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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밝았다.

다림영 2012. 8. 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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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 듯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어머니의 칠순을 운운하며 회색빛 카드로 물건을 샀다.  그가 총총히 사라진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난카드에 대한 것이었다. 카드사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핸드폰으로 분실카드 주인이 카드 긁은 것을 취소 시켜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와중 경찰과 형사들이 내게 달려왔다. 112에 신고했던 것이다. 삽시간에 가게 안에는 경찰과 형사들 감식단까지 가득찼다. 지문감식을 한다, CCTV를 살펴본다. 이런저런 증거물을 잡으려 분분했다.

 바짝 군기가 든 경찰들이, 눈빛 예사롭지 않던 강력계 형사들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았다.

 

 

그들에게서 위안을 받은 것인지 도난이란 단어에 두려움에 떨며 카드를 취소시키고 말았다. 아뿔사! ....나란 위인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물건 값은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고 마음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경기불황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요즘, 죽기 살기로 몇날며칠을 꼬박 챙겨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카드에 지식이랄것이 있겠냐만 전혀 쓰지 않는 나는 카드에 대한 것을 잘 모른다.

. 가게에 든 손님의 카드만 기계에 넣을 줄 안다.

 ‘도난카드란 말에 기겁을 하고 그것을 받은 나는 그냥 잃어버린 카드 주인만 생각했고, 나는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순간적인 느낌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나이를 어디로 다 집어먹은 것인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화가 치밀어올라  끼니조차 넘길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내가 당한 몇 가지 사건 속의 사람들은 모두 다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모자를 썼거나 보통사람들보다 더 단정한 모습일 수 있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꺼낸다. 호감이 가는 아주 착한 얘기이며 물건을 하는데 있어 순정한 이유가 있다. 또한 두어 곳 전화를 하거나 온 것처럼 대화를 한다. 물건에 대한 절실한 이야기 같은...

 

 

어제 그놈은 제 부모에게 몇 자 적을 것이라며 생일카드가 있느냐 물었고 6개월로 분할을 하면서 한 달에 얼마씩 되느냐 묻기까지 했다.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놈의 착한 마음 씀만 생각했다.

같은 업종의 친구에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노라 털어놓으니 저도 몇 번이나 일을겪었노라 얘길 전한다. 친정엄마처럼 그 또한 액땜했다고 생각하라며 위로하며 덧붙인다. 모든 사람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의심을 끈을 놓지 말며 큰 금액일 경우 반드시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받아놓으라고....

들풀처럼 자유로운 마음으로  많이 벌지는 못해도 소소하게 장사를 하고 싶다. 어찌 매번 사람을 의심하며 견제하며 장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업을 선택하고 지내온지  햇수로 어느덧 10년째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고에 휘말리며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몇 년씩 한꺼번에 늙고 있다.

아마도 업종을 지속하는 한 이러한 일은 어떤 식으로든 거듭될지도 모른다. 얘길 들어보면 당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친구의 말처럼 매번 들어오는 사람마다 의심의 끈을 놓으면 안되는 것이 맞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작심을 하고 달려든 놈을 무슨 수로 당해낸단 말인가.

끼니도 거른 체 상심에 젖었다.어찌 이 큰 금액을 회복할지 답이 없었다. 마음을 바꾸는 것 외에 ....

 

새 날이 밝았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죽음도 그랬고 동생의 아픔도 남편의 부도도 그랬다. 악몽 같았던 모든 것들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득해졌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상한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우산을 들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숲길을 걸으며 나를 위로하고 이해하려 애를 썼다. ‘일을 당하려면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몇 백 년 전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므로 마음 쓸 일이 아니다. 더 큰 것을 잃지 않게 하려고 경험하게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난 죽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치지도 않았다.  그깟 돈이 무슨 대수냐 생생하게 오늘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데, 이 세상에  이보다 감사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의 내게 몇 번씩이나 이러한 말들을 건넸다.

 

나쁜 일들은 빨리 잊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안다 어떤 위기가 찾아왔을 때 혹은 큰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에서 자유롭고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삶의 희망이다.

 

어제의 오늘은 오늘의 어제가 되었고 어제의 내일은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오늘이 되었다. 나는 이렇듯 멀쩡하게 살아있고 단 한 순간도 쉬지않고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이 약인 것이다. 깊은 오후에 들며 나는 의사의 처방도 없이 다시 시간 약 한 웅큼 털어 넣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고 천둥까지 친다. 태풍의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무너지는 가슴이 문득 너무나 크게 보인다.  입을 닫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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