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도보여행 중에서/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다림영 2012. 10. 30. 17:51
728x90
반응형

 

도보여행은 단순히 시골풍경을 구경하는 데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안 될 말이다. 경치를 구경하자면 좋은 방법이 많다. 그럴싸하게 도보 여행을 추켜올리는 사람이 있지만, 기차 차창으로 바라보는 경치같이을 생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도보 여행중의 경치란 한낱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여행의 참된 뜻은 경치를 찾아서가 아니라 즐거운 기분-아침에 출발할 때의 희망과 의욕, 저녁에 휴식할 때의 평화와 정신적 충만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배낭을 어깨에 멜 때, 혹은 벗을 때, 그 어느 쪽이 더 기쁜지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떠날 때의 마음 설레임이 곧 도착할 때의 흥분의 열쇠가 된다. 여행 중 하는 일은 무엇이건 보람이 있지만, 그 보람은 다시 다른 보람을 낳게 하여, 기쁨은 기쁨으로 이어져 끝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보 여행의 진미를 몰라서인지 느림보 걸음을 걷거나,아니면 시속 5마일의 속보(速步)를 꾀한다. 만보(漫步)와 속보를 싸움 붙여 놓고 중간 속도의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취할 줄 모르면, 저녁 도착만을 위해서 하루를 걷고, 다음 아침 출발을 위해서만 밤을 보낸다. 특히 속보자는 이점을 모르니 딱하다.

 

그들은 큐라소(브랜디 종류의 독한 술:역주)를 대폿잔으로 마실 수 있는데, 남이 위스키 잔으로 마신다고 역정을 내는 격이다. 작은 잔으로 마셔야 제맛이 나는데도 믿지 않는다. 너무 먼 길을 걸으면 감각이 마비되고 지칠 뿐인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녁에 여사(旅舍)에 다다를 땐 오관(五官)이 서리를 맞은 듯 굳어 버리고, 가슴엔 별 없는 어둠이 깔린다. 적당히 걷는 자의 훈훈한 저녁 기분은 바랄 수도 없다.어서 취침시간이 되어 곱빼기 술잔을 들이켜고 잠들어야 할 육체적 피로가 남을 뿐이다. 애연가라 할지라도 파이프 담배맛이 떨떨하고 제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사람이야말로 행복을 얻으려고 배나 노력을 하고 나서, 결국 행복을 놓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남보다 멀리 가고도 헛수고를 하는, 속담에 나오는 인물이라 하겠다.

 

, 제대로 즐기자면 도보여행은 홀로 가야만 한다. 단체로 혹은 짝을 지어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목 뿐이지 도보 여행이라 할 수는 없다. 도보 여행이라기보다는 소풍이라 하겠다. 도보여행은 홀로가야 한다. 자유가 이 여행의 진수(眞髓)이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마음내키는 대로 이 길 저 길로 갈 수 있고, 제 속도를 지켜야지 도보 선수를 따라가서도 안 되고, 소녀와 발맞추느라 잔 발걸음으로 걸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밖으로부터의 인상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고, 시각에 비친 풍물을 사색으로 윤색(潤色)해야 한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들어와도 소리를 내는 풍금-당신은 풍금이 되어야 한다. “보행과 방담(放談)을 동시에 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시골에 가면 초목처럼 무성하고 싶다.”고 해즐릿은 말한다. 이 말이야말로 도보 여행에 관한 말 중의 요체(要諦)라 하겠다.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없어야 하고, 고요한 아침 명상에 삐걱거리는 소음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이치를 따지려고만 하는 한, 대기 속 몸 운동에서 오는 흥분에 나 자신을 내맡길 수는 없다. 그 흥분은 처음에는 머리가 현혹되어 얼떨떨하다가 근심 걱정을 극복한 마음의 평화에서 끝난다.

 

어떤 여행이든 첫 하루 이틀은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어깨에 맨 배낭이 귀찮아져서 울타리 위에 내던지고, 이럴 때 크리스챤이 했듯, “세 번 깡충 뛰고 노래나 부르고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배낭은 곧 가쁜해진다. 무슨 자성(磁性)이 붙어 여행의 정령(精靈)이 배낭 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배낭의 멜빵을 어깨에 메자 잠의 앙금은 깨끗이 싯기고, 몸을 한번 흔들어서 사지를 내뻗고 성큼성큼 걷게 된다.

