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가을

다림영 2012. 9. 22. 16:39
728x90
반응형

가을엔 바이올린곡이 더없이 가슴속에 내려앉는다. 비감에 서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선률이 절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별 하나쯤 품지 않고 사는 이 어디 있을까만 이 가을 유독 죽었던 감정들이 살아나는데 일조를 톡톡히 한다. 오늘도 파가니니의 음악을 종일 들으며 고독 속에 빠져있다. 아마 조금 더 깊은 가을이면 이러한 증상은 심해질 것이다. 그땐 아마 가만 앉아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온통 물들어버린 자연 속에서 낙엽 쌓인 길을 찾아 걷고 또 걷게 될 것 같다. 그 가을을 기다려 본다. 혼자 있는 시간들, 파가니니의 음악이 깊은 가을 길로 나를 이끌고 있다.

 

오늘은 유독 조용한 주말이다. 지나는 이들의 이야기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다들 어디로 떠났나보다. 아마 추석 밑이어서 벌초를 하러간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또한 마음먼저 분주하여 시장 통으로 나섰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정한 시간에 지나가는 버스도 눈에 띄지 않는 것 같고 간간이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자가용의 소리만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좋았던 시절 나는 나이 들면 바이올린을 배워 어디든 마음 내려앉는 곳 있으면 그 자리에서 연주를 해야지 하는 꿈을 간직했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고 아이들에게 들어갈 것들이 없게 될 때에 나를 사랑한답시고 바이올린을 배우긴 쉽지 않을 것이다. 끼니걱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친정엄마가 이런저런 것을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배우고 있듯,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도 그러한 것은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아니 바이올린 이란 과목이 있기나 할 것인지 의문이다. 모든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다.

 

줄 창 집에서 기타를 끼고 있는 큰 녀석이 얼마 전 한강변에서 저는 기타를 치고 친구는 노래를 부르다가 왔다는 얘길 전했다. 용기와 열정을 잃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는 녀석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왜 젊었을 때 그렇게 하고 지내지 못했을까 돌아보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친정 엄마는 나의 나이를 부러워하며 못할 것이 없을 때라고 한다. 엄마의 그 얘길 들으니 웃음이 난다. 인생은 그런 것, 늘 우물쭈물 하다가 그렇게 될 줄 아는 것....알면서도 이행하지 못하고 놓치고 후회하고....

 

눈이 시리다. 안경을 내려놓고 책을 덮고 집에 전화하니 큰 녀석이 받는다.스케줄을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음악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녀석에게 늦은 밤 데이트 신청을 하니 흔쾌히 수락을 해준다.  우리는 요즘 심상치 않다는 매력적인 그가 일인이역을 한다는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

 

 

녀석과 영화를 함께 본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휴일이면 어떡해서든 어디서든 영화를 보고자 노력했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오늘은 한 시간 일찍 끝내게 되었다. 신난다.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생겼다. 영화관의 근사한 분위기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들뜨고 있다. 어린왕자가 말했던가, 친구와 약속을 하면 3시간 전부터 이미 행복해진다고 ....

반응형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화동 2009  (0) 2012.10.09
하이쿠 -가을  (0) 2012.10.05
퇴근무렵에  (0) 2012.09.18
추억의 편지  (0) 2012.09.16
이름모를 음악속에서  (0) 201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