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넘기 힘들어라, 욕망의 파도여絶句一陳師道

다림영 2012. 10. 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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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김풍기>중에서

 

'...

기다리는 사람은 쉽게 오지 않는다. 기다림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의미일 터이다. 내가 진정 기다리는 사람은, 하루만 기다려도 일 년을 기다린 듯하다. 물리적 시간보다는 심정적 시간의 지루함 혹은 간절함을 그 구절뒤에 숨기고 있다. 물리적 시간으로는 겨우 한나절이지만, 마음 속 시간으로 치면 몇 년의 기다림이다. 이 같은 간절함이 애끊는 기다림을 낳는다. 좋은 손님은 그래서 쉽게 오지 않는다.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어린애들도 안다. 우리는 언제나 주어진 현실적 환경보다 훨신 과도한 욕망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심지어 즐거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느냐고 불평을 하기까지한다. 즐거운 시간이 내게 다가온 것을 고마워하기보다는 빨리 지나 사라져버리는 것에 불평한다.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 그 현실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새로운 욕망이 순식간에 생겨난다. 욕망은 결코 실현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나와 언제나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음은 상쾌하게 하는 책은 쉽게 다 읽히고

아름다운 나그네는 약속해도 오지 않는다

세상일 어긋남은 언제나 이와 같아

백 년 인생에 좋은 심회 몇 번이나 열어젖힐까

 

書當快意讀易盡

客有佳人期不來

世事相違每如此

好懷百歲幾回開

 

진사도陳師道,<절구絶句>

 

 

돌이켜보면 기분 좋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내 욕망의 과도한 높이는 언제나 현실을 불만스럽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내 삶은 몇 개의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듯하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들이 스며있다. 기쁨과 슬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실현시키지 못한 옛욕망들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하여 과도한 욕망의 높이가 만들어낸 현실적 불만족은 사라지고 , 아름다운 기억의 편린들만 남아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불편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 세상을 향해 언제나 불만 섞인 말투로 말을 건넨다. 여전히 내게 아름다운 세상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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