트로 변했다. 호롱불은 형광등으로 바뀌고, 숲의 나무들은 고압선 전주電柱 의 철골을 닮아가고 있다. 이제는 귀를 기울여도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 도시에 갑작스레 울려오는 저 생소한 소음騷音 의 의미는 무엇인가?

 

친구여!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어느 제과製菓 회사의 공장에서 일제히 파하고 돌아오는 우리 소녀들의 그 말씨와, 낡은 종이봉투를 끼고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우리 아버지들의 굽은 어깨를 이야기하자. 문명의 계절에서 무슨 꽃이 피던가를 이야기하자. 잃어버리고 나서야 가졌던 것을 알고, 가졌던 것을 알아야 무엇인가를 찾을 수가 있다. 이 문명의 밤에 당신은 한 마리 곤충처럼 의식의 촉각觸角 을 세우고 더듬거려 봐야 할 것이다.

 

친구여!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도시의 어느 골목에 놓고 온 것을 타이프라이터 소리에 짓눌려버린 그 목소리들을 그리고 오전 9시의 출근 시간과 오후 6시의 그 퇴근 시간에 미처 챙기지 못한 우리들의 꿈을 이야기하자. 동혈洞穴 속에서 짐승과 비를 피하던 그 옜 사람들처럼, 어두운 의식의 동굴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상실한 것들의 말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새로움을 찾기 위해서 친구여,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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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세상이 이토록 변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변한모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순간에 몰입을 하고 별 것 아닐지라도 마음을 담그면 안 되는 일일까. 게임 속에 빠진 아이들이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듯 힐끗 바라보며 손에 쥔 것에 마음을 넣어버리고 마는 어른들이 많다.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 모르는 것 같다. 기본적인 예의마저 어디로 감추었는지 알 길이 없다. 게임 속 아이들과 똑 같은 모양새다. 그러며 그것이 재미있다며 웃는 어른이라니. 그런 사람이 상당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기이한 것들을 발명한 인간은 그것에 사로잡혀 관계를 서먹하고 가볍게 만들고 있다. 인간 본연의 정다운 모습들을 찾기가 어렵고 깊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다면 그 순간에 몰입하고 경청을 하고 마음을 얘기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소소하지만 따뜻한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운 시절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며 웃으며 깊어가는 가을 마음 살을 찌우고 싶다.

 

경기가 어려워 저마다 몸을 사리며 각박하기만 한 시절이다. 잘 지내던 사람조차 만나기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혹 좋은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다들 마음을 반쯤은 어느곳에 묻더라도 나만은 따뜻한 얼굴로 온전히 만남에 열중해야 하겠다. 사소한 것에 귀 기울이며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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