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도종환

다림영 2012. 1. 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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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가만히 있으면 흐린 것은 아래로 내려가고 물은 맑아진다. 마음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맑아지면 마음의 본바탕과 만나게 된다. 맑아지면 선해지고 선해지면 욕심도 삿됨도 가라앉게 된다. 허정무위虛靜無爲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시간에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그런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물론 나머지 시간은 또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며 지낸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지만 영원히 흔들고 있는 바람은 없다.

불던 바람은 가고 나무는 다시 본래의 제 모습으로 서 있게 된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가르기도 하지만 구름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하늘은 언제나 제 빛깔로 거기 있지 않은가.

 

 

"만물은 얼마나 빨리 소멸하는가? 육체는 우주 속으로 기억은 시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모든 사물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 본질은 무엇인가? 쾌락으로써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 고통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 공허한 명성으로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그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그 같은 것들은 얼마나 가치없고 천하고 열등하며, 얼마나 쉽사리 메마르고 사멸해 버리고 마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는 겨울도 일찍 오려는지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금방 나뭇잎이 흙빛으로 변해 떨어진다. 또 한 살 나이가 는다. 어느새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다. 아무것도 해놓은 일 없이 이렇게 세월 속에 자신을 흘려보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무언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싸여 뜰을 서성거리게 된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는 일이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빈 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나무의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전쟁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사색에 잠기며 명상록을 남겼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는걸까.

 

 

"모든 걸 놓고 쉬어."

의사인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자율신경이 쉬고 싶어하는 거야. 지친거야. 무의식적으로 신경억압을 받아오다가 손을 놓아버린 거야.그래서 쓰러지게 된거야."

그러면서 무리한 일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소문을 들은 선배 소설가는 정신과 몸이 구조조정을 하는 거라고 했다. 운이 바뀌느라고 아픈거니까 환자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를 새롭게 찾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으라고 했다.

그분의 말대로 내가 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내가 나를 추슬러 끌고 가기로 했다. 용기를 주는 그들의 말이 고마웠다.

 

 

언젠부턴가 내가 가장 부러워하기 시작한 그의<스콧 니어링>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을 생계를 세울 것.... 쓰고 강연하고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실제로 그는 그렇게 살다가 100세가 되던 해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법구경>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만 이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는 수행의 오랜 세월을 보내야만 사랑과 미움을 함께 버리는 경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악도 버리고 미움도 버리고 집착도 버리라고 하지만 버리는 일이란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버렸는가 싶으면 다시 쌓여 있고 끊었는가 했는데 다시 붙어 있는 때가 수없이 많다.

 

'크게 버림은 횃불이 앞에 있어서 미혹과 깨달음이 다시 없는 것과 같고, 중간 버림은 횃불이 옆에 있어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것과 같고, 작게 버림은 횃불이 뒤에 있어서 함정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도 밝았다 어두웠다 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함정에 빠졌다. 빠져나왔다 했을 것이다. 바람 부는 내일은 어떨까. 구름이 끼었다 비가 내렸다 하는 모레는 어떨까. 환해지기란 쉽지 않은데 내 발걸음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뱃사람도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러나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러나 물은 언제든지 모든것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그 위에서 노동하며 살지만 바다는 언제든지 해일이 되고 폭풍이 되어 모든 것을 엎어버릴 수 있다. 시련과 고난이 늘 예비되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늘 출렁이는 위험위에서 그걸 양식으로 바꾸어 하루하루를 사는 삶, 사실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그와 아주 흡사하다.

 

그러나 아주 크고 무서운 시련이 몰아칠 때 그 시련을 우물쭈물 피하려 하다가 모든 것을 잃느니 차라리 시련과 어려움의 한가운데로 배를 몰고 나가는 것이 사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을 고노인은 보여주었다. 절망의 한가운데, 폭풍의 한가운데를 향해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절망과 시련을 뚫고 나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방향타를 움직여 뱃머리를 정확히 파도 방향으로 맞추고 전속력으로 파도를 향해 돌진하는 배는 파도도 뒤집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온몸을 다 던져 뱃머리를 밀고 들어오는 뱃사람은 폭풍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도 여백이 있는 사람이 인간답게 느껴진다. 빈틈이 없고 매사에 완벽하며 늘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보다는 어딘가 한 군데는 빈 여백을 지니고 있는 듯해 보이는 사람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뒤에 언제나 든든한 힘과 막강한 무엇이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보다는 텅 비어 있는 허공이 배경이 되어 있는 사람이 인간다운 매력을 준다. 여백이 있는 풍경이 아름답듯 여백을 지닌 사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욕심을 털어버린 모습으로 허공을 등지고 서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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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밝았다. 나이 한 살 꿀꺽 삼켜버렸다. 단지 일년을 먹었을 뿐인데 이년이상 삼킨 모습이다. 어제밤의 일이다. 텔레비젼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연기자가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막내녀석은 엄청 젊어보인다며 내 얼굴을 살핀다. 그저 편한 것이 좋아 꾸미지도 않고 대충 살고 있는 나다. 문득 집에서도 아이들앞에서도 예쁘게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예쁜 모습으로 가꾸며 살아야 나이를 먹어도 젊은모습을 유지할터인데  어쩌자고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

 

날씨는 춥기만 하고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어 밝은세상에 발을 쑥 내밀지를 못하고 있다. 구름사이로 간신히 볼 수 있었던 일출때의 마음은 어디로 숨었을까   아직 오지않은 미래생각에 묶여 하염없이 늙어가는 것 같다. '얼마나 좋은 나이야..' 노인손님들이 가끔 내게 하는 소리다. 난 왜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일어서야 하리라.

 

어제저녁 퇴근길이었다. 역의 에스컬레이터에 어느 중년의 남자가 거꾸로 넘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의 다리인지 발인지 에스컬레이터에 끼인듯 싶었다. 남자는 내 다리 내다리가 잘못된건 아닐까 하며 눈을 감고 그 아픔을 참고 있었다. 남의 일이지만 섬뜩하고 무서웠다. 그는 얼마나 놀라고 무섭고 아득했을까... 오늘은 또 아는이가 불현듯 방문하여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남편이 차를 고치러 갔다가 고치는 현장에서 어쩌다가 떨어져 이마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열흘이상 의식불명이 되어 죽는줄 알았단다. 간신히 회복이 되어 이제 사람을 알아본단다. ... 지인의 얘기와 그런상황을 불현듯 목격하니 내가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텔레비젼을 보고 음악을 듣고 ...  이런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생각되었다. 좋은일은 없어도 그저 그런 일상속에서 탈없이 오늘을 보내게 됨을 더욱 감사하며 환한 얼굴로 지내야 할 것이다.

 

 

지은이의 말씀처럼 여백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가끔은 쓸쓸하고 허전하고 빈듯해도 수수하고 순한 시골풍경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겠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텔레비젼속에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져나오고 창밖의 풍경은 차갑기만 하다.

소낙비는 언제까지 내리지 않음을 바람은 또 영원히 나무를 흔들지 않음을  먹구름도 때가되면 지나가게 되어 있음을 ...

손님도 없고 스쳐지나는 사람들뿐이지만 별탈없이 하루를 지냈으니 감사한 하루다.

 아이들에게 좋은엄마 남편에게 따뜻한 아내 부모님에게 살가운 자식이 되어야 하리라. 쉽게 행동에 옮겨지지 않겠지만 마음으로라도 끝없이 되뇌이다보면 몸으로 배어나올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어느날 아름다운 이 눈부시게 서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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