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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힘 주역/심의용

다림영 2011. 12. 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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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이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이다. 물론 중국의 고대에 주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산역>,<귀장역>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모두 전해지지 않고 주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변화를 뜻하는 '역'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역은 척< >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척이란 도마뱀을 뜻하고 도마뱀은 자신의 몸 색갈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기 대문이다. 혹은 일日과 월月을 합한 글자라고도 한다. 해와 달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현상일 뿐만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역이라는 말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상이 과하면 오만하게 되어 현실을 무시하기 쉽고, 현실적 이익만을 과하게 추구하면 인색하게 되어 이상을 버리기 쉽다. 현실적 안목이 부족하면 이상은 실현될 수 없고, 이상이 부족하면 좁은 안목에 집착하게 된다. 강인한 결단력과 용기가 부족하면 우유부단하게 되고, 지나치게 강인하면 조급하게 된다. 그러니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고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시의 적절한 행위는 어려운 것이다. 주역은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고공비행을 하려는 변통의 철학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불행의 씨앗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행복의 씨앗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해서 크게 좋아할 일이 못 된다. 그 행복의 이면 다른 곳에 불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하다고 해서 크게 절망할 필요도 없다. 그 불행의 이면 다른 곳에 행복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이러한 감추어진 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역은 이러한 전환과 변화의 가능성과 흐름을 파악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주역에서 "사물이 그 극단에 이르면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드러내 주는 괘가 태泰괘와 비否괘이다.

태괘란 태평성대를 의미하고, 비괘란 그 반대로 꽉 막혀 소통되지 않는 불통의 상황을 상징한다.

 

 

 

쇠락으로 변화하는 어려운 시기에 주역은 자신의 신념을 잃지 말라는 대처법을 제시한다. 내적인 진실과 힘을 기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좋았던 시절이 무너지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쉽게 절망하여 이상과 신념을 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신념을 고집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변화를 직시하고 그에 따라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연한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효사에서는 꿋꿋하게 인내하면서 자신의 진실을 굳게 지키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쇠락의 기운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이 부리는 시간의 흐름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인간이 쌓아올린 견고한 성. 하지만 쌓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태평성대도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게 마련.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변화의 법칙에 저항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강제적으로, 억지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시세의 흐름은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흘러간다. 그러한 쇠락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았다면, 강제적으로 저항히기보다 오히려 냉정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닥쳐올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역은 말한다.

 

 

지나치게 올곧은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이롭지않다.不利君子貞.

 

올곧은 태도라는 말로 번역한 한자는 정貞인데, 이는 지조와 절개를 의미한다. 혹은 올곧은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올바른 지조일지라도 그것이 편협한 고집이 된다면 자신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 또 예상치 못한 불행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이렇게 소통이 되지 않는 혼란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가장 좋은 의도를 가지고서 최악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현실감각이 부족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다스릴 때는 가을이슬처럼 .待人春風, 持己秋霜

 

 

여우는 강을 건널 때 고리를 바짝 들고서 건넌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건널 무렵 꼬리를 강물에 적신다. 왜 그럴까?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강이 얕은지 깊은지도 헤아리지 ㅇ낳은 채 무모하게 강을 건너려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줄도 모른 채 일을 저질러 버렸다. 어떤 일도 성취하지 못했다. 이로울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흉하다거나 불길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잘되어 나갈 것이라는 점을 각각의 효들은 암시한다.

 

왜 그러한가? 일을 성취하려는 강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여우는 젊은이를 상징한다.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젊음의 특권은 무엇인가? 실패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실패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부그럽고 두렵다고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겁쟁이같이되어서는 안 된다. 젊은 때는 실수와 실패를 많이 저지를 수록 좋다.

 

물론 젊음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젊음의 의무도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것이다. 젊음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래서 신중함이기도 하다. 신중한 지혜, 뱀과 같은 현실감각이 보강된다면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역易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통하여, 궁핍하고 막힌 상태가 없도록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역 의 정신이다.

 

 

자기변화를 위한 성장의 과정에서 주역이 강조하는 것은, 기다림과 더불어 자기진실과 성실 그리고 믿음이다. 준비되지 않은채로 거센 파도를 맞서는 것은 무모하다. 감당하지 못할 일은 피해야 한다. 무한도전도 좋지만 힘도 없이 무모하게 도전하는 모습이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이다. 기다리는 것이 단지 회피와 비겁만은 아니다. 와신상담도 단지 괴로움을 견디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과업을 위하여 즐거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고생을 받아들이는 기다림이다. 변화는 오랜 기다림 속에서 온다. 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하여 지평이 확대되고 소통을 이룰 수 있다.

 

 

주역은 덕행을 수양하는 경전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덕德이라는 말이 윤리와 관련된 덕목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덕행이란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기술이자 삶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능력, 곧 진리를 드러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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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의 거울에서 내 모습을 본다. 도무지 봐줄수가 없다. 언제나 웃으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살았나보다. 어느새 또 낯선주름들이 이마에 내려앉았다. 쉼없이 입가를 올리고 있었는데 언제 그렇게 된 것일까? 산다는 것은 고뇌 그 자체라고 했고 다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지만 보이는 세상마다 나와는 거리가 있어 종종 불편하여 등지며, 혼자 고고한척 살고있었는데 온갖지도가 새겨진 얼굴, 민망하기 이를데없다. 순한 얼굴이 되기위해 더없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아직은 젊은 얼굴일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았을때, 거울가득 환한모습 만나길 소망하며 오늘도 열심히 걸레질을 해야 하리. 창가로 쏟아지는 겨울햇살이 더없이 좋은날, 입도 웃고 눈도 웃고 온몸이 그것을 받아들이며 궁핍한 마음,  삶의 먼지와 오물들을  털어  볕에 내어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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