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나는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했다. 순수하게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는 듯했다. 그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해하다가 지나쳤다. 그 또한 내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해하다가 지나갔다. 서로 그냥 조금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보다가 지나갔다. 서로 그냥 조금 마음에 떠오르는대로 불러보다가 지나갔다. 그가, 혹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체물들이 많이 생긴 탓이겟지, 생각했다.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사랑을 오래 그리워하다보니 세상 일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과 소멸이 따로따로가 아님을,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해와 달이, 바깥과 안이, 산과 바다가 , 행복과 불행이.
시흥시 늠내길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같다.
흘러가게만 되어 있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적인 건 그리움을 갖는 일이고,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을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악인보다 더 곤란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움이 있는 한 사람은 메마른 삶 속에서도 제 속의 깊은 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고.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었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신경숙의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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