 

 

인간의 기분 중에 길 떠나는 기분이야말로 최고라 하겠다. 물론 굳이 근심 걱정을 청하자면, 상인 아부다의 장롱을 열어 마녀와 팔을 끼고 걸을 양이면- 여부가 있겠는가. 어디에 몸을 두건 , 빨리 걷건, 느리게 걷건, 그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나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할 것이다. 아마 30명 쯤 같은 시간에 출발을 하겠지, 내기를 해도 좋지만 그 중에는 따분한 얼굴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하루의 도정에서도 기분의 큰 변화가 생긴다. 출발할 때의 들뜬 기분으로부터 도착할 때의 행복한 허탈감에 이르기까지 변화는 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행자의 기분은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옮겨 간다. 풍경과 더욱 융화되며, 크게 옮김에 따라, 여행자의 기분은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옮겨 간다.

 

 

풍경과 더욱 융화되며, 크게 발을 옮김에 따라 대기(大氣)에 취하게 되고, 마침내 걸음을 재촉하면 즐거운 꿈속에서 보듯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첫단계의 기분은 보다 밝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보다 평화스럽다.

 

 

하루여정(旅程)을 마칠 무렵이면 글장난도 뜸해지고 , 웃는 소리도 낮아지고, 순수한 동물적 기쁨, 즉 육체적 편안, 숨을 들이마시는 기쁨,가랑이 근육의 긴장감이 주위에 아무도 없음으로 해서 위안이 되고 흡족한 기분으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

 

 

평생 시간을 보지 않는 다는 것은, 일찍이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시간을 물어보지 않으면 여름 하루가 긴지 알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시간을 짐작할 수가 있고 잠이 오면 하루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계라고는 하나도 없는 마을을 알고 있다. 이마을 에서는 한주()의 요일이나 알면 고작이지만, 그것도 일요일 잔칫상을 기다리는 일종의 본능에서 점친다고 한다.

 

....

 

 

탐욕자로부터 모든 재물을 빼앗아도, 그는 한 가지 보물을 간직한다. 즉 탐욕은 빼앗을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한 밀턴은 말한다. 그래서 나도 오늘의 사업가를 두고 말하자면, 그를 위해 해 주고 싶은 일, 이를테면 에덴동산에 데리고 가든지, 블로장생 약을 주든지 하여도-한가지 결점을 지니고 있다.

 즉 돈 버는 버릇은 버릴 수 없는가 싶다. 그런데 그 돈 버는 버릇이 도보 여행에서와 같이 중화될 때는 발을 멈추고 있는 동안에는 해탈하였다고 느낄 것이다.

 

....

 

저녁에 날씨가 맑고 따뜻하면, 해질 무렵 여사(旅舍)앞을 거닐거나 다리난간에 기대어 물 속의 잡초나 날쌘 물고기를 들여다 보는 것도 더없이 좋다.

 

이럴 때 흥취라는 말의 호방한 참뜻을 맛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근육이 기분 좋게 풀리고, 맑고, 강인하고, 늘어진 듯한 기분이 드니, 몸을 움직이거나 앉거나 간에, 하는 일마다 자랑스럽고 큰 기쁨이 따른다.

 

누구하고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똑똑하건 바보스럽건, 취했건 제정신이건, 사람을 가리지 않고 , 마치 뜨거운 보행이 무엇보다 사람의 옹졸함과 자만심을 깨끗이 씻어내고, 어린이나 과학자 같이 호기심만을 남겨 놓는다.

 

모든 도락(道樂)을 제쳐 놓고 시골 유머를, 때로는 웃음거리로, 또 때로는 신중하고도 아름다운 옛 이야기로 들어주는 것도 무방하다.

 

....

 

 

갑자기 기분이 전환되고, 바람개비가 돈다. 당신은 한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 잠시 동안이나마 현명한 철인이었던가, 아니면 뛰어난 바보였던가? 인간의 경험으로는 대답할 수가 없다. 다만 지금껏 즐거운 순간을 가졌고, 대지의 왕국을 내려다 보았다. 슬기롭건, 바보스럽건, 내일의 여행은 몸과 마음을 어느 무한의 이역(異域)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세계의 유명작가 명수필중>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