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주민 부족의 삶의 방식
류시화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아이의 생일을 정할 때 아이가 태어난 날이나 엄마 뱃속에서 잉태된 날로부터 하지 않고, 엄마의 마음속에서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 맨 처음 떠오른 날로부터 계산한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 바로 그날부터 그 아이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떤 물리적인 형태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 배후에는 이미 눈에 보이기 않는 혼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부족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더 넓은 범위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들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최초로 떠오르고, 그래서 그 아이를 갖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이 부족의 여인은 숲 속의 커다란 나무 아래로 가서 혼자 앉아 있는다. 그리고는 자신에게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아이의 노래가 어느 곳에선가 들려올 때까지 귀를 기울이며 기다린다. 어떤 때는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여인은 최소한의 음식과 물에 의지하며 미지의 세계로부터 그 아이의 노래가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일종의 신성한 의식과도 같다. 새로운 생명을 이 아름다운 대지에 초대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외딴 곳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침묵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어떤 것을 진정으로 들으려면, 특히 내면 깊은 곳에서 속삭여 오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려면, 생의 어떤 순간 잠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정화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녀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날 아이의 노래가 여인에게 전해진다. 여인은 그 나무 아래 앉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른다. 여인의 생에 가장 기쁜 순간이고, 아이의 혼은 자신이 이 대지 위에 행복하게 초대받았음을 느낀다.
아이의 노래를 들은 뒤, 여인은 아이의 아버지가 될 남자에게로 가서 그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리고 나서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그 아이의 노래를 부른다. 아이의 영혼을 두 사람이 마음을 다해 환영하는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렇듯 아이의 노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 아이의 존재 자체다. 이 부족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노래를 갖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눈에 보이는 세계로의 연결이 노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노래는 그가 평생 동안 지니고 다녀야 할 자기 존재의 본질과도 같다. 그 노래는 사람마다 다르고 독특하다. 저마다 이 세상에 오는 이유와 배움의 과정이 다른 것이다.
마침내 아이을 잉태하면 엄마는 마을의 늙은 여인들과 산파들에게도 그 아이의 노래를 가르쳐 준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부족의 여인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아이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하여 마침 내 아이가 태어날 때 늙은 여인과 산파들은 산모 주위에 앉아 그 노래를 불러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를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부족에게 노래 하나가 갖는 힘은 실로 크다. 아이의 노래를 통해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사람 전체와 연결되며, 그 아이는 이미 어느 한 개인의 아이가 아니다. 부족사람 모두가 그의 친구이며, 아버지이고, 엄마다. 부족의 나이든 어른들은 그의 삶을 안내하는 훌륭한 교사들이다. 공동체의 구성원 각자가 그 아이의 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자기만의 노래를 갖는다는 것은 이렇듯 중요하다. 누구의 노래와도 같지 않은 자기만의 노래가 있음으로써 아이는 자기 삶의 존재 가치를 늘 생각하고, 자신 또한 스스로를 존중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나면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의 노래를 배운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무릎을 다치면 누군가가 아이를 일으며 세우며 그 노래때에도 그 아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한곳에 모여 아이를 둘러싸고서 그의 노래를 불러준다. 결혼, 성공, 실패 등그의 일생에 걸쳐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잊지 않고 그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그만의 노래는 그가 삶에서 어려움에 처하거나 고통을 만났을 때 의지가 되어 주고, 자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에도 주위 만물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한 생애에 걸쳐 자신의 노래가 세상에 울려 퍼지면 새와 동물들, 나무들, 재잘거리는 샛강들도 아이의 노래를 알게된다. 아이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외로움은 단절에서 온다. 주위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길은 자기만의 노래를 갖는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늙어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부족 사람 전체가 모여 마지막으로 그의 노래를 불러준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작별할 때도 그는 자기만의 노래를 들으며 떠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떠나왔던, 보이지 않는 혼들의 세계로 따듯하게 환영을 받으며 돌아간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지만, 그것은 대지 전체로 흩어져 만물 속에 녹아 있다.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프리카의 그 원주민 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신만의 노래를 갖고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세상과 작별할 때는 자신만의 노래를 갖고 떠난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아도 인간 모두는 늘 자기만의 노래와 함께 삶을 여행한다.
그대 자신의 노래는 무엇인가? 그대 존재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 노래는 무엇인가? 그대는 혹시 그 노래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지나 않았는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2004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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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가벼워졌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조그만 기계에 빠져 정신이 없다. 출 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네모난 것을 들고 다니며 그곳에 자신을 집어넣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뒤엔 누가 다가오는지 옆엔 무엇이 펼쳐졌는지 도무지 보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세상은 온통 그 안에 있다. 길에서도 차 안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도 그 속에서 헤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면서도 연신 들여다보며 정신을 잃고 만남에 집중하지 않는 이들이 보고 싶지 않다. 그들은 금새 어떻게 될 것만 같다.
나는 그 것을 마련하지 않는다. 책 읽는 시간이 점점 없어질 것 같고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사라질 것 같고 어떤 만남이든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깊이 있고 순수하고 조금은 시골스럽기도 하고 주변의 것들과 눈을 맞추고 싶은 나는 언제까지 버티게 될지 모른다. 나의 옛폰이 고장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 것이다.
세상은 너무나 혼란스럽게 바뀌고 있다. 달리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갈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어떠한 순간이 올 때마다 깊이 있는 만남을 하지 못하고 마냥 부유하는 듯 보이는 이들이 예쁘지 않아 어울리고 싶지 않다.
벌써 난 고립되고 있는 듯 하다. 앞서 달리는 그들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는 섬인 듯하다. 그러나 이 고립이 내겐 깊은 우물을 지니게 하며 맑은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또 마음에 묻어놓은 나의 노래를 찾아 정말로 산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을까 싶다.
‘10월의 멋진날에’.... 10월이면 푹 파묻혀 일어설 생각을 못하는 노래에 빠져있다. 10월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오늘아침에 보니 가로수 길에 단풍이 들고 있었다. 가을이 좀더 깊어지면 길을 나서야 하겠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마냥 혼자 걸어야 하겠다. 현실의 나를 잊고 세상의 가을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하겠다. 풍경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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