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볕이 너무 아까워서요’

다림영 2012. 10. 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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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마을

 

 

 

어떤 키가 크고 선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손엔 제법 큰 부침개가 들려있었다.

부침개 좀 드시지요?’

....

교회를 다녀야 한다면서 내미는 것이다.

..

처음이다.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일회용 컵에 담은 따뜻한 차라든가 사탕을 들고 때마다 찾아오지만

허전하고 뭔가 궁금한 이 시각에 이렇듯 공이 들어가는 먹을 것을 들고 내게 온 적은 없다.

책을 뒤적이며 집에서 뒹굴던 떡을 버리지도 못하고 꼭꼭 씹어 먹고 있던 중이었다.

교회에 나가느냐는 물음엔 답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큰 것을 주시다니 ... 하는 말만 되풀이하며 웃음의 인사만 전했다.

한 젓가락 입에 무니 맛도 기가 막히고 기름도 많이 두르지 않고 예쁘고 크게 만든 부침개였다.

건너편 감자탕 집 지하 하얀 교회란다.

하얀교회’....

어쩌면 이름도 그렇게 예쁜 것인지...

하얀교회는 지하에 세를 들어왔나보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디 그들의 고운 마음이 널리 알려져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기를 .

 

 

 

얼굴이 검고 작은 남자가 들어왔다. 돌 반지를 달라며 가격을 얘기하니 눈이 동그래진다. 너무 친한 친구라서 꼭 한 돈을 해야 하는데 하면서 걱정을 하는 것이다. 불편해진 나는 반 돈을 적극 추천했고 받는 사람도 모두 빚이 되니 그것을 생각하라 권하니 내 말대로 그는 결정했다.

어느새 저녁이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의 매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난 또 후회를 한다. 사겠다는 손님도 말리는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좀처럼 손님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난 늘 그런 식이다.

자영업자의 이야기가 뉴스에 종일 나온다.

같은 업종에 있는 부자친구는 날더러 참 신기하단다. 어찌 살고 있는 지. 나도 내가 신기하다.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엊그제 호떡 장사하는 한 여자가 생각났다. 산책을 하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호떡 한개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그녀는 웃으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을이라고 다 놀러다니는데 난 이렇게 호떡을 구워요....

 

 

 

 

가을볕이 아까웠다. 아까워도 너무 아까웠다. 그리하여 난 가지를 사다가 가게 앞에서 말렸고 오늘은 호박을 예쁘게 잘라 널어두었다. 지나가는 낯익은 손님이 에고 가지도 널고....’ 하면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볕이 너무 아까워서요’...

살림이 꿈인 나는 요즘 이렇게 살림을 하고 있다. 우아해야 할 가게에서 그런 것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을볕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재미가 얼마나 뿌듯하고 좋은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 들이 더없이 좋아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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